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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기쓰는 복학생 May 22. 2023

중동여행 3일 차-2

두바이몰과 부르즈 칼리파

지하철을 타고 가는 와중에 눈에 들어오는 두바이 미래 박물관의 풍경을 보면서 도저히 미련이 가시지 않았다. 일주일 전에 미리 예매해 놨더라면 일정이 이렇게 꼬일 일 없이 두바이 프레임은 마지막 날에 두바이 프레임에서 야경을 봤을 텐데. 지난번에 왔을 때와 달라진 두바이의 모습 중 하나가 두바이 프레임이었는데, 여행에 변수쯤이야 생길 수 있는 거라지만 어쩔 수 없이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언젠가 이곳에 다시 올 날이 오려나 싶은데, 그럴 수 있다면 무조건 가야지.



 Dubai Mall/Burj Khalifa 역에 내린다고 바로 두바이 몰 내부로 들어갈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역과 몰 사이가 꽤 멀어 지상 터널을 따라 10분 정도 걸어가야 한다. 들어가는 길에서 오른쪽 창문을 보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인 부르즈 칼리파를 볼 수 있는데, 얼마나 높은 건지 창문에서 어지간히 자세를 낮추지 않고서는 전체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렇게 두바이 다운타운의 경치를 구경하며 걷다 보니 금세 로렉스, 루이비통, 에르메스 같은 유명 브랜드 간판이 보이면서 두바이몰에 접어들었다.



3시 좀 넘어 도착하니 전망대 예약 시간인 7시까지는 꽤나 여유가 있는 반면에 안에서 할 게 없어 두바이 몰 내부를 쉼 없이 걸어 다녔다. 나름 섹터별로 나뉘어서 비슷한 종류의 브랜드가 모여있는 것 같긴 한데, 워낙 크기가 커서 특정 브랜드를 찾는다기 보다는 그냥 돌아다니면서 이것저것 여러 가지 구경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두바이몰의 규모는 정말 상상을 초월했다. 보통 아무리 큰 쇼핑몰이라도 내부 지도를 가지고 있으면 길을 찾는데 큰 지장이 없는데, 두바이몰은 구조 자체가 엄청나게 복잡하고 지도 기능이 시원찮아서 정확한 위치를 찾기보다는 근처에 있는 랜드마크(스케이트장, 두바이 아쿠아리움 등)를 기준으로 잡아놓고 대략적인 위치를 찾아야 했다.

두바이몰 내부 랜드마크

생일이기도 해서 조금이나마 쇼핑이라도 해볼까 해서 내부를 좀 둘러봤는데, 좀처럼 사고 싶은 물건은 보이지 않았다. 산다면 살 수야 있겠는데, 한국이랑 비교해서 끌리는 것도 안 보이거니와 무엇보다도 가격이 너무 비쌌다. 뭐랄까 자신이 사는 곳보다 물가가 높은 곳을 여행할 때, 상대적인 가격차이 정도는 신경 쓰지 않는 심리적 부유함을 위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건 행복이라는 것에 있어 정말 긍정적인 요소다. 물론 그게 삶의 만족도의 전부를 결정하진 않지만, 물질적인 부분보다 그 외의 것들에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쓸 수 있는 조건에서 산다는 건 나에게는 축복처럼 다가온다.



지도 없이 몰 내부를 계속 돌아다니다 보니 어딘가 비슷한 곳을 계속해서 도는 듯한 기분이 들어 금세 지쳐버렸다. 잠시 쉬기로 하고 위층으로 올라가 스타벅스에서 음료를 마시면서 다리를 쉬게 해 줬다. 그 와중에 음료 가격이 거의 만 원 가까이한다. 예전에 왔을 땐 그렇게 못 느꼈는데, 생각보다 두바이 물가가 꽤나 비싼데, 동시에 그다지 비싸지 않은 것 같기도 한 오묘한 느낌을 받는다.


나는 지역의 물가를 비교하는 기준을 주로 맥도날드, 나이키, 스타벅스 등으로 잡는데, 에어포스 원도 한국에서 139,000원 하는 게 여기서는 거의 22만 원 했고, 맥도날드에서도 맥치킨 세트가 10000원 정도 했다. 한국에서 누린 것들을 두바이에서 그대로 누린다면 분명 상대적으로 물가가 비싸다고 느낄 거다. 


