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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기쓰는 복학생 May 20. 2023

중동여행 3일 차-1

두바이 미래박물관을 갈 뻔했다가 두바이 프레임 보러 가기

오늘은 내 생일이다. 그다지 의미 부여하지 않는 성격이라 딱히 챙기진 않지만, 주변 사람들이 보내는 축하 메시지를 보면 그래도 나름 나라는 존재를 생각해 주고 챙겨주는 사람들을 곁에 두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는 큰 감사함을 느끼며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했다.



전날에 26km나 걸었다. 아무리 군장이 없었다지만 그 정도 걷고 나니 8시간이나 자고 일어났는데도 불구하고 피로가 좀처럼 풀리지 않는 데다가 발바닥이 퉁퉁 붓는 바람에 오전 일찍부터 돌아다니는 건 포기했다. 하루 일정이 그리 빡빡한 것도 아니니까. 오늘은 대충 계획했던 대로 오전에 늦게 나와서 두바이 미래 박물관(Dubai Museum of the Future)을 갔다가 점심을 먹고 난 후 두바이 몰에서 저녁까지 시간을 보내다가 부르즈 칼리파 At the Top 전망대를 갈 생각이었다.



개인적으로 여행 전부터 두바이 미래 박물관에 가는 걸 상당히 기대하고 있었는데, 초장부터 변수가 생겼다. 부르즈 칼리파는 사람이 많을 것 같아서 한 달 전 즈음에 미리 예약을 해놨는데, 두바이 미래 박물관은 당일에 현장에서 예매해도 되겠거니 하며 안일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현장에서 키오스크로 예매를 하려는데, 오늘 예약이 꽉 찼다는 메시지가 떴고, 직원에겐 오늘 예약이 꽉 찼냐고 물어보자 5월 5일까지 모든 예약이 이미 마감됐고, 들어가려면 프런트에 따로 말해서 VIP 티켓을 구해야 한다는 답만 돌아왔다. 



들어가고 싶기만 하다만 가뜩이나 입장권도 54000원으로 비싼 편인데, VIP 티켓을 사서까지 보고 싶지는 않았다(정작 VIP 티켓이 얼마인지 물어보지는 않았다). 결국 미래박물관 관람은 언제일지는 모르는 훗날 이곳에 다시 올 때를 기약하고, 아쉬움을 뒤로한 채 박물관을 나서는 수밖에 없었다. 9년 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곳이라 한 번쯤은 꼭 가보고 싶었는데. 언제 이곳에 다시 올 날이 오려나. 두바이라는 도시에 3번째로 올 날이 올진 모르겠지만, 그때가 되면 무조건 가야지.

아쉽게 발걸음을 돌린 두바이 미래 박물관


그렇게 일정에 변수가 생겨, 오후 시간대가 텅텅 비어버렸다. 아직 오후 1시도 안 됐는데, 지금 바로 두바이 몰에서 6시간 넘게 있을 수는 없기에 어디든 가야만 했다. 결국 여행 마지막 날 일정을 좀 앞당겨서, 두바이 미래 박물관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나름 유명한 랜드마크인 두바이 프레임과 그 근처 자빌 공원(Jabeel Park)으로 가는 걸로 계획을 바꿨다.



개인적으로 두바이 프레임의 단점 중 하나를 꼽으라고 한다면 지하철을 이용하는 여행객 입장에서 가기 상당히 애매한 위치였다. 지하철 창 밖으로 내다볼 때는 가까이 있다고 느꼈던 것과 달리, 공원의 출입구가 몇 군데 없어서 바깥쪽으로 크게 돌아가야 해 30도를 훌쩍 넘기는 대낮의 땡볕 아래에 땀을 뻘뻘 흘리며 걸어야 했다. 나는 혼자이기도 했고, 공원 주변을 둘러보고 싶어서 일부러 걸어갔지만, 되도록 택시를 타는 걸 추천한다. 비용 자체가 한국에 비하면 싼 편이어서 거리 상관없이 부담 없이 탈 수 있는 게 큰 장점이다.



Max역에서 내린 후(TMI: 두바이는 신기하게도 지하철역이 대부분 지역명이 아니라 기업이나 브랜드 이름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구글맵이 알려주는 대로 걸어가는데 갑자기 커플로 보이는 남녀가 나에게 다가와 두바이 프레임으로 어떻게 가야 하는지 길을 물었다. 나 역시 같은 여행자라 길을 잘 몰라 구글맵을 보며 가는 건데, 어떻게 설명해줘야 할지 고민하다 핸드폰을 보여주며 두바이 프레임은 자빌 공원 안에 있어서 바로 앞에 있는 빌딩만 통과하면 바로 보일 거다. 그러나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는데 구글맵에서는 공원을 가로질러 가지 말고 바깥의 조깅 코스를 따라가야 한다고 말해줬다.



그들은 나에게 같이 택시를 타고 가는 건 어떠냐는 제안을 했는데, 원래도 걸어갈 생각이었고, 잘 모르는 사람과 동행하자는 게 어딘가 꺼림칙하기도 해서 괜찮다고 정중히 거절하고, 만약 괜찮다면 내가 가는 걸 따라 같이 걸어도 된다고 말해줬다(다시 생각해 보면 같이 택시 타는 거나 걸어가는 거나 큰 차이가 없어 보이기도 하고).



