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기쓰는 복학생 Feb 27. 2023

아빠의 얼굴

아빠와의 첫 술자리

모처럼의 가족여행이었다. 내 기억으로는 사실상 마지막 가족 여행이 4년 전 속초 여행이었는데, 여러 사정이 겹치면서 미루고 미루다 보니 4년 만에 다시 간 가족 여행이 우연히 또다시 속초다. 심지어 숙소도 같은 곳으로. 그나마 다른 점이라면 그때는 20살이 되기 전 미성년자로서의 마지막이었던 반면에 지금은 군 생활의 마지막을 향하는 말년(?) 병장이라는 점? 각자 당시 어떤 순간의 마무리를 받아들이는 동시에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불확실한 미래를 기다리고 있었고, 4년 사이에 엄청나게 변한 속초의 풍경은 그때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도착하자마자 점심으로 생대구탕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요즘 군대 엄청 편해졌다, 전역하고 나면 여행 어디로 갈 거냐 등)를 나눈 후, 6월에 유효기간이 만료되는 여권을 재발급 받으려고 사진을 찍었다. 20대 동안 계속 쓸 사진인만큼 나름 잘 나오기를 바랐는데, 몸 관리를 안 한 데다가 자른 지 얼마 되지 않아 짧지도 길지도 않은 머리까지 더해지니 도저히 만족할 수 없는 사진이 나왔다. 마음 같아선 다시 찍고 싶었지만 다시 찍는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기에 금세 포기하고 발길을 돌렸다. 그다음에 간 국립산악박물관, 처음에는 별로 기대를 안 했던 것치고 정말 인상적이었는데, 그 이야기를 하려면 글이 너무 길어져 이후를 기약한다.


박물관을 나오고 숙소로 돌아가 짐을 정리하고 잠시 낮잠을 청했다. 전날에 8시간이나 잤는데도 불구하고 막상 밖에 나와 이것저것 하려다 보니 갑작스럽게 졸음이 몰려왔다. 눈을 뜨고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저녁 6시가 되어서 곧장 저녁을 먹으러 대포항으로 향했다. 일어나 밖을 봤을 때 여전히 날이 밝아 시간이 그렇게 지난 줄 몰랐는데, 길게만 느껴진 겨울이 점점 끝을 향해가고 있었다.


가는 길에 갈만한 맛집을 찾아보려고 네이버에서 검색을 했는데, 뻔하디 뻔한 음식점과 리뷰가 검색 결과에서 줄을 이뤘다. 원래 계획대로 대게를 먹을까 했다가 4인당 60만 원이라는 가격에 깔끔하게 포기하고 그나마 저렴한 해산물 코스요리(메인은 회인데 대게도 2마리 포함된)를 먹었다. 그렇다고 4인에 35만 원이라는 가격이 절대 저렴한 건 아니었지만. 4년 전에 왔을 때 5명이서 대게를 풀코스를 먹어서 40만 원이 나왔던 걸 생각하면 그동안 물가가 얼마나 오른 건지 확실하게 체감하게 된다. 슬픈 일이었다. 각자 속한 곳에서 열심히 살면 성공할 수 있다는 한국식 자본주의의 믿음이 점점 약해져가면서, 사람들의 꿈에 대한 열망이 빛을 바라고, 그 과정에서 삶에 대한 허무에 빠져가고 있으니까. 오르는 물가와 함께 평가절하 당하는 노동의 가치는 그걸 더욱 가속화할 테니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머릿속이 복잡해질 무렵, 아빠가 나에게 술 하냐고 물어왔다. 처음이었다. 부모와 술잔을 맞대는 게, 20살이 되고도 3년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부모와 술을 마시는 내 상황이 어딘가 묘하면서 불편했다. 뭔가 잃어버린 시간 같다고나 해야 할까. 술을 별로 안 좋아하고, 아빠를 자주 보지 못하는 등의 여러 사정이 겹치니 묘한 상황이 벌어졌다. 내일 돌아갈 걸 생각하면 과음은 금물이라 소주 한 병, 맥주 한 병만을 시켰는데, 일부러 소주만 마신다고 거짓말 치고(딱히 이유는 없었다) 소주잔만 받아 아빠가 따라주는 술을 받았다.


이때 장난기가 발동해, 술을 거의 안 마셔본 척하려고 일부러 한 손으로 술을 받아봤다. 그러자 곧바로 엄마, 아빠 양쪽에서 반응이 왔다. 어른이 주는데 누가 한 손으로 받냐하는 등의 잔소리가 나에게 쏟아졌고, 예상했던 반응에 친구들이랑만 마셔서 한 손으로 받는 게 습관이 되어버렸다는 핑계로 상황을 모면했다. 사실 친구랑 마실 때도 잔을 떨어뜨릴까 봐 두 손으로 받는데, 자식에게 술을 가르치는 부모의 역할에서 보람을 느끼게 해주려고 그랬던 건지 조금은 충동적이었던 내 행동의 진짜 목적이 뭐였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그런 해프닝도 더해지니, 오래간만에 먹는 소주가 평소보다 달아 넘길 때의 씁쓸함이 덜해지는 듯했다.


술을 마시며 대화를 하다가 아빠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봤는데, 새삼 아빠가 나이를 정말 많이 먹었다는 걸 느꼈다. 아빠의 얼굴에 대한 내 머릿속 이미지와는 달리, 삶의 흔적이 담기면서 예전에는 찾아보지 못한 주름과 굴곡이 더해졌다. 엄마의 경우에도 크게 다르진 않지만, 상대적으로 자주 보기에 변화의 정도를 체감하지 못하는 것과 달리, 1년에 두 번 볼까 말까 했던 아빠에게 찾아온 변화는 더욱 확연하게 느껴졌다. 아빠는 늙어가고 있었다. 어쩌면 자꾸 나의 가치관과 너무나도 맞지 않는 말을 해서 대화하기 쉽지 않다고 생각한 건 필연적으로 찾아올 일일지도 모르겠다. 매번 새로운 변화에 따라 피벗 하기에는 그가 그동안 짊어온 삶의 무게가 너무 크고, 그걸 감당할 만한 양의 에너지가 50대 중반에 접어든 아버지에게 있기를 바라는 건 한 사람을 짓누를 만한 과도한 기대였다.


눈치채지 못한 사이 시간은 무심한 듯 흘러가버렸다. 붙잡을 것 따위는 없이 각자 흐름 속에 몸을 맡길 뿐이었다. 어느덧 전역 50일 남아 빨리 전역하기만을 바라고 있지만, 때론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시간을 좀 더 늘일 수는 없을까 하는 모순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러나 (우리에게 한해서는) 절대적인 시간은 그런 나의 하찮은 소망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채 그저 갈 길을 가고 있었다.


그 단순하고도 당연한 사실을 깨달은 순간, 언젠가 찾아올 삶의 궁극적인 운명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아빠와 술잔을 계속해서 부딪히는 것뿐이었다. 주름이 쌓여만 가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 어쩌면 저 수많은 주름들 중 하나는 나 때문에 생겼을지도 모른다는, 철없던 시절에 대한 후회와 죄책감 등, 온갖 씁쓸한 감정들만이 가슴속에 쌓여갔다. 얼굴은 한참 전에 붉게 달아올랐지만, 취기로는 좀처럼 이 씁쓸함이 달래지지 않았다. 도저히 내 힘으로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죽음이라는 보편적 운명에 느끼는 무력감에, 이제는 아이처럼 울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그저 하염없이 술만 들이킬 뿐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마스크 써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