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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기쓰는 복학생 May 15. 2023

중동 여행 2일 차-3

두바이 외국인 노동자들을 만나다

해변가를 벗어나 길가로 나오자 호텔 공사현장에서 일하는 인부들의 모습이 보였다. 



두바이에서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흔히 우리가 떠올리는 에미라티로는 충분치 않다. 그들은 전체 인구의 15% 만을 차지할 뿐이고 실질적으로  인도, 네팔, 파키스탄, 필리핀 등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일대 출신의 외국인 노동자가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심지어 다른 국적의 아랍인이 또 현지인만큼 있다), 그들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고서는 두바이에서의 삶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UAE의 인구비율. 외국인이 압도적으로 많다(출처: globalmediainsight)

인부들을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들이 떠올랐다. 해변가를 걸었을 때는 앞으로 인생에서의 야망 같은 걸 생각했지만, 당장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위해 고된 환경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그런 것들은 무인도에서의 진주나 다름없겠다. 카타르에서처럼 두바이에서도 외국인 노동자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으려나. 일몰까지 1시간 정도 남았는데, 어딘가 더 돌아다니기에는 하루종일 너무 걸어 다녀 발이 붓기도 했고, 지출을 좀 줄여야겠다는 생각에 근처 맥도날드로 들어가 망고 블렌드 음료를 시켜 자리를 잡고 인터넷에서 두바이의 외국인 노동자에 관한 여러 정보를 검색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우리나라도 한때 외국인 노동자와 불법 체류자 관련해 인권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는데, 저출산고령화 시대에 노동 인구가 급감하고, 특히 3D 업종에서의 수요공급의 불균형이 심해지면서 다시 한번 더 외국인들에게 이주의 기회를 열어줘야 할 때가 오지 않을까. 



그러나 뉴스 기사나 유튜브 댓글을 보면 전체적인 여론은 외국인 노동자나 이민자 수용에 있어 상당히 부정적이다. 대개 그 이유로는 교육이나 의식 수준 자체가 한국 평균 이하인 개발도상국 출신 이주자들이 사회에 대거 유입 되게 되면서 초래되는 범죄율 증가 등의 사회적 혼란을 야기한다는 것과 그들이 한국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부대비용이 증가하면서 외국인들을 위해 아까운 국민의 혈세를 붓는다는 의견 등이 있다. 그 이외에 한민족이라는 단일민족국가로서의 아이덴티티가 강한 역사적 배경에서 자연스럽게 다른 인종에 대한 배타성 역시 이유가 될 수 있겠고. 


이런저런 것들을 검색하면서 데이터를 통해 두바이에서 사는 외국인 비율과 경제적 사정 등에 대해 조금은 알게 됐지만, 중동 국가들이 전체적으로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이나 처우 개선이라는 사회 문제에 있어 그다지 관심이 없는 건지 확 와닿는 최신 자료를 찾기가 좀처럼 쉽지 않았다. 결국 고민 끝에 인부들에게 직접 말을 걸어 물어보기로 했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그들에게 물어보려면 건설 현장 부근으로 직접 가서 말을 걸어야 하는데, 내가 원체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잘 못 거는 성격이기도 하고, 괜스레 잘못했다가 외국에서 해를 당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근거 없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직접 가서 물어보지 않고서는 궁금한 것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고, 길가 한복판이어서 괜히 험한 일 당할 일은 없겠거니 해 용기를 내 아까 지나쳐온 공사현장으로 돌아갔다.



시간은 어느덧 6시를 넘겨 일과가 마무리되고 퇴근 시간이 다가온 듯했다. 노동자들을 수송하는 허름한 버스가 한 대씩 오면서 사람들을 어디론가 태워갔고, 인부들은 질서에 맞게 줄을 서거나 차가 오기를 기다리거나 담벼락에 기대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하루 일과를 마무리한 후 버스를 기다리는 인부들의 모습


‘저 사이로 들어가 어떤 질문을 해야 하지? 괜히 잘못 물어봤다가 심기를 건드리면 안 되니까 신중해야 하는데.’ 한 순간 수많은 생각이 교차하면서 고민에 빠져들었다. 낯선 장소에서 낯선 사람과 만나는 건 항상 신중해지는 일이기에, 멀찌감치 그들의 모습을 보고만 있다가 어느 정도 생각이 정리되자마자 그들에게 다가갔다.



