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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기쓰는 복학생 Jun 09. 2023

여행을 다녀온 후

9박 10일 간의 도쿄, 교토, 오사카, 나라 여행

길고 길었던 9박 10일간의 일본 여행이 끝났다. 이미 3번이나 가본 일본이지만, 일주일 넘게 집을 떠나 어딘가를 싸돌아다니는 건 힘든 일이라는 걸 여실히 깨닫는다. 역시 이불 밖은 위험하다. 


초반에 돌아다니면서 매일 밤늦게까지 술을 마신 영향이 컸던 걸까. 그나마 도쿄에서는 있을만했는데 낯선 공간을 옮겨 다니니 저절로 지쳐가는 자신을 발견했다. 왜 사람들이 비행깃값이 아까워도 짧은 기간동안 한 도시만 여행하는지 비로소 이해하게 됐다. 젊은 지금도 이렇게 힘든데, 나이가 들수록 긴 이동시간을 감수하면서 돌아다니기 더욱 어려워지겠지. 그런 만큼 늦기 전에 넓은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경험해 보고 싶은데, 그걸 뒷받침할 금전적, 심리적 여유가 생길 수 있으려나. 


이번 여행을 통해 오사카는 3번, 도쿄 2번, 그리고 교토랑 나라도 가봤다. 아직 나고야, 요코하마, 규슈, 홋카이도 등 가보지 못한 곳이 많이 남아있긴 하지만, 18살 때까지 일본에 한 번도 안 가봤던 걸 생각하면 정말 많이 다니긴 했다. 우연히도 정말 운이 좋았던 건지 일본에 우호적이고 관련 지식 자체도 많이 갖고 계신 화랑(플래그 풋볼 동아리) 감독님과, 애니를 좋아하는 친구 덕에 일본은 외국 중에 가장 친근한 나라가 됐다. 그러나 여전히 일본어로는 양방향 소통이 전혀 되지 않을 정도고(딱히 제대로 배운 적도 없다만), 역사나 사회, 문화 등 여러 면에서 불완전하게 이해하고 있을 뿐이다. 


성인이 된 이후에는 여행할 지역에 대해 사전조사를 꽤 열심히 하는 편이고, 실제로 이번 일본 여행은 전역 2달 전부터 틈틈이 시간 내면서 여러모로 알아봤다. 그러나 2주도 안 되는 기간 동안 머물면서 일본에서 지역별 특색과 공통된 문화를 이해하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10일이면 의미 있는 경험을 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라고 생각했는데, 1억 명이 남는 사람이 더불어 살아가는 담아낸 거대한 터전을 온전히 경험하는 건 어디까지나 이상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먹고 싶었던 음식은 다 먹은 거? 일본에서 꼭 먹어보고 싶었던 쿠시카츠나 오코노미야키, 야키소바에다가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던 츠키지 시장에서의 사케 투어까지. 덕분에 식비는 엄청 깨졌지만 후회는 전혀 남지 않는다.


여행동안 먹은 음식들. 너무 많아서 다 올릴 수가 없는게 슬프다.
여행 중 가장 특별한 경험이었던 사케투어

지금 돌아보니 나름 열심히 돌아다녔다. 처음에 계획을 너무 빡빡하게 세워둔 탓에 거기에 맞게 다니지는 못했다(애초에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여행이라는 게 계획대로 순조롭게만 흘러간다면 나중에 돌아볼 때 인상적인 기억이 남지 않을 게 뻔하기에, 어딜 못 갔다, 뭘 못 봤다 하는 거에 그다지 연연하진 않는다. 아직 젊어서 언젠가 다시 볼 수 있을 테니까. 내 의지와 관계없이 여행은 처음에 생각했던 것과 완전히 다르게 흘러갔지만, 오히려 갈 거라고 예상하지 않았던 장소에서 정말 깊은 인상을 받기도 했고, 너무나도 가보고 싶었던 곳을 막상 가보니 별 느낌이 없었던 곳도 있었다. 뭐든 기대했던 만큼 보고 느낄 수 없지만, 오히려 그런 불확실성 속에서 새로운 즐거움을 발견하게 된다. 


흔히 여행은 일상으로의 탈출이 아닌, 경험의 확장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데, 진부함에서 벗어나 특별함을 발견하는 것과 평범함 속에서 특별한 의미를 찾는 것 둘 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여행 동안 참 예상치 못한 변수가 여럿 생겼다. 그중엔 진인사대천명(마지막 날에 갑자기 폭우가 내려 공항철도가 끊긴 거, 신칸센을 탈 때 재수 없게 구름이 후지산을 가린 거 등)의 경우뿐만 아니라 어리버리하게 중요한 걸 놓친 경우도(교토 국립박물관 휴관일을 알아보지 않은 거) 있었다. 그래도 나름대로 상황마다 현명하게 대처해서 별문제 없이 집에 돌아왔지만, 여행이라는 경험의 확장인 인생에서 그보다 더한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도 과연 잘 처신할 수 있을까. 계획을 세워도 그중 많은 게 무의미해지고, 예상치 못한 순간에서 중요한 건 임기응변이다. 살아가면서 불확실성으로 인한 변수를 지혜롭게 헤쳐나갈 수 있을지 여러모로 생각이 많아진다. 


도카이도 신칸센을 타고 교토로 가던 와중에 후지산을 보려했는데 구름에 가려져 있었다.
교토의 기온 하나마치를 돌아다니다 우연히 게이코를 봤다. 

이번 일본 여행이 미국 가기 전 마지막 해외여행이다. 기왕이면 가기 전에 운동도 하고 공부도 해둘 계획이라 시간의 연속성이 필요해 여행은 좀 미뤄두려고 한다. 다음 번 일본에 갈 때는 일본어 실력도 좀 쌓고, 여행보다는 좀 짧더라도 사는 느낌으로 한 도시에 길게 머물고 싶다. 일본이라는 나라를 좀 더 가까이서 깊게 들여다보고 싶달까. 그런 기회가 올지는 모르겠지만 여행을 통해 작은 소망이 하나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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