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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기쓰는 복학생 May 13. 2023

중동 여행 2일차-1

늦게 온 엑스포는 그다지 볼 게 없다

이전에 계획했던 대로 코로나로 인해 1년 넘게 미뤄진 끝에 내가 입대했을 때 즈음 시작해서 작년 4월 막을 내린 두바이 엑스포 2020으로 향했다. 숙소가 있던 Mashreq역에서 종점인 Expo 2020역 까지는 두바이 메트로 레드라인을 타면 30분이면 도착하는데, 도시 중앙에서 벗어나 있던지라 타고 있는 사람도 별로 없어 편하게 바깥을 구경하면서 갔다.



Expo2020역은 엑스포가 1년 전에 이미 끝났다는 걸 증명하기라도 하듯이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역사 자체는 엑스포에 맞춰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건지 내부 디자인도 현대적으로 세련됨은 물론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다. 그동안 한국을 빼면 지하철을 탄 나라라고는 일본이나 기타 유럽국가들 밖에 없었는데, 인프라를 갖춘 시기가 오래된 곳들이라 길어봤자 생긴 지 50년 정도밖에 안 돼서 시설이 매우 좋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개통한 지 10년도 안 된 두바이 메트로 시설을 보면서 결국 인프라의 수준에 관련된 문제에 있어 최근에 생겨났는지에 대한 여부가 상당히 중요하다는 걸 깨닫는다. 물론 노선망도 그렇고 가격적인 면에서 서울 지하철이 두바이 메트로보다 훨씬 우월한 건 사실이지만, 운행 중에 소음이 거의 없는 것, 시설이 현대적이고 세련됐다는 건 두바이 메트로만의 큰 장점이다.

Expo2020역 내부 모습

역에서 나와 5분 정도 걷다 보면 엑스포 시티 정문과 함께 Al Wasl Plaza(알 와슬 플라자)가 눈에 들어온다. 거대한 돔형 구조에 금빛을 뽐내는 세련된 디자인을 갖고 있는데,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연결이라는 의미인데, 그 의미처럼 엑스포의 3개의 구역인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District), 모빌리티(Mobility District), 오퍼튜니티(Opportunity District)를 연결해 주는 중심점 역할을 한다. 엑스포 스태프가 말하기를 매일 저녁 이곳에서 이벤트 같은 걸 하는데, 놓치면 안 될 정도로 화려해서 사람들이 주로 일몰 이후에 많이 찾아온다고. 아쉽게도 오전 시간 동안만 보고 떠날 생각이었던지라 아쉽게 됐다.



전시관 같은 것들은 전부 10시에 열리는데, 30분 정도 일찍 도착해서 할 것도 없겠거니 그냥 정처 없이 엑스포 시티 내부를 걸어 다녔다. 10년 전에 여수 엑스포를 갔을 때도 정말 컸던 걸로 기억하는데(심지어 그건 등록박람회도 아니었다), 두바이 엑스포는 규모적인 면에서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그래서 알 와슬 플라자에서 3 AED만 내면 탈 수 있는 내부 택시 같은 게 있었는데, 이곳의 구조를 잘 모르고, 기왕 온 거 구석구석 다 돌아보고 싶어 내내 걸어가기를 택했다.




첫 번째로 간 곳은 내 관심사에 따라 역시 Sustainability Pavilion(지속가능성 파빌리온)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입구를 찾아 들어갔는데, 알고 보니 무료가 아니라 입장권을 구매해야 들어갈 수 있었다. 이곳만 들어갈 수 있는 게 있고 엑스포 전체를 다 둘러볼 수 있는 일종의 종합입장권 같은 게 있었는데, 꽤 여러 곳을 돌아다닐 것 같아 120 AED(한화로 약 42,000원)의 가격을 지불하고 종합입장권을 한 장 끊었다. 역시 두바이라고 하더라도 공짜 이런 걸 바라면 안 되지… 처음에 그런 기대하고 갔던 나의 안일함을 조금은 반성하게 됐다.

