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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기쓰는 복학생 Mar 18. 2023

복학 준비 체크리스트

코학번 군필 유학생의 인생 첫 미국 생활 준비하기

대면 수업으로 전환된 지는 이미 2년 가까이 됐지만(2021 가을학기부터), 코로나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게 된 시점은 올해부터인 것 같다. 게다가 1년 6개월간 나를 붙잡아둔 국방의 의무라는 국가적 차원의 구속으로부터 해방되면서, 코로나 때문에 온라인 세계 속에 갇혀있던 나의 미국 생활 역시 드디어 시작된다. 긴 시간 동안 군대라는 조직에서 있다 보니 타성에 젖으면서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스스로에 대한 기준치를 낮추게 되면서 밖에는 당연한 일상으로 여겨지던 사소한 도전에도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어느덧 전역까지 한 달. 전역하자마자 이곳저곳 여행을 다닐 계획이라 시간적 여유가 별로 없을 것 같아 지금부터 복학과 동시에 미국 생활 준비를 시작했다. 가족 중에 미국 관련해서 아는 사람도 없어 도움을 받기도 요원하고, 내 주변 모든 요소들을 통제하고 관리해 준 군대를 벗어나자마자 모든 걸 혼자 힘으로 해결해 나가야 하는 미국 생활에 대해 아직 제대로 아는 게 단 하나도 없어 어디서부터 준비해야 할지 도저히 감을 잡지 못했다. 넘쳐나는 혼란 속에 그동안 가지고 있던 불안이 그 정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래도 일주일 전부터, 침착하게 필요한 것들이 뭔지 생각해 보면서 리스트를 만들었고, 거기에 맞게 어떤 걸 준비해 나가야 하는지 구체화했다. 우선 크게 보면 3가지로 나뉘는데, 다 하는데 한 달 정도로 잡았지만 전부 다 살면서 처음 해보는 것들이라 이제야 막 시작한 나로서는 여전히 모르는 것들 투성이다.



1. 복학 신청 및 비자 발급받기


우선 첫 번째는 복학 신청하기! 애초에 돌아갈 학교가 있어야 뭐든 시작할 수 있으니까, 가장 간단하면서도 중요한 과제다. 구글에 UC Berkeley readmission이라고 검색하니 친절하게도 학교 웹사이트에 관련 페이지가 검색 결과 최상단에 올라있었다. 하긴 뭐 2년 전에 휴학(withdrawal)할 때도 이런 식으로 했으니까, 근데 내용이 왜 이렇게 복잡한 거지. 가뜩이나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내 영어 실력이 퇴화했기 때문인 건지, 아니면 실제로 복학하려면 휴학할 때보다 좀 더 많은 걸 요구해서인지, 한 번 읽고서 좀처럼 뭘 준비해야 하는 건지 좀처럼 파악할 수가 없었다. 


복학 관련 가이드라인! 공학부(School of Engineering)는 이외에 다른 서류도 요구한다.

사실 알고 보니 각 학부과정마다 요구하는 서류의 종류가 달라서 그런 것이었고, 내가 속한 College of Engineering 사이트에 따로 있는 가이드라인을 읽고 나니까 단계마다 어떻게 하면 될지에 대한 대략적인 그림이 그려졌다. 그래도 처음 해보는 것들 투성이라 혹시나 해서 학과(에너지 공학, Energy Engineering) 어드바이저한테 이메일을 넣었는데, 개인적 사정으로 자리를 비워 확인할 수 없다는 연락만 받다가 5일 만에 답장을 받았다. 알고 보니 내 개인 이메일이 스팸 메일함에 가있어서 확인하지 못했다고 했다. 원래는 내 학교 이메일이 따로 있는데(...@berkeley.edu로 끝난다!) 휴학 이후로 계정이 정지돼서 어쩔 수 없이 개인 아이디(Student ID)를 넣어 메일을 보냈는데 혹시나 내 신분을 증명할 방법이 없어 답장이 안 온 건가 싶어 일주일 내내 안절부절못하다가 드디어 답장을 받아보니 불안감이 조금은 해소됐다. 


