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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기쓰는 복학생 Mar 12. 2023

완성되는 생각들

가치관이 만들어진다

군대에서 책을 150권 넘게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책에서 얻은 지식과 그로부터 나온 깨달음이 한데 어우러져 하나의 큰 생각거리가 생긴 적은 거의 없었다. 책 하나를 읽어 새로운 아이디어를 접하면서 스파크가 튄 적은 여럿 있었지만, 의도치 않게 비슷한 주제의 책을 여러 권 읽으면서, 그리고 그게 내가 장기적으로 우리 사회에 대해 갖고 있던 문제의식과 연결되면서 큰 생각의 파도가 생겨났다. 그동안 쉽사리 사라지던 스파크가 아닌, 생각에 지속적으로 열을 불어넣는 화염이 생겨나, 더 이상 문제의식이 한순간의 생각에 그치지 않게 해준다.


최근 기본소득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다. 예전에만 하더라도 기성 정치인들이 흔히 말하듯이, 기본소득을 그저 사회주의식 배급제도나, 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포퓰리즘 정책으로 여기며, 사유재산권이 절대적 가치로 여겨지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에서 결코 받아들여질 수 없는 제도라고 단언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우파의 전유물이라고 여기던 자유에 대한 고민을 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누리지 못하는 자유를 가져다주는 수단으로서 기본소득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대충 그런 느낌에서 시작했는데, 구체적인 나의 생각은 앞으로 더 깊게 파고들고 다양하게 공부해 보면서 세부적인 부분까지 완성되지 않을까 싶다.


늘 생각하는 거지만, 여전히 한국은 정치, 사회, 문화적인 부분에서 보수적이다. 단순히 경제 시스템에 대한 문제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떠오르는 여러 이슈들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공통적으로 그런 경향을 띤다. 과거 한강의 기적으로 정의되는 고속성장의 영광을 두 눈으로 목격했고, 그 시절의 향수가 머릿속에 짙게 남아있는 세대가 여전히 사회의 주류를 차지한다. 그래서 성장을 명분으로 외면해온 수많은 구조적 문제가 쌓여가면서 곪아갔고, 성장기를 지나 안정세에 접어들면서 저성장 시대가 시작됐다. 게다가 이젠 멀지 않은 미래에 역성장으로 뒤집힐 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었는데, 여전히 이 모든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으로 성장을 제시하는 아이러니가 반복된다. 반세기가 지나 사회가 180도 달라지면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경제를 발전시키고 가난으로부터 벗어날까에 대한 생각이 아닌, 어떻게 해야 각자가 인간으로서 더 높은 수준의 삶을 영위하는, 더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까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 그러나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은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성장"이라는 답만 제시할 뿐이다.