지속가능성 파빌리온의 건물을 장식하는 에너지 트리(Energy Tree). 이곳에서 발전하는 전력으로 내부 설비를 가동한다고 한다.

거대한 태양광 발전 구조물로 되어있는 지속가능성 파빌리온의 주된 테마는 숲과 바다였다. 숲 테마관에서는 숲에 있는 나무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으면서 단순히 물과 영양분을 주고받는 걸 넘어 훨씬 복잡한 상호작용을 함으로써 일종의 사회를 형성한다는 내용과(예전에 친구랑 경복궁에 갔을 때 그런 비슷한 류의 연결을 하는 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지상 생태계에 있어 숲이 하는 중요한 역할, 벌목과 같은 삼림 파괴가 잠재적으로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의 주제를 다루는 전시가 있었다. 뭐 이런 내용들은 고등학생 때 AP Environmental Science 시험을 준비하면서 이미 접했던 내용인지라 그다지 새롭진 않았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건 숲 테마관 마지막에 있던,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자연에서 어떤 자원을 얼마나 사용하고, 잠재적으로 가져오는 환경 파괴에 관한 주제를 다루는 코너였다. 직접 선택을 하는 것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오는 이지선다 질문도 여럿 있고, 천장에 달린 괴물 비슷 하게 생긴 것의 입에 자원이 들어가면 그것에 맞게 상품이 나오는 연출이 흥미로웠다. 바다 테마전시관 역시 바다 생태계와 그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로 비슷한 형식의 연출을 하고 있었다. 그 두 전시관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형태에서, 어느 테마를 먼저 볼지 고르는 방식이었는데, 어딜 먼저 가든 전체적으로 큰 차이는 없었을 것 같다.

내부의 모습. 화면에 나오는 2가지 선택지 중에서 하나를 고르면, 그에 맞게 재밌는 사실들을 알려준다. 출구 쪽에는 스코어보드가 있어 다른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 보여준다.




구역은 크게 3가지로 나뉘어 있지만 그 이외에도 Women’s Pavilion이나 Vision Pavilion(비전 파빌리온)같이 자잘한  전시관이 있었다. 아쉽게도 Women’s Pavilion에서는 (특히 이슬람 문화권에서의) 여성의 인권문제에 대한 의식을 제고하고, 여러 장벽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으로 발자취를 남긴 여성상을 기록하고 있었다. 여성의 적극적인 사회참여와 인권신장을 강조하는 메시지가 이슬람 국가의 국제 행사에서 나온다는 것이 어딘가 오묘한 느낌을 준다. 



흔히 사람들에게 이슬람교라고 하면, 근대적 가치관으로 바라볼 때 흔히 여성을 탄압하고, 그들을 남성을 위한 헌신의 존재라고 여기는 문화를 가진 것으로 인식하는데, 근 몇 년 동안 수니파의 근본이었던 사우디 아라비아에 찾아온 여러 사회적 변화와 두바이에서 목격한 모습들은 견고해 보이던 이슬람 문화권에도 조금씩 변화가 찾아오고 있는 건가 하는 희망을 품게 했다. 이런 경우에 있어서도 대개 1인당 GDP가 높은 국가에서 국민의 의식 수준에 맞게 인권의식이 높아지기도 하고, 서방세계와의 인적, 문화적 교류가 늘어나 자연스럽게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관을 따라가는 경향이 있는 것 같긴 하다만. 그러나 우리가 소식조차 제대로 접하지 못하는 수많은 곳에서 여전히 약자들이 기본적인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을 생각하면, 인권의 보편성이라는 문제에 있어 선진국뿐만 아니라 제3세계로 분류되는 수많은 개발도상국에서의 변화 역시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떠나기 전 출구에서  #ACTFOREQUALITY(평등을 위해 행동하자(?)라는 의미다) 해시태그를 달고 인스타그램이나 다른 SNS에 공유해 달라는 코너가 있었는데, 메시지에는 동의하지만 괜스레 어떤 성향을 지지하는 듯한 게시물을 올리기에는 부담을 느꼈다. 결국 SNS 안 한다고 거짓말 치고 도망치듯이 나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완전한 동의의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그랬던 건가 싶기도 하고. 예전에 비하면 확실히 그런 진보적인 생각들에 많이 열려있지만 나 역시 여전히 갈 길이 먼 사람이다. 어떤 생각을 하더라도, 논란을 무릅쓰고 소신 있게 드러낼 용기는 부족하다는 걸 반성하게 된다. 용기에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함부로 확신을 가지기에는 아직 세상에 대해 모르는 게 너무나도 많다.




