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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기쓰는 복학생 Feb 23. 2023

"마스크 써라"

마스크를 써야만 하는 누군가의 이야기

한때 세계를 강타해 삶의 상당히 많은 부분을 바꿔놓았던 코로나19이지만,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니 과거의 영향력이 무색하게 어느새 사람들 사이에서 잊힌 듯 좀처럼 오르내리지 않는다. 코로나의 대표적인 흔적이었던 KF94 마스크도 이제는 화장실 청소가 아니면 좀처럼 쓸 일이 없어, 어디다 버리긴 아깝고, 관물대 안에서 쌓아두고만 있다.


조금씩 변화가 찾아오고 있었지만, 1월 30일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 해제 이후 본격적으로 우리의 삶에서 코로나19의 흔적이 지워지고 있다. 점호, 식사 집합 등 자잘한 행사에서 더 이상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돼서, 번거롭게 매번 마스크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서로 섞여 뭐가 새거고 헌 거인지 구별이 안 되는 귀찮은 일도 마주하지 않아도 된다. 너무 급격하게 변한 나머지 가끔은 우리가 바이러스에 그렇게 휘둘리던 약 3년의 시간이 좀 허무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도 좋은 게 좋은 건지, 이전에도 답답하다는 이유로 어지간해선 마스크를 잘 안 썼는데, 규정 철폐 이후 실질적으로나 심적으로나(느낌적인 부분에서나) 여러 면에서 생활에서의 불편함이 사라졌다.


우리의 삶에서 제한이 사라질 때 찾아오는 해방감이 이렇게 클지 몰랐다. 예전에는 변화나 자극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있어 현상 그 자체에 비중을 두고 생각하곤 했는데, 감정의 중요성을 알게 된 지금 생각하면 우리의 감정에 따라 현상이 어떻게 다가오냐가 극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 단순히 얼굴에서 천 쪼가리를 써야 하는 의무가 사라진 것에 대해 엄청난 자유를 얻은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이유에는, 3년 동안 우리의 삶의 기회를 억압하고(나에게는 소중한 20대 초반이어서 더더욱 커 보인다), 달갑지 않은 불가역적인 변화를 받아들이도록 강제한 코로나19라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 드디어 끝이 났다는 해방감이 가장 크게 작용했을 거다.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되는 건 한동안 떠났다가 비로소 우리 곁으로 돌아온 자유라는 소중한 가치의 귀환이라는 점에서 더 의미 있는 변화였다.


그러나 여전히 마스크를 벗을 수 없는 곳이 있다. 바로 대대 지휘 통제실. 개인적으로 대대의 주요 직위자들이 자주 들락날락하면서 용사랑 가까이 접촉하는 곳에서 반드시 용사인 "CCTV 근무자만" 마스크를 써야 하는 규칙을 좀처럼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도 대부분의 당직 근무자들은 이제 쓰던 안 쓰던 그다지 신경 쓰지 않고 넘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유독 한 사람만 마스크에 관해 심각하게 엄격하다. 매번 친근하게 말을 걸어오는 듯싶다가도 갑자기 돌변하며 정색하듯이 "마스크 써라"라고 한 마디 툭 내던지고는 무심한 듯 떠나는 그의 모습을 볼 때마다 적잖이 당황하게 된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어서 익숙해질 법도 한데, 여전히 그의 그런 행동이 낯설게만 느껴진다.


오늘도 똑같은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평소와 달리 특이한 부분이 있다면, 그 순간 우리를 포함해 지휘 통제실에 있던 10명 남짓한 사람들(간부, 용사 불문하고) 전부 마스크를 쓰고 있지 않았다. 심지어 우리에게 쓰라고 말했던 그조차도.. 그 순간 지휘 통제실의 공기가 마치 지구의 것이 아닌 것 마냥 위화감이 느껴졌다. 지금 내가 서있는 이 공간에서 나름 1년 3개월이라는 시간을 보내면서 많은 것들이 익숙하고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그가 무심코 던진 한 마디와 주변 상황이 이룬 완벽한 모순적 조화에, 나는 한순간에 이방인이 되었음을 느꼈다. 그의 발언과 행동이 그런 의도에 의한 건 아니었겠지만, 그 안에 내재되어 있는 이성적 권위의 횡포와, 그로 인해 나타나는 비이성적 위선은 내가 이곳에서 그들로부터 격리되어야만 하는 일종의 바이러스 보균자 취급을 받는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코로나가 한창 유행하기 시작했던 20년 초중반을 떠올리게 된다. 당시 공식적인 질병의 시작점이 우한이었다는 이유로 국적 이외에는 아무런 관련성이 없는 중국인들은 빼앗긴 일상에 대한 억압된 분노가 야기한 무분별한 혐오와 차별, 그리고 폭력을 마주했고, 그게 돌아와 지역 불문하고 비슷한 형태로 수많은 동양인들에게 행해지지 않았나. 질병에 두려움은 그저 계기였을 뿐, 그런 행동에는 낯선 타인에 대한 우월의식과 경멸이 반영되어 있으리라.


약자는 흔히 사람들이 요구하는 어떤 특성을 지니지 못했기에 끊임없이 사회로부터 요구당하고, 엄격한 기준을 부여받는다. 보통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약자에게 선심을 베풀며 살아가는 선인이라는 착각 속에 빠져 살기에, (일반적으로는 당연한) 권리에 대한 요구가 약자들의 입에서 나오는 순간 곧바로 돌변해 그들을 구석으로 내몰고는 "호의가 계속되니 권리인 줄 안다"라는 식의 비난을 퍼붓는다. 제대로 교육받지 못해 부도덕하고 양심 따위는 없는 약자들을 교화한다는 목적으로. 그렇기에 약자는 근본적으로 자신이 평생을 살아온 공간에서조차 이방인이 된다.


오늘 그런 감정을 느끼면서, 이곳에서의 내 위치를 확실히 깨달았다. 월급을 100만 원이나 받아 군 생활하기 요즘 군대 엄청 편해졌다는 조롱 섞인 부러움을 받는 비교적 나아진 상황에서조차 내 앞에는 호의라고 불리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어떤 벽이 존재하고 있었다. 내가 갈망해온 세계는 벽 너머에 존재하지만, 사회가 만들어낸 벽에 빈번히 가로막히며 어느 순간은 그걸 뛰어넘기를 포기하고 벽에 갇힌 채 자기 타협하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누군가 불쌍히 여겨 보낸 작은 호의에 삶의 은인이라도 된 것 마냥 감사하며 살아왔다. 그게 지금까지의 군 생활이었다.


나와 함께 있던 동기와 달리, 마스크를 쓰려고 주머니에 손을 넣었지만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결국 어쩔 수 없이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 평소였으면 당연히 뻘쭘해졌을 법한 상황에서, 오히려 운이 좋다고 생각한 건 무슨 이유에서였을까. 평소에 하나쯤은 가지고 다니던 마스크가 없는 난처한 상황이 역으로 그동안 스스로 검열해온 중요한 생각들을 불가항력적인 반항으로서 해방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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