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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기쓰는 복학생 Jul 27. 2023

뉴진스에 관한 고찰

좋아하는 아이돌을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다시 바라보기

작년에 상병을 단지 얼마 안 됐을 즈음, 유격훈련에 가기 전 일주일 가까이 격리를 한 적이 있다. 핸드폰도 받았겠다 온종일 누워서 핸드폰만 들여다보다 그 당시 갓 데뷔했던 뉴진스의 영상들을 봤고, 처음엔 그냥 노래만 좀 중독적인 어린애들 모음이라고 생각했다가 유격훈련 마지막 날 행군 대는 자연스럽게 하입보이를 흥얼거릴 정도로 빠져들었다. 그렇게 하마터면 무료할 뻔했던 군 생활의 절반에 즐거움을 채워준 게 뉴진스였고, 그래서 엄청난 팬까지는 아니지만 나름 전역 이후에도 신곡이 나올 때 뮤비 정도는 챙겨본다. 비록 선물 받은 거긴 한데 앨범도 있다.


사실 뉴진스하면 하니에 대해 할 말이 많지만 그러다간 분량이 2장을 넘어갈 것 같아 생략한다. 어쨌든 뉴진스의 성공은 엄청나다는 말로 밖에 수식이 안된다. 여태까지 본 적이 없는 수준이랄까. 이제 갓 데뷔한지 1년 지났지만 음원 차트 1위를 밥 먹듯이 하고, 쇼츠 비디오를 통해 밈의 중심이 돼서 대중의 주요 대화 소재가 됨과 동시에 메이저한 브랜드들의 광고모델까지 독식하면서 순식간에 영제네레이션의 상징 같은 존재로 우뚝 섰다. 이제 브랜드들은 영(young)한, 새로운 이미지를 소비자들에게 각인시키기 위해 기꺼이 뉴진스에게 광고 계약서를 내민다.


실제로 우리가 미국 하면 떠올리는 브랜드인 애플, 나이키, 코카콜라, 맥도날드의 광고를 모두 찍었는데, 아직 20살도 안 된 이들이 이뤄낸 성공에 경외감이 들면서도 뉴진스가 광고하는 것들이 곧 어린 세대의 일반적인 이미지로 대중들에게 인식되는 게 사회적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에 대해서는 함부로 긍정할 수 없다. 좋아하는 아이돌이 광고도 많이 찍고 돈을 많이 벌면 당연히 좋은 거지만, 뉴진스로 대표되는 MZ 세대의 소비 트렌드에 나 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아무런 비판의식 없이 무작정 따라가려고 하는게 과연 긍정적인 현상인가에 대해선 자연스레 의문이 생긴다.

미국 본사 직영은 아니지만 뉴진스는 엄청난 브랜드 파워를 가진 기업들의 광고모델로 활동한다(출처: 왼쪽 위에서부터 애플, 코카콜라, 맥도날드, 나이키 코리아)

신발은 나이키 에어 맥스에 핸드폰은 아이폰 14프로. 리바이스 청바지를 입고 밖에 나와 점심으로 맥도날드에서 시킨 빅맥 세트에다가 콜라는 코카콜라 제로. 일상의 풍경 속 많은 요소들에 이미 뉴진스가 녹아들어 있다. 어제 10대와 20대 사이에서 아이폰의 점유율이 압도적이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뉴진스 역시 단순한 인기 아이돌을 넘어 하나의 기준이 되어가고 있다. 미국을 상징하는 메이저 브랜드뿐 아니라 디올, 구찌, 루이비통, 샤넬, 버버리 같은 유명 럭셔리 브랜드의 앰배서더로서 모든 멤버가 활동한다. 국내에서의 대중성이나 영향력 자체는 그들이 방향성을 참고했다는 블랙핑크를 뛰어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이 모든 걸 이뤄낸 고작 1년이라는 시간 동안, 데뷔 때 갓 입대했던 내 군 생활 시절 중대 막내는 아직까지 병장도 못 달았다.


그러나 뉴진스가 연상시키는 이미지에 점점 얽매이는 듯한 자신을 발견했을 때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조금 복잡해진다. 나이키 에어포스 원 신발을 사고, 10년 쓰던 갤럭시에서 아이폰 14프로로 넘어갔으며, 심지어 지난번에는 친구를 데려가서 같이 뉴진스 버거를 먹었다. 단순히 예쁘고 노래 좋다고 열광하기에는 뉴진스는 삶 전반 너무 가까운 곳까지 다가와 있다는 걸 생각하면 오묘한 거부감이 든다. 정교하게 설계된 뉴진스의 매력은 그들이 제시하는 영 제너레이션의 기준에 맞추려면 자기들이 광고하는 걸 사라고 손짓하는 소비의 유혹으로 이어진다. 노래가 어떠냐하는 문제와는 별개로, 뉴진스라는 그룹 자체는 뮤지션보다 매력적인 판매 사원에 점점 가까워진달까. 뭐 원래 영향력있는 셀럽을 광고 모델로 쓰는게 그런걸 노리는 거지만.

데뷔 후 뉴진스의 광고 모델 활동 목록(출처: 나무위키)

여담으로 소속사인 어도어의 대표 민희진은 데뷔 전부터 각 멤버들에게 맞는 명품 브랜드를 매칭 시키는 밑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좋은 게 좋은 거야 하면서 무작정 빠져들면 안 된다는 경각심 같은게 들기는 하는데, 그런 걸 생각해도 하니는 너무 매력적이고, 딜레마에 빠져들게 된다. 보면 볼수록 어떻다고 함부로 단정하기 어려운게 뉴진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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