당장 제출해야 하는 서류는 readmission form(말 그대로 복학 신청서)이랑 program  planning(복학 이후 졸업까지 내가 가지고 있는 학업 계획. 그냥 학기 별로 수업 뭐 들을 거냐 물어보는 거다) 정도였다. 아직 복학처리가 된 게 아니어서 F-1 학생비자를 받기 위한 I-20 서류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전역 전까지 다 마무리하려면 말출 나가기 전까지 기초 서류 정도는 정리를 해놔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2. 집 알아보기


요즘 내가 가진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다. 모국에서라도 집을 구하는 건 여러 (대표적으로 사기와 같은) 이유로 복잡한 일인데, 제대로 살아본 적도 없는 미국이라는 곳에서 부모님의 도움 없이 집을 구한다는 건 솔직히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부담을 갖게 되는 일이다. 차라리 기숙사에서 살면 그런 고민을 덜 수 있겠지만, 이미 전역이 학기 시작 이후인 친구를 위해 같이 살기로 합의를 한 상태라 어쩔 수 없이 집을 알아보게 되었다. 사실 지금이 아니더라도 언젠가 밖에 살 날이 올 텐데, 당장의 일들을 전부 헤쳐나간다면 나중에 여러모로 도움이 될 중요한 경험이 되어주지 않을까 싶다. 


최근 알아보면서 괜찮아 보이는 집들의 리스트를 만들어 비교하고 있다. 다양한 선택지가 있어 하나 고르기가 쉽지 않다.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조건은 세 가지. 금액, 집 구조, 그리고 내부시설이다. 학교로부터의 거리는 그다지 고려하지 않기로 했다. 최대 2,3마일 정도 떨어져 있는 집을 구해도 크게 상관이 없어 보이는 게, 어차피 학교에서 자전거를 타고 다닐 계획이기도 하고, 가능하다면 버스를 타고 갈 계획도 있다. 학교로 간 이후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노릇이지만, 아직 집이랑 학교 사이에 어느 정도 거리가 있어야 조금 힘들다고 집에 가서 늘어질 여지를 줄일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해 거리에 그다지 연연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미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는 친구에게 개인적으로 물어봐 여러 정보를 얻었고, 여러 사이트를 뒤져가며 학교 근처에서 괜찮은 집을 찾아봤는데, 둘이서 살기에 적당한 집들은 대개 1인당 1200에서 1500 달러 렌트를 요구하는 듯 보인다. 이미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봐야 하는 싶은 부분이 가구에 관련된 부분인데, 만약 집을 옮기거나 할 때 번거롭게 매번 개인 가구나 짐들을 옮기는 수고를 할 바에는 차라리 기본적인 가구가 잘 갖춰져 있는 집으로 들어가는 게 편리해 보이기는 하다. 그러나 대개 그런 기본 시설들이 잘 갖춰져 있는 곳들은 렌트가 비싸다는 게 문제. 뭐라고 해야 할까 부모님이 교육비랑 생활비를 충분히 지원해 줄 수 있을 정도의 경제적 여력을 갖추고는 있지만, 설명할 수 없는 무언의 압박감이 자꾸 내 마음속에서 나를 억누른다. 어떻게든 빠르게 돈을 벌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최소한 인턴십을 하면서 생활비 정도는 벌려면 정말 앞으로의 시간 동안 내 실력을 확실히 끌어올려야 한다. 


당장 그림으로 그리는 건 sophomore(2학년) 때는 친구랑 둘이서 살고, junior(3학년) 때는 여러 명이서 다 같이 사는 셰어하우스 같은 곳에 들어가고, senior(4학년) 때는 기숙사로 들어가는 것 정도다. 아직 제대로 알아보지 않아 결정된 건 아니지만, 그런 계획대로면 주거 비용이 제일 많이 들어가는 건 2학년이지 않을까 싶다. 여러모로 돈이 많이 들어갈 걸 생각하니 괜히 아낌없이 지원해 주는 부모님한테 미안함이 들어 단순히 나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뒤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생각해 앞으로의 시간에 조금 책임감을 가지고 임해야 한다는 다짐이 생긴다. 그런 책임감이 너무 무거워지면 압박이 돼서 불안을 가중시킬 수도 있으니,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는 게 중요해 보인다.