그러나 두바이는 물가의 기준이 좀 왜곡되어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 도시에 두 개의 차원이 존재하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 번화가 아닌 곳에서는 슈퍼마켓에서 식료품 가격을 보면 오히려 한국보다 싸다고 느끼는데, 조금 괜찮은 곳에 가면 이게 같은 도시가 맞는 건지 의심이 들 정도로 물가가 치솟는다. 한 달에 100만 원도 받지 못하는 사람들과 수 백억의 자산가들이 이 작은 도시 안에 모여 살기 때문에 동시에 존재해 현실이 왜곡된 듯한 물가현상을 볼 수 있다. 사실 한국에서도 충분히 찾아볼 수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전망대로 가기 전에 저녁을 먹으러 전날 친구가 추천해 준 Logma라는 현지 음식점을 갔다. 두바이 몰 말고도 다른 곳에서 지점을 둔 프랜차이즈 식당 브랜드였다. 몰 지도에서 위치를 검색하니까 3층에 있다고만 나와있었는데, 문제는 몰 자체는 2층이 전부였다. 아무리 3층으로 올라가려고 해도 올라가는 곳이 도무지 보이지 않았고, 결국 구글맵을 써서 부르즈 칼리파 부근에 있다는 걸 알고 끝에서 끝으로 걸어가서야 다른 동에 있는 3층에 갈 수 있었다. 그 와중에 가는데만 또 10분 넘게 걸렸다. 두바이 몰이 워낙 큰 덕분에 돌아다니는 재미는 있지만, 전날에 돌아다니며 얻은 데미지 때문인지 나는 유독 힘들었다.



음식은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내가 먹은 건 Logma Shrimp Rice와 Logma Fries(Logma 전용 칠리소스를 곁들인 감자튀김)였다. 그동안 간이 센 음식만 먹어서 그런지 적당히 싱거운 밥과 해산물이 적절한 조화를 이룬 Logma Shrimp Rice는 먹을만했다. (다만 문제는 오기 전에 물이랑 음료수를 너무 많이 마셔서 배고픈 것과는 별개로 음식이 도저히 들어가지 않아 넘기는 것 자체가 일이었다). 감자튀김도 Logma에서만 제공하는 중독성 있는 칠리소스와 기묘한 조화를 이룬 게 상당히 자극적이어서 자꾸만 손이 갔다. 결국 하루종일 돌아다니면서 물을 너무 마셨던지라 속이 더부룩해져 다 먹진 못했지만 상당히 만족스러운 한 끼였다. 식당 테라스에서 바라보는 경치도 좋았고.

Logma Shrimp Rice와 Logma Fries
식당 테라스 경치. 멋지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곧장 부르즈 칼리파 전망대로 향했다. 전망대로 가는 입구는 LG(Lower Ground)에 위치해 있어 G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데, 뒤에서 낯이 익는 말이 들려오나 해서 귀를 기울였더니 한국인 부부였다. 겉으로 보면 40-50대 중년이었는데, 인천에서도 그렇고 이때 즈음에 두바이를 오는 사람은 대부분 중장년층이었다. 방학이나 종강 시즌이 아니기 때문에 같은 20대를 만나는 건 좀처럼 쉽지 않겠지. 여행하는 동안 온통 에미라티나 동남아, 남아시아 출신 사람들만 보다가 한국인을 보면 반가움이 느껴지다가도 사실 국적 이외에 마땅한 접점이라고는 없는,  막상 한국에서는 남이라고 일컫는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에 불과한지라 여행동안 이어지는 외로움은 해소되지 않은 채 전망대로 들어갔다.



전망대 티켓은 등급이 크게 3가지로 나뉘는데, 124,125층만 가는 일반 등급, 거기다가 148층까지 가는 SKY VIP, 그리고 152,153,154층까지 가는 라운지가 있다. 가격대는 대략 5,6만 원과 14만 원, 25만 원 정도로 나뉘고 등급이 높으면 입장할 때 따로 가이드가 안내하거나, 엘리베이터를 먼저 탈 수 있는 특권 비슷 한 게 있다(역시 돈 많이 내면 좋은 대접을 받는 게 자본주의의 매력이다). 일반 등급은 9년 전에 한 번 가본 적이 있던지라 이번엔 한 단계 높은 SKY VIP 등급으로 예매했다. 입장할 때부터 다른 줄로 들어가고, 라운지에서 모였다가 가이드와 함께 다 같이 올라가는 방식이었다. 라운지에서 한 20분 정도는 기다렸던 것 같은데, 소파가 있기도 했고, 엘리베이터를 타는 줄을 서지 않아도 돼서 오히려 좋았다.. 

