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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기쓰는 복학생 Aug 13. 2023

D-6: 너 왜 이렇게 살쪘냐

살찐 모습이 당연해진 나

이틀 전 친구와 피시방을 갔는데 자리를 잡자마자 누군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어딘가 낯익은 얼굴이 보였는데 오랫동안 만난 그의 이름이 좀처럼 기억나지 않았다. 다행히도 그가 그 사실을 눈치채기 전에 기억을 떠올렸지만(정작 그래놓고 그를 이름으로 부르지는 않았다) 사실 그건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그가 나에게 건넸던, 공격성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첫 마디가 평소에도 들어 익숙하지만 너무나도 강렬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아니, 너 왜 이렇게 살쪘냐?”


살, 살, 살, 살… 시간이 꽤 오래 지난 후 만나는 옛날 친구들이 발견하는 가장 분명한 변화는 중학생 때와는 확실히 다른 이미지를 주는, 얼굴에 붙은 살이겠다. 그때는 말랐는데 지금은 왜 이렇게 됐냐. 나도 잘 기억 안 나는 과거 내 모습만을 나의 외적 이미지로 알고 있을 그들로서는 약 7년간 내가 거쳐간 변화의 결과를 보면 적잖이 당황하곤 한다. 나는 이제 완전히 익숙해졌는데 말이야, 누구든 다시 만났을 때 20kg 가량의 지방을 더해온다면 놀랄 수밖에 없긴 하겠다.


그런 상황을 바꿔보고 싶어 군대에서 15kg 정도 뺐다. 훈련소에 있을 때 이 정도 체중으로는 절대로 건강하게 생활할 수 없겠다는 확신이 들었고, 훈련소 때는 최대한 소식하면서, 자대에서는 꾸준히 운동을 하면서 어느 정도 감량하는데 성공했지만, 부분적인 성공에 취한 나머지 거기까지였다. 그 이후로 스트레스 받을 때마다 폭식을 반복하고 운동도 게을리하니 자연스레 전역할 때는 최저점보다 5kg 더 찐 상태가 됐고, 하루에 세 끼를 전부 챙겨 먹지 않는 요즘에는 찌지도 빠지지도 않은 채 오르락내리락하는 상황을 반복하고 있다. 


나름대로 이 몸을 가지고도 그럭저럭 살 수 있겠다고 판단한 건가. 실제로 가끔 복부와 하체 지방 때문에 앉아있을 때 불편하다고 느낄 때가 있기는 한데, 그런 사소한 불편함 따위가 나의 게으름과 나태함을 극복하게 할 계기 같은 건 만들어주지 못한다.


그런 나를 바꿔보고 싶은 건지, 아니면 그저 비난하고 싶은 건지, 가까운 친구들은 항상 나에게 “돼지새꺄 살 좀 빼라”라는 식의 말로 일갈한다. 그럴 때마다 “뺄 거다”, “이 정도면 그렇게 살찐 거 아니다” 등 나름대로의 정당화를 시도하다가 어느 순간 포기하고 그냥 살찐 사람으로서의 아이덴티티를 받아들이게 된 걸까. 이제는 별 타격이 없어서 반응도 안 하는 나 자신에게 어딘가 문제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 문제의식이 생겨나던 와중에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던진 반가운(그렇지만 무심한) 인사말은 견고했던 생활에 균열을 내기에 충분했다.


묘하게도 도중에 카이스트를 다녔다는 걸 제외하면 나와 같은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나온 천인우의 인터뷰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인터뷰에서 그는 과거 체중이 100kg에 달했던 시절에 살이 쪘다는 사실과 함께 따라오는 부정적인 이미지에 익숙해지는 상황을 극복하고 싶어서 살을 뺐다고 회고했는데, 나의 시선에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아나가고 있는 그를 보면서 어딘가 닮아있는 부분이 있는 그의 말로부터 배울 점이 참 많다고 느꼈다. 아까 대화를 나눴던 친구 역시 나하면 살찐 이미지가 떠오른다니까. 외모에서 오는 편견과는 별개로, 나와 주변 사람들에게서 살찐 사람이라는 일반적인 이미지가 구축되는 건 분명 나의 평가 가치를 고려할 때 긍정적인 현상이 아니기에, 살을 빼는 건 건강뿐만 아니라 자신감, 주변 인식 등 여러 면에서 중요해 보인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불확실성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미국에 가서는 반드시 건강한 생활의 형태를 완성하고, 살을 빼겠다고 다짐한다. 입대했을 때와 전역했을 때 확인한 긍정적인 결과물처럼, 어떤 장기간의 과정을 거쳐간 후 시작했을 빼보다 분명히 더 발전하고 나은 인간이 되자는 태도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데, 그 태도가 내년 5월 인천행 비행기를 타는 순간에는 좀 더 구체적인 형태로 드러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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