공사장 입구에 있는 자재 더미에 앉아 휴식을 취하던 사람들에게 말을 걸었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달리, 그들은 영어를 전혀 하지 못해 내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그야 두바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영어를 쓰기 때문에 이곳에서 일한다면 당연히 영어를 할 거라는 내 선입견과 현실에는 분명한 괴리가 있었다. 



그 순간 관리인으로 보이는 형광 주황색 조끼를 입은 사람이 나에게 다가와 뭐가 필요하냐고 물어왔다. 짧은 시간 동안 생각들이 빠르게 스쳐갔다. ‘설마 나를 기자라고 생각하는 건가 그냥 궁금해서 물어보려고 온 건데 괜히 쫓아내는 거 아니야?’ ‘카타르 월드컵 때 언론들이 지지고 볶은 것 때문에 여기서도 과민반응 보이면 어떡하지?’



빠르게 머리를 굴려 그에게 한국에서 온 작가인데, 두바이를 여행하면서 이곳에서 사는 다양한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기록하고 싶어서 몇 가지 물어보려고 했다고 지어냈다(거짓말은 아니었다. 그래도 1년 넘게 꾸준히 글을 써오긴 했으니까…). 그러자 그다지 답 해주고 싶지 않은 건지 그는 그저 “Don’t worry. They are paid well”이라고 말할 뿐이었다. 우리 둘 사이의 대화를 알아듣지 못하는 인부들은 흥미롭다는 듯이 모여들어 이런저런 말을 건네는데, 그들의 언어를 모르기에 나 역시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 순간, 혼란 속에서 마치 구원같이 한 사람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같은 동양인으로 보이던 그가 나에게 한국인이나 일본인이냐고 묻자, 곧바로 한국인이라고 답했다. 대부분의 경우에서 "동양인 = 중국인"으로 통용되는 것과 달리 어떻게 처음부터 내가 중국인이 아니라고 확신한 건지 도통 알 수 없었는데, 나중에 다시 생각해 보니 중국인인 그의 입장에서 보면 인부들의 노동 여건이 궁금하다고 다짜고짜 물어오는 기행을 보이는 젊은이를 보고 같은 나라 사람이라고 생각하긴 어려울 수도 있겠다. 애당초 중국인은 혼자 여행을 다니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으니까. 그는 중국에서 온 스프링클러 업체 직원으로 호텔 건설현장에서 스프링클러 설치 작업을 관리하고 있다고 했다. 최근 국가 간 갈등이 심해지면서 혐오정서가 만연한 중국이지만(그런 외교관계로 개개인에 대한 일관적으로 부정적 태도를 갖추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게 양국 사람들이 처한 현실이다), 막상 먼 타국에서 한국과 가까운 나라에서 온 사람을 만나니 반가움을 감출 수 없었다. 


그는 나에게 혼자 여행 온 거냐는 거에서부터 이런저런 질문을 했고, 나는 그의 질문에 답하면서 자연스럽게 이곳에서 일하는 인부에 관한 주제로 넘어갔다. 여기서 일하는 인부들이 월급으로 얼마나 받는지 평소에 어떻게 생활하는지에 관해 묻자, 그는 대략 1,000 정도 받는다고 했다.


“About $1,000?(한 달에 대략 1000 달러요?)"


“No, in Dirham, not US Dollar.(아니 달러가 아니라 디르함이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1000 디르함이면 한화로 약 36만 원 정도에 불과한데, 이런 곳에서 일하면서 고작 그 정도밖에 못 받는다고? 심지어 여기는 사막이어서 최고기온이 30도는 훌쩍 넘기고, 건설현장이라 안전사고의 위험도 있는데? 현지에서 생활비도 제대로 충당하지 못할 것 같은 액수의 돈을 받고 열악한 환경에서 일한다는, 상상을 훨씬 초월하는 현실을 알게 된 후 그동안 내가 당연시 여겨온 현실의 기준에 의구심이 들었다.

