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한글로 된 책은 잘 읽지만 만약 누가 내 앞에 아랍어로 된 책을 가져다 놓으면 나는 그 책을 읽을 수 없다. 흰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글씨라는 것만 인지한다. 이 사실을 바탕으로 우리는 모든 문자나 사물에 해석을 부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음속에서 어떤 정보처리가 이루어져야 그것을 나 자신에게 받아들인다.
컵(해골바가지)이라는 것도 앞이 보이지 않는 컴컴한 동굴에서도 내가 물을 마시는 용도로 쓰인다는 것을 알아야 컵을 들고 물을 마실 수 있다. 40년도 더 지난 영화이지만 부시맨이라는 영화에 보면 부시맨 부족이 하늘에서 내려 준 콜라병을 들고 그들 부족에게 가져갔는데 그들은 그것이 어디에 쓰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콜라가 무엇인지도 몰랐고 그 병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무슨 용도로 사용되는지 알 수 없었다. 더군다나 콜라병에 쓰인 글씨조차 해석할 수 없었다. 해석이 불가능한 물체는 자신이 인지하고 싶어도 인지할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은 모든 사물이나 문자 즉 시각으로 들어온 것은 뇌에서 어떤 정보처리를 거쳐 (개념을 가지고 범주화를 시킨 후) 해석을 거쳐 인식하게 되어 있다. 그런 인식 과정이 끝난 사물이나 글씨는 동일한 사물이나 글씨를 보더라도 그런 정보처리 과정이 필요 없게 되어 바로 인식하게 되어 있다. 그런 사고와 행동이 일상이 되면 특정 감각이 하나 생긴 것처럼 뇌가 어떤 절차를 거쳐 내가 인식하는지 알아야 할 필요가 없어진다. 로봇은 자기 자신이 로봇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끝으로 부시맨 영화를 지금 시대에 다시 상기하게 되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그런데 그렇게 행복했던 부시맨 부족은 인간에 의해 쫓겨나게 되었다는 슬픈 사실만 남아있었다.
언어와 사고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그것과 비슷하게 언어와 감각도 연결되어 있다. 이것은 약간의 새로운 깨달음이었다. 며칠 전 이소영 작가의 강연을 듣고 시각장애인에게 아름다움은 무엇인가라는 문장에 나는 머리에 돌을 맞은 것처럼 인간의 언어가 감각과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시각장애인은 아름답다는 개념을 알 수 없다. 아름다움을 정의할 수 있는 기준이 없다. 특히 색에 대한 개념조차도 인지할 수 없었다.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 초록색처럼 우리 주변에 아주 흔한 색인데 색에 대한 언어와 개념을 알 수 없었다. 시각 장애인에게 색에 대한 개념을 어떻게 가르쳐 줄 수 있는지 질문하고 싶었지만 시간 관계상 질문을 드리지 못했다.
청각장애인이 소리를 들을 수 없으면 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도 언어는 소리글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청각 장애인의 발음이 정상인의 발음과 다르다는 것을 들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청각 장애인에게 소리는 어떤 감각으로 인지할 수 있는 대체적인 부분이 있지만 색은 가시광선(파장)이 눈에 들어오지 않으면 세상의 색에 대해 정의를 내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 같다. 뇌 손상과 비슷한 사례들처럼 위의 내용들도 충분히 연구의 가치가 있을 것 같다.
한 달이 하루처럼 지나가 버렸다. 책을 덮었더니 더 공허해지고 또 다른 책들이 한편에 가득 쌓여 있었다. 전공자도 아니지만 호기심만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 같다. 읽고 나서도 흩어지는 문장들과 생각들이 곧 잊히겠지만 문득 인지심리학을 읽고 나서 뇌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특히 박문호 교수님의 책을 알게 되었고 그분의 책만큼이나 뇌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많은 것을 하고 있었다. 한 권의 책으로 알 수 없겠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뇌에 관한 책들은 다양했다. 끝으로 뇌 생각의 출현에 나온 문장으로 인지심리학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그동안 책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