SKY VIP 라운지 내부


전망대를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가 2개 있는데, 입구와 전망대를 바로 잇는 유일한 엘리베이터라고 하지만 이곳을 찾는 엄청난 수의 관광객을 생각하면 롯데월드타워의 서울스카이와 같은 수라는 건 조금은 아쉬웠다. 최대 초속 5m로 올라가서 1분 좀 넘게 걸려 124층에 도달하고, 그곳에서 엘리베이터를 갈아타 148층으로 가는 방식이다. 



SKY VIP이 15만 원이라는 거금을 내고 무조건 와야 한다고 말하기에는 애매하다. 마천루로 유명한 두바이답게 야경이 상당히 화려하지만, 밤에는 조명 밖에 안 보여서 전체적인 도시의 모습을 보기엔 부족하고, 심지어 도시 특성상 밀집되어 개발된 곳을 제외하면 듬성듬성 땜빵이 난 것처럼 어두운 곳도 있었다. 그중 가장 큰 단점이라고 생각했던 건 창에 자꾸 내부가 비쳐 사진을 찍을 때 엄청나게 불편했다. 그나마 야외 라운지로 나가면 그 문제가 해결되긴 하다만,  다운타운, 마리나 방향으로만 나 있고 공간도 좁아 데이라나 크릭 지역은 온전한 사진이 안 나왔다. 그래도 사람이 적어서 서로 뒤엉키지도 않고 내부에 큰 소파도 있어 여유롭게 쉬다가는 느낌으로 구경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메리트다.

부르즈 칼리파 전망대에서 찍은 두바이 전경
148층에는 내부 중앙에 소파가 있어 구경하다가 쉴 수 있다


편리하게 돌아다니고 좀 더 프라이빗한 시간을 보내는 걸 금액적인 부분보다 중요시 여긴다면 높은 등급의 티켓을 사는 건 충분히 고려할 만하다. 그러나 가격이 가격인지라 가족끼리 와서 전망을 보고 싶다면 일반 등급을 추천하고(20층 차이가 생각보다 큰 뷰 차이를 만들지는 않았다), 커플 여행객의 경우에서 분위기나 편안함을 중시한다면 SKY VIP나 라운지도 추천한다. 올라갈 때와 내려갈 때는 124층에서 기다려야 하는데, 내려가는 줄만 30분 넘게 기다려야 할 정도로 사람이 많다는 걸 생각하면 더더욱.



전망대에서 내려왔을 때가 오후 9시였는데, 두바이몰은 새벽 1시까지 운영해서 한창인 시간이었던지라 좀 더 돌아다닐까 고민하다가, 어차피 살 것도 없는데 시간 낭비 같아 그냥 몰 밖으로 나서 두바이 분수(Dubai Fountain)를 보러 갔다. 분수와 주변 초고층 빌딩들이 이루는 화려한 그림에 잠시 시선을 뺏겼지만, 9년 전에도 이미 봤던 풍경인지라 그다지 감흥이 남진 않아 짧게 구경하다가 사진을 좀 찍고 난 후 메트로 역으로 향했다.

두바이 분수의 풍경

오늘도 이 정도로 걸을 줄 몰랐는데, 어쩌다 보니 또 20km 넘게 걸었다. 이번 달에 새로 산 에어포스원이 불편하진 않다. 그래도 러닝화처럼 쿠션이 잘 되어 있는 신발이랑 비교하면 오래 걸었을 때 발바닥이 붓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어제 26km, 오늘 23km를 걸으면서 발바닥과 종아리에 피로가 상당히 누적됐다. 가볍게 발걸음을 내딛기만 해도 고통이 느껴지는 게 군대에서 행군할 때가 생각난다. 긴 행군을 마치고 난 후 전투화를 벗으려고 하면 발이 퉁퉁 부어 좀처럼 빠지지 않았는데, 평소에 잘 안 움직이는데 차 없이 여행 와서 엄청나게 걸으니 발이 고생이다. 운동이라도 꾸준히 해둬야 하는데 참.



두바이도 나름대로 밤문화가 발달되어 있겠지만, 원래 그런 것들에 관심도 없고, 체력이 너무 부실해 낮동안 조금 돌아다니니 9-10시쯤만 되면 피곤해져 당장이라도 잠에 들 수 있을 정도여서 포기했다. 결국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루프탑에 있는 그리스 음식점에서 간단하게 야식을 먹고 곧바로 잠에 들었다. 생일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허무한 하루인 것 같기도 하고. 사실 뭐든 의미 부여하려고 하면 허무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노릇이지만, 새우 파스타가 맛있어서 기분은 조금 좋게 마무리한다. 저기 바다 너머로 보이는 버즈 알 아랍에는 언제쯤 한 번 가보려나.

새우 파스타(Prawn Pasta)
루프탑에서 보이는 버즈 알 아랍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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