두바이에서 노동자 출신 국가별 평균 월급 데이터(출처: Asian Migration Centre)


한국에선 병장기준 한 달에 100만 원 받는 징집 군인만 해도 국가적 차원에서의 노예 제도라는 비판을 받는다. 그렇게 산정해도 법으로 정한 최저임금에 한참 못 미치니까. 그러나 그 강도 높은 노동으로 고작 40만 원을 받는 인부들의 현실에 비하면 밥도 배불리 먹을 수 있고, 상대적으로 위생적인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는 군대는 이데아 그 자체다. 처음엔 거짓말인가 싶어 나중에 인터넷에서 더 알아봤는데, 1000 AED 정도면 평균에 수렴하는 정도고, 실제로 국적에 따라 더 적게 받는 경우도 있었다.



왜 그렇게 적게 받냐, 이 정도 받고서는 여기서 생활을 유지하는게 불가능하지 않냐고 묻자, 그 역시 그들이 하는 일에 비해 너무 적은 페이를 받는다고 하면서, 현장에서 주는 금액은 그보다 많지만 그중 일부를 용역업체에서 가져가고 실질적으로 인부들에게 돌아가는 돈의 액수가 1000 AED 정도라고 한다. 현대 자본주의에서 가장 빈번히 보이는 고용 형태인 아웃소싱(하청)의 안 좋은 사례를 여기서도 보게 된다는 게 참. 



이래저래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의 존엄성이 온전히 존중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게 그리 쉬워 보이지는 않는다. 결국 갈수록 인간이라는 존재가 어떤 하나의 인격체보다는 대체할 수 있는 부품 취급을 받는 것 같다고나 할까. 최근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에 대한 인식이 그런 쪽에 가까운 것 같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곳 역시 심하면 더 심했지 그다지 다른 것 같지 않은 현실이 안타깝게만 느껴진다.


마침 그들이 있던 곳 길 반대편에 람보르기니 3대가 주차되어 있었다. 개인 소유인 것 같진 않고, 관광객을 상대로 단기간 렌트해 주는 업체가 홍보용으로 밖에 내놓은 것 같았다. 이처럼 우리에게 두바이는 흔히 도로에 고급 외제차들이 즐비한, 럭셔리함의 끝판왕 이미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화려함 속에 감춰져 있던 문제가 드러나면서 비로소 관광객의 시선에서 보이지 않던 진짜 두바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두 눈으로 현실 속에 내재되어 있던 문제를 바라보게 된 순간, 그동안 막연하게 갖고 있던 환상은 깨졌지만 오히려 다양한 사람들이 치열하게 살아가는 삶의 터전으로서의 두바이의 매력이 더 분명하게 느껴졌다. 



길 한편에 주차되어 있는 한 대에 100만 AED를 호가하는 람보르기니 3대, 그리고 그 건너편에는 낡아빠진 버스를 타고 노동자 숙소(Labor Camp)로 돌아가려는 한 달에 1000 AED의 급여를 받는 인부들의 모습이 동시에 존재하는 길거리의 풍경이야말로 두바이에서만 볼 수 있는 두 얼굴의 현실이었다. 누군가에겐 비극일 수도, 또 다른 누군가에겐 희극일 수도 있는 그 두 모습의 모순적인 조화 속에서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이 도시를 살아가는 게 어떤 것인지 더 알고 싶어졌다.

두바이에는 한국에서 보기 힘든 람보르기니가 많지만, 동시에 낡은 버스도 많다. 그 두 가지 모습을 동시에 한데서 볼 수 있는 것이 두바이라는 도시의 아이러니한 매력이다 

해가 지고 본격적으로 도시의 조명이 켜지면서 마리나 쪽을 산책하다가 돌아가려고 했는데, 우연히 길 구석에서 쉬고 있던 배달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다짜고짜 그에게 다가가 나를 한국에서 온 작가로 소개하면서 이곳을 여행하던 중에 두바이에서 사는 이주 노동자로서의 삶에 대해 궁금해져 몇 가지 질문해도 되냐고 묻자, 그는 흔쾌히 대화 요청을 수락해 줬다. 보통 건설현장 인부들은 대부분 영어를 쓰지 못한 것과 달리, 배달부는 직접 일을 받고 사람들을 마주해야 하기 때문에 발음이 알아듣기 쉽진 않아도 기본적으로 영어로 의사소통 정도는 할 수 있었다. 



