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글쓰기에 좀 많이 게을러졌다. 이게 뭐라고 해야 하지 오히려 할 일이 많아 바쁠 때 글을 더 열심히 쓰고, 할 일이 없을 때는 좀처럼 글을 쓰지 않게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 이번 휴가 때는 시간을 내서 되도록 글을 많이 써보려고 했는데 마땅히 쓸만한 주제가 떠오르지 않기도 하고, 정작 좋은 주제가 있어도 글을 쓰는데 1시간 남짓 한 시간을 투자하기에는 누워서 유튜브를 본다든지 친구와 게임을 한다든지 등 재밌는 것들이 너무 많다.
그렇게 써야겠다는 다짐을 미루고 미루다, 오늘이라도 글을 좀 써봐야 할 것 같아서 영풍문고 앞 건물 대리석 벤치에 앉아 글을 쓰고 있다. 핸드폰 핫스팟에 연결해서 쓰니 구글 닥스 반응성이 떨어져서 불편하네. 벌써 구매한지 4년 된 노트북의 성능이 떨어진 건지 자판을 입력해도 반응이 너무 느려 결국 오랜만에 바탕화면에 짱박아 둔 채 잊고 있었던 MS 워드를 켰다.
그래도 앉아서 글 쓸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하나. 영풍문고 안에는 좀처럼 앉아서 책을 읽거나 다른 일을 할만한 장소가 없기도 하고, 있어도 내부 카페 전용 공간이라 음료를 사지 않고서는 자리를 얻을 수가 없는 노릇이다. 원래였으면 음료 하나 주문하고 편하게 앉아서 썼겠지만, 아까 약속에서 카페를 이미 한 번 갔다 와서 얼마 안 돼서 또 뭔가를 마시는 건 지나친 것 같아서 그만뒀다. 눈치 안 보고 앉아서 뭔가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없는 게 영풍문고를 쓰면서 가장 불편한 점이다(나름 교보문고는 나은 편). 그래도 뭐 야외에서 강하게 몰아치는 봄바람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글을 쓰는 것도 조금은 낭만 있지 않을까. 바람이 너무 세서 노트북이 떨어질 것 같아 세게 붙잡고 있긴 한데, 설마 떨어져서 망가지진 않겠지.
이렇게 보니까 워드 가지고 뭘 쓰는 거 거의 2년 만이다. 한창 학교 다닐 때 과제 제출은 워드로 하는 게 편해서(구글 드라이브는 이상하게 쓸모없는 파일이 너무 많아 좀처럼 정리가 안 되어 있었다) 맨날 이것만 썼는데, 막상 오랜만에 쓰니까 글자끼리 간격이 넓어 읽기는 편하지만 쓰는 입장에서 한 페이지에 너무 적은 글자가 들어가는 것 같아 적응이 안 된다.
이런 낯선 기분, 어제도 새로 산 아이폰 14 프로로 이것저것 해보면서 느꼈다. 비록 10년 동안 갤럭시 스마트폰만 사용해서 그런지 iOS 유저들의 감성이라는 걸 제대로 이해하고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감이 없지 않아있지만,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어쨌든 14프로야 잘해보자. 난 물건 하나 오랫동안 쓰고 싶으니까 되도록 안 잃어버리고 계속 쓰려고. 너한테 애플 케어 플러스도 들어줄까 생각 중인데, 어떻게 하면 좋으려나. 애지중지 다루다 보면 파손은 안 될 것 같긴 한데 그래도 비용 기댓값 계산해 보면 사는 게 맞으려나. 우선 졸업할 때까지 쓴다고 가정하면 최소 3년은 쓰는 건데, 그전에 한 번도 안 깨지리란 보장도 없고.
군인이라는 신분을 증명해 주는, 그리고 부대원들의 군기강의 지표(라고 주장하는)인 짧은 머리마저 흔들릴 정도로 바람이 거세다. 20도 남짓한 따뜻한 기온이 무색하게 몸을 벌벌 떨 정도로 춥다. 게다가 벤치 위에 양반다리로 앉아있으니까 발도 저리고. 이제 슬슬 끝내고 돌아가야지. 나중에 무료로 제공되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봐야지. 예전에 유현준 교수의 책에서 비슷한 주제로 우리나라 도시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그의 강연이랑 책을 읽고 나서인지 현실을 확실히 다르게 인식하게 된다고 해야 할까. 어쨌든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