관람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지속가능성 구역(Sustainability District)을 떠나 오퍼튜니티 구역(Opportunity District)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나 오퍼튜니티 구역의 메인인 오퍼튜니티 파빌리온은 올해 연말에 진행되는 UN의 기후회의인 COP28 개최준비로 한창 내부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처음 갔을 때는 어디가 입구인지 찾느라 계속 주변을 헤매고 있었는데, 친절하게도 주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인부가 와서 공사 중이어서 지금은 닫고 있고, 대신 근처에 Stories of Nations라는 곳에 가면 엑스포 기간 동안의 참가국들의 기록이 남아있다고 말해줬다. 실제로 티켓을 보니까 리스트에 오퍼튜니티 파빌리온은 사라져 있었다. 결국 아쉬움을 남기고 발걸음을 돌리는 수밖에 없었다.

COP28 홍보. 모쪼록 국제적 협력이 잘 이뤄져서 기후위기에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기를..


모빌리티 구역으로 가기 전에 오퍼튜니티 구역의 Stories of Nations에 들렀다. 엑스포 개최기간 동안 참가국들의 기록을 보관해 놓은 곳인 Stories of Nations에서는 참가국들의 여러 물건들을 전시하고, QR코드로 링크로 들어가 VR로 과거 전시관 내부를 볼 수 있었다. 엑스포에 대한 영상을 보여주는 코너도 있었는데 특이하게도 프로젝터가 벽을 비치는 방식이 아니라 나무로 된 원형 벤치에 누워서 천장에 있는 스크린을 통해 영상을 보는 구조였다. 굴곡에 따라 편하게 누울 수 있고 나무 재질 자체도 매끈해 누워서 멍 때리느라 영상은 뒷전이었던지라 무슨 내용이었는지 자세하게 기억은 안 난다. 건물을 나서기 전에 직원에게 한국 전시관은 어디에 있었냐고 물어보니 모빌리티 구역에 있다는 말을 듣고 곧장 그곳으로 향했다.

저 원형 벤치에 바깥쪽에 다리를 둔 채 누워 천장에서 나오는 영상을 보면 된다.(출처: The National)


모빌리티 구역으로 가기 전에 점심을 먹으려고 하는데, 엑스포가 끝난 이후라 그런지 기존에 운영하던 식당은 대부분 문을 닫았고, 유일한 식당은 알 와슬 플라자에 있는 AL-FANAR Restaurant(지도:https://goo.gl/maps/bjCLskU7F9o78QGi7)뿐이었다. 간판에 있던 Authentic Arabic Cuisine이라는 소개와 달리 실제 메뉴에 있는 음식들은 비리야니나 샤와르마 같이 남아시아에서 유래한 것들도 있었다. 대체 아랍 음식의 근본이 뭔지 궁금해 여러 가지 검색해 보니까 아라비아 반도 자체가 과거부터 이집트로 대표되는 북아프리카, 오스만 제국, 좀 멀지만 인도와 같은 다양한 문명과 맞닿아있는 지리적 요충지 중 하나라 여러 문화가 한데 만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게다가 최근에는 남아시아 출신의 외국인 노동자들의 비중이 높아서 그쪽 음식을 파는 식당이 많을 수밖에. 