그에게 급여나 생활여건에 대한 질문을 했는데, 급여 자체는 건설현장 인부와 비슷한데, 얼마나 일을 많이 하냐에 따라 1000-1500 AED 정도를 왔다 갔다 한다고 한다. 그러나 대개 많은 나라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당하는 불이익이 그렇듯 배달부들 역시 임금 지연과 체불을 빈번하게 경험하고, 그로 인해 전체적으로 마이너스인 달도 있다고 한다. 여러 유익한 답을 얻은 후, 그에게 감사를 표하면서 마지막으로 그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고 싶은데 사진을 한 장 찍어서 여행기에 활용해도 되냐고 부탁하자 그 역시 흔쾌히 받아줬다. 그러나 정말 아쉽게도 그가 어디에서 왔는지, 이름이 뭔지, 인간으로서의 그에 대한 건 물어보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큰 실수를 했다고 생각하는데 그가 어떻게 느꼈을지는 모르겠다.

두바이 배달부. 처음엔 당연히 사진 찍는 걸 거절할 줄 알았는데 흔쾌히 수락해줘서 고마움에 놀랄 정도였다.


나중에 알아보니 그가 일하고 있는 기업은 두바이뿐만 아니라 중동이나 북아프리카 지역 부근에서 활동하는 플랫폼 기업인데,  음식배달뿐만 아니라 공유자전거 같은 모빌리티에다가 기타 심부름 서비스까지 총망라하는 종합 서비스 플랫폼에 가까었다


좌파사상이 좋다 우파사상이 좋다던지 하는 이념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은데. 기업 입장에선, 특히 플랫폼 기업 같은 경우에선 파격적인 혜택을 통해 초기 사용자수를 늘려가는 동시에 수익성을 개선하는 게 쉽지 않아 비용을 줄이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마땅치 않다. 결국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법의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개발도상국 출신의 노동자들이 비용 절감의 대상으로 지목돼 우리 입장에선 상상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낮은 임금을 받을뿐더러 상습적으로 임금을 체불당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게 아닐까 감히 예상해 본다. 



특히 용역업체를 통한 아웃소싱의 경우 활용하는 노동력에 대해 법적인 책임을 지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 산업재해에 있어 대기업들이 이런 식으로 오묘하게 사고 책임을 회피하는 게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기도 했다. 비용 절감, 고용의 유연성, 그리고 리스크 최소화라는 세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점에서 (신생) 기업 입장에서는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당연히 그런 방식을 채택할 수밖에 없다. 분명 그 덕에 우리가 저렴하 비용으로 윤택한 삶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 거라는 현실을 이해하지만, 동시에 효율성이라는 현대 사회에서의 최우선가치를 위해 필연적으로 착취에 가까운 수단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이 세상의 구조에 점점 회의가 쌓여간다.


좀처럼 달래 지지 않는 세상에 대한 답답함. 그러나 무언가 잘못되어 있는 것 같은 이 세상의 구조에 너무나 익숙해진 나로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직 나에겐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걸 바꿀 수 있을만한 힘이 없기 때문에 비겁하지만 위선을 가지고 사는 수밖에 없다. 어느 정도의 모순은 안아가며 살아가는 게 인생이라는 사실을 군대에서 깨달았지만, 여전히 새로운 부조리를 마주할 때마다 이런 것까지 전부 다 안고 살아가야 하나 하는 자괴감이 들 때가 있다. 


결국 매번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적당한 자기 합리화뿐인 걸까. 방금까지 두바이의 저임금 노동 착취라는 사회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듯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그 착취를 기반으로 쌓아 올려진 도시의 화려한 풍경에 마음을 뺏기는 것 역시 위선일까. 앞으로 살면서 더 많은 것들을 마주하게 되겠지만, 오늘만큼은 부끄럽게도 그 위선을 인정하기로 하며 화려한 마리나의 야경을 담기 위해 끊임없이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두바이 마리나의 야경. 그 화려함은 지나가는 여행객을 단숨에 매료시킬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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