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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기쓰는 복학생 Mar 12. 2023

집착

드디어 내려놓은 휴가에 대한 미련

우린 모두 각자 나름의 이유로 무언가에 집착하면서 살아간다. 그게 정말 그에게 엄청난 중요한 의미를 지녀 반드시 가져야만 한다던가. 아니면 중요하다고 착각해 어느새 이유는 묻지 않은 채 맹목적으로 따라가던가. 그 사실을 왜 이렇게 늦게 깨달았던 걸까. 휴가 1,2일 차이로 무척 예민하게 반응하고, 부조리의 감정 속에 내적 에너지를 소모해왔다. 독후감으로 휴가를 이미 2일 받은 상황에서, 어떻게든 하루 더 받아보려고 남은 군 생활 한 달 안에 무리하게 10편을 더 써보겠다고 아둥바둥하는 나 자신이 어느 순간 한심하게 느껴졌다.


누군가 말하기를 분명히 난 무언가에 집착하고 있었고, 그것이 휴가라는 걸 최근에 와서야 깨달았다. 군 생활 동안 읽은 150 권 넘는 책, 그리고 그걸 기록한 50여 편의 독후감, 그 안에서 얻은 지식과 깨달음, 그리고 그걸 글로써 기록해 세상 밖으로 내보냄으로써 구체화시킨 과정 속에서 가지게 된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야. 당장 읽은 책들 중에 어떤 내용이 기억나냐고 묻는다면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겠지만 분명 그것들은 내 기억 어딘가에 남아 내 모든 지적 자산의 자양분이 되었다. 나에게 하나의 전환점이 되어준 군 생활을 정의하는 결과물이고, 언젠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 시간 속의 기억이라는 걸 생각하면, 그로부터 내가 얻어낸 것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커지는 그 엄청난 가치를, 한순간 쓰고 나면 사라지는 휴가라는 척도로 측정하려는 어리석은 짓을 반복해왔다. 이전에 자본주의 사회의 문제점에 대해 생각하면서,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여러 중요한 가치에 값을 매겨가며, 효율성과 수익성을 따져가며 평가절하시키는 신자유주의 가치관을 비판한 적이 있는데, 돈에 대한 맹목적인 추구와, 휴가에 목매단 듯이 집착하는 나의 모습은 부끄럽게도 차이점을 찾아볼 수 없었다.


지금까지 군 생활을 해오면서 내가 무엇을 얻었는지 생각해 봤다. 수많은 배움과 고민의 과정 속에서 얻은 깨달음, 등한시해 온 엄청난 양의 지식, 육체적 건강(요즘엔 잘 모르겠지만), 제한과 통제로 가득 찬 생활 속에서 뼈저리게 느낀 평범한 일상의 감사함과 기본권이라고 부르는 온갖 기본적인 것들, 특히 자유의 소중함, 그리고 수많은 고민의 과정 속에서 생겨난 미래에 대한 기대와 불안까지. 나열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많은 걸 얻은 시간이었지만, 그저 한순간 사라질 것에 불과한 휴가에 대한 집착으로, 그것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는 중요성을 지닌 소중한 것들을 외면해왔다. 내 열정과 에너지를 쏟아낼 대상은 철조망과 벽으로 둘러싸인 주둔지 밖에 존재하는데, 그 당연한 사실을 알면서도 모른 척해왔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니 부끄러움에 환멸감이 들 정도다.


겨울을 지나면서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 날파리 떼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동안 고대해온 계절, 봄이 돌아왔음을 알리고 있었다. 간절하게 기다려왔지만, 동시에 불안과 걱정을 감추지 못하는 새로운 세상으로 향하는 문이 점차 윤곽을 드러낸다. 예전과 달리 거리가 가까워지니 미래에 대한 그림이 좀 더 분명하게 보이면서, 저 멀리 지나온 과거는 비교적 흐릿하지만, 더 넓은 시야에서 볼 수 있게 되어 편협한 나의 생각과 행동을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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