그런 점에서 본다면 우리의 전통음식이라고 주장하는 김치 역시 유래가 어디였던가를 따지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질 정도로 다양한 형태로 파생되면서 여러 국가에서 자리 잡고 있는 상황을 생각할 때, 김치는 무조건 한국 꺼고 나머지는 가짜라고 주장하는 일종의 국뽕에 관해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 우리의 고유한 문화를 지키는 노력 역시 중요하지만, 다른 문화끼리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동화되기도 하니까. 식문화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는 식사시간이었다. 메뉴는 무통(2년 이상 자란 양) 비리야니와 감자튀김, 물을 시켰는데, 가격은 90 AED(한화로 약 32,400원) 정도로 역시 엑스포라 그런지 가격대가 꽤나 나갔다. 맛은 그럭저럭 무난해서 먹을만했고, 양이 많아서 첫끼로 배불리 먹었다. 

무통 비리야니와 감자튀김, 그리고 후무스(Hummus)와 병아리콩 조림. 후무스는 처음에 마요네즈인 줄 알고 감자튀김에 찍어먹어 봤는데 어딘가 시큼한 맛이 나서 포기했다




식사를 마치고 난 후 곧장 모빌리티 구역으로 향했다. 원래는 Stories of Nations 같은 세부적인 전시관도 전부 둘러볼 계획이었지만, 벌써 오후 2시가 넘어 여기서 더 끌다간 이후 일정에 차질이 생길 것 같아 간단하게 모빌리티 파빌리온만 갔다가 비전 파빌리온을 마지막으로 엑스포에서의 일정을 마치는 걸로 계획을 수정했다. 나름 세계 최대 규모의 엑스포인데 이 넓은 곳을 오전 안에 다 둘러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내가 안일했다. 아직까지는 여행 초보 티를 실컷 내고 있다.



지속가능성 파빌리온의 솔라플라워 구조물도 이색적이었지만, 마치 UFO 같은 형상을 한 모빌리티 파빌리온(Alif:알리프)도 이에 못지않았다. 건축에 딱히 조예가 없어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만, 내 관점에서 나름대로 해석해 보자면 모빌리티(이동성)라는 주제에 맞게 이동수단이 끝없이 진화하면서 언젠가 지구를 넘어 우주에서의 운명을 개척해 나갈 인류 문명의 미래에 대한 염원을 담고자 하는 게 아닐까 싶다. 

다시 보니까 알리프보다 테라가 좀 더 UFO를 닮은 것 같기도?



내 개인적인 관점은 여기까지 해두고, 모빌리티 파빌리온의 전체적인 테마 역시 그런 방향이었다. 걸어 다니는 것에서 시작해서 바퀴의 등장과 수레, 배, 자동차, 비행기, 우주선 등으로 이어지는 이동수단의 발전사와 함께 미지의 영역을 탐험하면서 새로운 공간을 개척해 나가는 역사를(주로 아라비아 반도의 인물에 관한) 다루고, 이후에는 이동이라는 주제에 있어 현재 세계의 모습을 보여주는 여러 데이터와 (UAE가 추구하는)미래 이동수단과 우주 탐사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있었다. 



사실 이 정도까지만 생각나고 시간상 빨리 둘러보고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겠다는 생각에 그냥 이런 게 있구나 하는 느낌으로 보고 왔다. 그나마 인상 깊었던 건 최근 UAE가 독자개발한 위성을 쏘아 올리는 데 성공했다는 내용을 알려주며 위성의 레플리카를 전시해 놨던 거였는데, 왜 모빌리티 파빌리온에서 이런 걸 놓은 건지 그 목적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처음에는 다른 나라들은 이미 수십 년 전에 달성한 성과인데 왜 이렇게까지 자랑하나 싶었다. 그러나 우리나라도 최근까지 달 탐사선을 쏘아 올리는 로켓 추진체를 독자개발했다는 소식에 온 나라가 시끄러웠다는 걸 생각해 보면 그럴 만도 하겠다. 항공우주기술과 같이 다른 나라랑 좀처럼 공유하지 않는 원천기술에 있어서 일정 수준 이상의 기술력은 그 국가의 높은 과학기술 수준을 보여준다. 동시에 예전에도 그랬지만, 특히 현대사회에서 과학 기술력은 절대적인 경쟁력이기 때문에 석유 일변도 경제에서 벗어나 중동의 허브를 꿈꾸는 UAE의 장기적인 마스터플랜을 생각하면 누군가에겐 이미 지나와 아무것도 아닐 것 같은 성과를 만드는 것조차 중요할 거다. 우리나라도 엑스포 때 모빌리티 쪽으로 참가해서 전기차 관련된 전시를 했다고 하는데, 최근 경제도 그렇고 한국의 미래 전망이 그다지 밝지 않은 상황에서, 모쪼록 한국산 전기차도 그렇고 2차 전지와 같은 다양한 제품들이 변화하는 시대 흐름에 맞게 시장 경쟁력을 갖추기를 바라며 파빌리온 출구를 나섰다.



