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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질녘 Feb 19. 2024

꺼삐딴 리

나는 쓰는 사람인가? 나는 왜 쓰는가?


전광용 : 소설가 1919년 함경남도 북청에서 태어났다. 경성경제전문학교를 거쳐 서울대 국문과를 졸업했고,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5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흑산도가 당선되면서 본격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대표작으로 사수, 꺼삐딴 리, 젊은 소용돌이, 창과 벽 등이 있다. 1988년 세상을 떠났다.


오랜만에 국어 교과서에서 실린 꺼삐딴 리를 읽었다. 그때 당시에는 아무렇지도 않던 문장들이 이제야 살아서 움직이며 나의 뇌를 자극하고 있었다. 꺼삐딴이라는 단어도 모르고 있었는지 영어의 캡틴이 어떻게 꺼삐딴이 될 수 있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하지만 꺼삐딴 리가 왜 꺼삐딴이 되었는지 이 책을 읽고 나면 알게 된다.


그때 당시의 대한민국은 아래로는 일본 위로는 몽고와 중국 그리고 러시아를 다니며 그들의 문명과 문화를 받아들이고 있었고 미국과 소련의 틈바구니에서 자기 나라 운명이 그렇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하고 일제 치하와 전쟁과 가난 속에서 힘없는 자는 지배를 받고 힘 있는 자는 권력에 줄을 서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는 것을 많이 느낀다. 그때도 기득권층의 교육열은 어쩔 수 없는 것인가 보다.


그때나 지금이나 의사는 잘 나가는 직업군 중에 하나라는 것을 많이 느낀다. 어떤 위험한 상황에서도 의사는 사람을 살리는 역할을 한다. 사람의 생사를 좌지우지하는 기술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또 다른 사람을 살리는 기술이 된다.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은 사상과 관계가 없다.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누구는 살아야 하고 누구는 죽어야 하는 현실적인 문제만 있을 뿐이었다.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른 것인지 이해할 수 없는 인생 속에서 힘없는 자와 힘 있는 자의 삶은 다른다는 것이었다. 이기적인 기회주의자가 사회의 지식인 행세를 하며 살아가는 현실은 누가 만든 것인가.

 

저물녘이라는 단어를 읽고 내 닉네임 해 질 녘과 비교해 볼 수 있었고 그 시대의 여러 단어와 표현들 속에서 나는 노어를 언젠가 공부할 수 있을 기회가 있을 것 같은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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