그렇게 여행 와서 처음으로 모르는 사람과 함께 걸어가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서로 어디서 왔냐에서 시작해서(정확히 들은 건지는 모르겠는데 러시아에서 왔다고 말하자 최근 벌어지고 있는 국제 정세에 어떤 말을 할 때도 조금은 조심스러워졌다) 혼자 여행 온 거냐, 여행 계획은 어떻게 되냐 등의 이야기를 나눴다. 그들은 이미 며칠 전에 와서 아부다비도 이미 갔다 왔고, 내일을 마지막으로 두바이를 떠난다는데, 내 여정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내가 아부다비를 갔다가 그곳에서 도하로 건너갈 예정이라고 하자 흥미로워했다. 두바이에서 남은 시간 동안 갈만한 곳이 있냐는 질문에 어제 갔던 두바이 마리나 지역과(이곳은 이미 가봤다고 했다) 엑스포 2020을 추천해 줬다. 그렇게 한동안 쉼 없이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두바이 프레임에 도착했고, 우리는 매표소 앞에서 서로 안전하게 여행하라는 인사를 주고받은 후 헤어졌다.

매표소 부근에서 찍은 두바이 프레임



으레 관광객이 많이 찾아오는 전망대가 그런 건지, 사람들이 지나치게 많이 들어와 줄이 밀리는 걸 방지하기 위해 엘리베이터로 가기 전에 두바이와 아랍 에미레이트의 과거가 담긴 테마관을 지나야 했다. 사막에서 일궈낸 에미라티들의(Emirati) 찬란한 문화와 역사, 그리고 21세기 두바이가 새롭게 일구어 나갈 미래까지(그 안에 자신들의 지도자에 대한 칭송까지 더해서), 두바이라는 도시의 화려함은, 관광객들이 아랍 에미레이트라는 국가와 그 안의 토후국들의 미래에 대해 긍정적인 전망을 하도록 일종의 세뇌 비슷한 걸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실 바깥에서 오는 관광객들은 문제점보다는 매력을 보기 위해 한 국가를 여행하니까.

테마관 안 두바이 아미르의 어록. 약자여서 죄송합니다....


테마관을 다 둘러본 후 엘리베이터를 타고 전망대로 올라가는데, 엘리베이터 창문을 통해 두바이 다운타운 쪽 전망이 보여 올라가면서 사진을 찍는 맛이 있었다. 



대부분의 전망대가 비슷하겠지만 막상 올라가고 나면 할 게 별로 없다. 전망대에서 파는 음료나 음식은 쓸데없이 비싼데 마땅히 다른 대안도 없고(물 500ml 병 하나에 4,200원이었다), 잠시 올라가서 짧은 시간동안 머무는 것치고 너무 높은 비용을 지불하는 것 같기도 하고, 지하철역에서 여기까지 걸어온 시간을 생각하면 상대적으로 아깝달까. 어느 순간부터 경험에 가성비를 매기기 시작했는데, 그런 점에서 두바이 프레임에서의 경험은 분명 아쉬움이 남았다.



그래도 방문객에게 두바이 프레임이 인상적인 장소인 이유는 바로 건물이 두바이의 과거(데이라 부근의 구시가지)와 두바이의 현재와 미래(다운타운과 마리나 부근)의 사이에 위치해 양쪽 창문을 통해 그 광경을 전부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런 의도로 만들었다는데, 들어가서 오른쪽엔 두바이의 현재를 담은 부르즈 칼리파와 같은 고층 빌딩으로 가득 찬 두바이 다운타운이, 왼쪽엔 두바이의 과거가 두바이 크릭을 주변으로 형성된 구시가지에 담겨있다. 

두바이 프레임에서 바라본 두바이 신시가지와 구시가지의 풍경

실제로 두바이에서 고층빌딩 단지가 있는 곳을 제외한 대부분 건물은 모래색깔에 저층이다. 사람들은 흔히 두바이하면 부르즈 칼리파가 있는 두바이 다운타운과 인터넷 시티 부근 비즈니스 단지의 고층빌딩을 떠올리지만 개인적으로 단순히 유리로 된 고층빌딩보단 모래색으로 꾸며져 사막과 바다와 기묘한 조화를 이루는 디자인이 좀 더 두바이스럽게 세련됐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두바이에서 가장 아름다운 야경을 꼽으라면 JBR 비치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지하철역으로 가는 길에 자빌 공원 주변을 산책했다. 일반적인 공원은 모든 면이 열려 있어서 정문이 있더라도 사람들은 각자 가까운 곳으로 공원으로 들어가고는 있지만, 두바이에 있는 공원, 특히 자빌 공원은 그 큰 부지 안에 있는 약 6개 정도의 출입구를 경비원들이 지키고 있고, 나머지 둘레는 온통 쇠창살 같은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자빌 공원의 출입구


두바이 정도면 중동 전체적으로도 상당히 치안이 좋은 편이기에 굳이 이런 식의 보안을 유지할 필요가 없어 보였다. 그나마 공원의 주된 사용자가 바로 옆에 있는 고급 아파트 주민이어서 치안을 해칠 우려가 있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이 몰래 공원에 들어오는 것을 염려해 만든 게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하는데, 그래도 굳이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다. 공원이 추구해야 하는 방향성 자체가 삭막하고 막혀있어 답답한 도시 생활에서 열려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걸 해치는 철창의 존재는 일종의 모순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좀 걷다 보니 공원의 4번 출구가 나왔고, (정문은 닫혀있었고, 사이드에 쪽문 비슷 한 곳으로 보안직원이 나를 안내했다) 공원을 나서자마자 지하철역이 시야에 들어왔다. 다음에 갈 곳은 오늘 여정의 하이라이트인 두바이 몰과 부르즈 칼리파 앳 더 탑 전망대다. 


자빌 공원의 고양이로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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