아 그리고 두바이 엑스포에는 각 구역마다 하나씩, 총 3개의 포탈이 있다. 야외 주차장이랑 연결되어 있어서 주로 자가용을 타고 오는 사람들이 들어오는 입구 역할을 한다. 난 그중 모빌리티 포탈만 가봤는데, 시간이 좀 났다면 더 크게 한 바퀴 돌아보면서 세 군데 전부 다 가봤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렇게 큰 포탈을 따라 난 대로 같은 길이 작년까지만 해도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을 텐데, 방문객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고, 미처 마무리되지 않은 건지 아니면 엑스포 이후 새로운 작업을 하는 건지 인부들만 길 구석에서 땡볕 아래 일하고 있었다. 

모빌리티 포탈(Mobility Portal). 내가 찍긴 했는데, 대칭이 안 맞는 게 묘하게 불편하다


이제 엑스포에서 마지막, 비전 파빌리온으로 향했다. 이름만 들어서는 그냥 두바이라는 도시의 전체적인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곳일 테니, 잠깐 좀 들러서 보면 되겠지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비전 파빌리온은 미리 알고 가지 않는다면 전혀 예상하지 못할 특이한 주제로 전시를 하고 있었다.



다른 파빌리온과 달리 비전 파빌리온은 정해진 시간에 사람들이 모이면 투어 느낌이라 스태프 한 명이 안내하면서 이런저런 설명을 해준다고 한다. 처음에는 기다리는 사람이 나 하나뿐이어서 결국 또 혼자 보겠거니 했지만, 시간이 다 될 때쯤에 백인 여성(두바이에 와서 백인을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한 명이 합류하자, 칸두라를 입은 스태프 한 명이(추측하건대 그는 에미라티였다) 우리를 파빌리온 안으로 안내했다.


비전 파빌리온의 전체적인 내용은 현재 두바이의 아미르인 모함마드 빈 라시드 알 막툼의 삶과(전시물 연출의 수준을 보면 이게 주된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두바이를 완성하는 데 있어, 그리고 앞으로 두바이의 미래에 있어 그의 역할에 대한 것들을 다룬다. 뭐 최대한 중립적으로 말하면 이런 내용이고 솔직히 말해 그냥 자기들 군주를 칭송하는 내용이라고 이해하면 쉽다. 그 위치 자체가 다르긴 하지만 우리나라로 치면 윤석열 대통령의 당선 이전 일대기를 5분짜리 영상으로 보여주고, 정치인으로서 그의 위대함을 사례를 들면서 설명하고, 국민들이(주로 지지자에 한하겠지만) 직접 영상에 출연해 대통령을 칭송하는 느낌이다. 

파빌리온 안에 있는 말 조각상. 대리석으로 만든 것 같은데 세세하게 묘사된 말의 갈기가 인상적이다.(출처: Dubai Expo 2020)