군대에 오기 전부터 내 최대 관심사 중 하나는 결과의 평등을 넘어 기회의 평등조차 불가능하게 하는, 우리 사회 뿌리 깊이 스며든 불평등이었다. 군대에서 한창 카뮈의 철학에 심취해있었을 때, 자유와 반항이라는 두 키워드를 군대에서의 생활과 연관 지어 생각해 보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자유라는 가치는 내 최우선 판단 기준이 됐다. 그리고 새롭게 형성된 가치관과 그동안 가져온 문제의식을 연결 지어 생각해 보면서 하나의 가설이 나왔다. "불평등은 궁극적으로 사람들로부터 자유를 빼앗아간다." 자유주의가 필연적으로 야기하는 자유의 부재라는 문제를 무관심과 현실 회피 속에 외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뭐가 문제라고 해야 하는 것 자체가 그다지 의미 없을 정도로, 우리 사회를 둘러싼 여러 문제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면서 각각의 문제를 심화시킨다. 저출산, 양극화, 저성장, 고령화, 높은 자살률, 높은 청년실업률, 꼴찌에 가까운 행복지수, 지나친 경쟁의식으로 인하나 동료의식 부재, 양극으로 치달으면서 협치와 대의라고는 보이지 않는 정치 등 전부 열거하자면 끝이 안 보일 것 같은 여러 사회문제들은 어디서부터 꼬인 건지 특정할 수 없어 매듭을 풀 갈피조차 잡지 못한 사이 서로 엮이며 더 복잡하게 꼬인다. 최근 관련 영상 자료를 보면서 생각해 본 부분이, 여전히 물질만능주의적 가치관이 사람들에게 내재되어 있는 상황에서, 언젠가 찾아올 규모의 축소의 과정에서 그동안 우리를 달래온 물질적 풍요로움을 잃어버린다면, 그동안 등한시해 온 사회적 가치의 부재가 더더욱 뼈저리게 느껴질 거다. 구성원 간의 연대는 약해졌으며, 그렇게 만인이 만인의 적으로서 존재하며 치열하게 경쟁하는 사회 분위기에서 우리를 달래주던 자본주의의 약속이 사라질 때 남는 건 공허함 뿐이다. 물질적 가치와 성공에 대한 집착 속에서 살아온 우리들에게, 성장에 대한, 물질적 풍요로움에 대한 약속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된다면, 과연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문제의식을 형성해나가고 그것들을 구체화하는 과정, 개인적으로 군 생활을 가장 잘 나타내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긍정적인 것만을 다룬다면 마음은 편하겠지만, 내가 찾아 나서고자 하는 한국을 정의하는 것들에 있어 부정적인 것(문제) 역시 빼놓아서는 안 된다. 빛이 있다면 어둠 역시 반드시 있기 마련이니까. 빛의 부재인 어둠에 대해 인정하지 않고서는 그 반대급부인 빛 역시 의미가 없다. 


그동안 끊임없이 삶의 방향에 대해 고민해왔고, 이제 와서 어느 정도 내가 추구하는 게 무엇인지에 대한 그림이 어느 정도 완성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제야 고작 23살에 불과한 청년이지만, 앞으로 학교생활과 그 이후 커리어에 있어 길잡이가 되어줄 하나의 길잡이가 생겼다. 나는 문제를 찾아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해결법을 찾아내는 건 나보다는, 더 높은 이상과 능력을 갖춘 사람들의 몫이라고 하기에, 당장 내 시선에 들어오는 세상의 문제를 예리하게 짚어내는 명철한 의식을 갖추고, 내가 발견한 것들을 글에 세세히 기록하고자 한다.


영웅은 난세에 태어난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온갖 복합적인 문제들을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현대 사회에서 영웅은 특정 개인으로 정의되지 않고, 난세 역시 특정 시기로 압축되지 않는다. 서로 다른 수많은 사상들이 정당성을 인정 받고, 각각의 가치관대로 살아가는 과정에서 의지와 무관하게 누군가는 악역이 되고, 누군가는 선역을 자처하게 된다. 그렇게 필연적으로 갈등이 생겨난다. 그런 점에서 현대 사회에서는 우리 모두 영웅(선역)이 될 수도, 악역이 될 수도 있는 여지를 가지고 살아간다. 누가 영웅인지 악당인지 구분할 수 없는 모호성이 지배하는 현대사회에서, 흔들리지 않는 절대적 가치을 찾아내는 것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된다. 그런 이유에서, 어려운 시기일수록 시대를 막론하고 지향해야 하는 소중한 가치를 다루는 위대한 작품이 탄생하는 게 아닐까.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나의 의지가 구체화된다면, 그런 방향성에 수렴하지 않을까 감히 추측해 본다.


형태를 막론하고 우리의 이야기를 담아내려고 한다. 그 안에 나의 문제의식을 담아내고, 언젠가 다른 시선과 관점에서 볼 때 우리가 쉽사리 상상하지 못했던 완전히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 그런 것들이 쌓이고 쌓여, 길을 잃은 듯한 우리 사회의 미래에 대한, 한국인의 삶에 대한 자그마한 통찰을 선사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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