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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기쓰는 복학생 Aug 15. 2023

D-2: 분당이라는 곳

9년 동안 그저 내 집이 있던 도시라고 생각했던 곳이 집이라고 느낄 때

이곳에 이사 온 지도 어느덧 9년이 지났고, 그렇게 곧 분당을 떠난다. 막상 떠날 때가 되니까 고향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도시가 고향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그리운 전주에서의 시간을 뒤로하고 새로운 기회를 찾아 수도권으로 올라왔던 그 시절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미래가 지금 펼쳐지고 있다. 2일 뒤 여기를 떠나 새로운 곳에 정착한다고 하니까 그곳에서 만들어 나갈 미래에 가슴이 부풀면서도 또다시 아무것도 모른 채 삶의 국면이 전환되니 불안감을 감출 수 없었는데, 그런 고민들로 머릿속이 복잡해진 채 집으로 걸어가는 와중 눈에 들어온 풍경에 저절로 기억 속 한편에 두고 있었던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게 되었다.


이사 온 지 며칠 안됐을 때 수내 고가 차도에서 바라본 성남 대로와 파빌리온 아파트 풍경에 감탄하며 사진을 찍고는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분당에서의 생활에 적응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대로를 따라 펼쳐진 화려한 야경에 눈길조차 주지 않게 됐다. 그러다 오늘 수내역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시 한번 그 풍경을 바라봤을 때, 어딘가 오묘한 감정이 들었다. 이걸 처음 봤을 때 느낀 신기함으로 부푼 가슴과 대비되는 마음속 허무함, 처음 이사 왔을 때도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보다는 내가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계속해서 들었던 것처럼, 이번에도 미국이라는 완전히 낯선 나라에서 가족과 떨어져 개척해나가는 운명에 대한 설렘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예전부터 학교가 바뀔 때마다 동시에 생활 공간도 바뀌었다. 초등학교는 전주의 서신동 e 편한 세상, 중학교는 파크타운 롯데 고등학교는 산골짜기 안의 기숙사, 그리고 대학은 버클리에서의 셰어하우스. 다행히도 학교를 다니는 와중에 옮겨 인간관계가 갑작스럽게 초기화된 적은 없었지만, 생활에서 자주 변화가 찾아오는 안정성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던지라 막상 돌아보면 인간관계도 그렇고 깊은 뿌리 같은 건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 생각 속에서 지낸 지난 9년의 시간이었는데, 익숙해져 더 이상 어떤 자극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파빌리온의 모습을 보면, 익숙함이라는 뿌리가 이 동네에도 그렇고 내 주변의 많은 것들에 단단히 자리 잡고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언제까지나 집을 떠올린다면 전주천이 내려다보이는 e 편한 세상 110동 1403호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한국을 떠나는 순간을 다가오니 이곳 역시 언젠가 그리워질 집이라는 걸 인정하게 됐다.


그렇게 이제 분당도 떠나고, 버클리라는 새로운 삶의 터전에서 운명을 개척해나간다. 전주를 떠나 분당으로 온 그 순간이 순전히 부모님의 의중에 의해 찾아온 삶 속의 사건이었다면, 이번에 떠나는 건 오래전부터 기다려왔고, 또 준비해온 선택의 결과이자 그 과정이기에 무조건 불안에 떨 수는 없다. 언젠가 버클리, 더 나아가 베이 에어리어 자체가 나에게 분당과도 같은 한때 낯설다가도 익숙해지는 그런 공간이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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