이번에 처음 알았던 건데, (그렇게 가이드가 에미라티라는 걸 확신했다) 그들의 군주를(이 경우에선 아미르) 부르는 표현이 “His Highness”였다. 그니까 대충 우리가 흔히 부르듯이 윤석열 대통령이나 윤석열이 아니라 일종의 왕을 부르는 직함을 따로 사용한다. 우리말로 치면 폐하 같은 느낌.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두바이는 엄연히 전제군주제이기 때문에 서방세계로 대표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하는 지도자에 대한 비판 따위는 보이지 않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검열도 빈번히 일어난다. 뭐 무작정 리더를 비판하고 몰아세운다고 사회가 잘 돌아가는 건 아니지만, 공동체가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는 비판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 정치문화는 좀처럼 적응이 안 된다. 내가 꼬인 인간이라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만.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생각한다면 1인당 GDP가 $44000에다가(PPP기준 $76609) 그중 실질적으로 에미라티는 전체 인구의 10퍼센트 정도에 불과한다는 걸 고려하면 그들이 제공받는 복지 수준과 그로 인한 삶의 질은 더 높을 거라 감히 추측해 본다. 예를 들어 아부다비에서 친구를 만나 대화하면서 알게 된 바로는, 에미라티들은 외국인들에 비해 입학 커트라인도 상당히 낮고 경제적 사정 관계없이 전액장학금 등 다양한 혜택을 준다고 한다(게다가 덤으로 매일 다른 차를 타고 온다나). 게다가 국영기업(두바이의 큰 기업은 대부분 국영이다)이나 관공서 같은 곳에도 취직할 때 우대를 받는다는 걸 생각하면(두바이도 그렇고 UAE는 전체적으로 인구규모에 비해 국적자의 수가 적고, 나머지는 이주해 온 노동자들이 차지한다) 사회에 불만이 생기려야 생길 수가 없는 환경이다. 



그런 곳에서 살아가는 에미라티들에게(사실 내가 생각했던 것과 현실은 다를 수도 있겠지만) 두바이가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비판하는 것은 자기중심적이고 무례한 행동일지도 모르겠다. 과거 우리나라의 경우만 봐도 새마을 운동을 시작으로 다양한 계획 경제 정책이 성공적인 결과를 낳으면서 고속성장을 이룬 산업화 시기를 거쳐오면서 그 혜택을 온몸으로 누린 경험이 있다. 여전히 과거의 영광과 더불어 권위주의적 독재 정권에(결과에 대해 나쁘게 말하고 싶진 않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대한 향수에 빠져 구시대적인 가치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현재까지 국내 정치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걸 보면 그다지 다를 게 없어 보인다. 



결국 민중이 나서지 않고서는 도저히 해결되지 않을 문제가 사회 전반에 만연해 사람들의 삶을 괴롭히면, 그때야 국민이 나서 뭔가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위기의식 아래에 민주주의라는 개념이 등장하지 않을까. 사실 의식주와 더불어 존엄 있는 삶에 있어 기본적인 것들이 제대로 충족된다면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그다지 원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이곳에 와서 처음 해봤다. 그런 점에서 소수에 불과한 에미라티들이 살아가는 데 있어 UAE라는 나라는 이상적인 공간이지 않을까. 뭐 석유라는 축복과도 같은 천연자원이 그런 이상을 뒷받침하고 있긴 하다만. 



그래도 사람들마다 각자의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모르는 두바이만의 정치적 갈등 같은 게 아예 없진 않겠지. 그래도 우리같이 뉴스도 그렇고 일상생활에서조차 경쟁과 갈등이 넘쳐나는 사회와 달리 편한 마음으로 살 수 있을 것 같아 부럽긴 하다. 마지막 코너에서 영상 속에서 자기 나라 아미르를 칭송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그런 종류의 생각이 들었다. 우리도 기름이 나왔다면 사회적 가치관도 그렇고 여러 상황이 지금과는 달랐으려나 하는 만약 따위는 없는 의미 없는 망상에 빠진 채 비전 파빌리온을 나섰다.




엑스포를 떠나기 전에 우연히 인공폭포를 발견했다. 유튜브 쇼츠랑 인스타 릴스에서 사람들이 저 위에 서서 찍은 영상을 본 적이 있었는데, 이게 두바이 엑스포에 있던 거였구나. 여행오기 전에 미리 사전조사를 안 해놔서 모르고 있었는데, 하마터면 이런 신기한 구경을 놓칠 뻔했다. 이렇게 5시간에 걸친 두바이 엑스포 구경은 끝! 

Surreal(초현실) 인공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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