3. 커리어 플랜 짜기


당장 급한 일은 아니지만, 지금 같이 여유가 있을 때 대략적인 계획을 세워둬야 앞으로의 방향성을 설정하기 편할 것 같아 중요성이 크다. 아직 내 진로에 관해 명확하게 정해진 건 없지만, 확실한 건 Energy Engineering(에너지 공학)이라는 내 전공을 살려서 일하고 싶다는 건 분명하다. 예전에는 연구원이 되는 것에 대한 열망이 컸는데, 석사와 박사를 거쳐야 하기도 하고, 그렇게 되면 젊을 때 주도적으로 커리어 방향성을 설정하기 쉽지 않아 보여 관심으로부터 멀어진 지 오래다. 요즘 떠오르는 거는 에너지 관련해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쪽으로 공부를 꾸준히 해나가고, 공학 분야에서 추가로 경제학이나 사회과학 공부를 해서 대기업들의 지속가능성 관련 부서에 들어가는 게 괜찮은 그림처럼 보인다. 이럴 것까지 생각했으면 1학년 때 최대한 학점을 열심히 따놨어야 했는데, 학점을 올리는 게 아니라 티어를 올린 1년이라는 시간이 너무나도 아까운 거에 대해서는 후회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에 그런 경험들을 타산지석 삼아 앞으로 최대한 열심히 해봐야겠다는 생각뿐이다.


위에 언급된 program planning을 다음 주 안에 마무리하면서, 앞으로의 학업이나 커리어 관련 계획을 세워보려고 한다. 단순히 지식을 쌓으면서 더 많은 것을 알고 싶다는 목적의식을 갖고 있던 군 생활때와는 달리, 이제는 분명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배움에 대한 방향성을 분명하게 설정해야 한다. 이런 말 여기서 해도 되나 싶지만 내가 가진 능력을 바탕으로 정계에 입문해보고 싶은 개인적인 욕심도 있기 때문에 기왕이면 늦지 않은 나이에 내 분야에서 확실한 위치나 권위를 가지거나, 기타 다른 수단을 활용해서 개인적인 명성을 쌓고자 한다. 사실 글을 쓰는 것도 단순히 인생을 기록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런 목적 역시 반영되어 있기 때문에, 앞으로는 내 커리어나 자기 계발 관련된 포스팅도 꾸준히 올릴 계획이다. 


이제 미국으로 가기까지 남은 시간 약 5개월. 남은 시간이 생각보다 그리 길지 않지만 전역 이후 해나갈 여러 일들을 생각하면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 임팩트 있는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정말 기대가 된다. 군 생활동안 이뤄냈던 것 이상으로, 앞으로 1년 좀 넘는 기간 동안(2024 봄학기가 끝날 때까지) 엄청나게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UC Berkeley라는 이름의 명문대가 내가 가진 잠재성과 능력에 비해 좀 과분한 것 같아 부담스러운 적도 있지만, 지금 와서 보면 앞으로의 3년은 내 인생에 있어 정말 중요한 기회다. 물론 그 이후의 시간에 찾아오는 기회들이 더 중요하겠지만, 애초에 빌드업을 제대로 못해놓으면 그런 것들은 찾아오지조차 않을 수도 있다. 


근성을 가지고 하기 싫은 일이더라도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을 책임감 있게 해 나가면서 찾아오는 성취감, 이미 앞서간 타인과의 비교 속에 느끼는 상대적 좌절감 등, 군대에서는 좀처럼 느껴보지 못했던 다양한 감정들 속에서 나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20대가 되면서 단 한 번도 내가 어른이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데, 내 앞에 닥친 여러 과제를 하나씩 해결해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 스스로 인정할 수 있는 어른이 되어있지 않을까. 아 빨리 졸업하고 돈 벌고 싶다. 학비의 부담으로부터 벗어날 수만 있다면 정말 날아갈 듯이 마음이 가벼워질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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