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장의 제목과 상반된 문장으로 시작하는 케플러의 좌우명 "인간의 근심이여, 모든 것이 헛되도다"은 우주를 탐구하는 자에게는 인간의 하나의 티끌보다 아주 작고 그 우주의 시간에 비하면 아주 찰나의 시간을 살아간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주와 자연은 완벽하다. 완벽한 규칙과 틀을 가지고 있다. 지구의 자전과 공전 그리고 태양계의 구성과 타 은하들이 가지고 있는 특성들이 아무렇게나 생기고 사라지지 않는다. 지구에 살아가는 자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우연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케플러도 과학이 마녀사냥으로 내몰리는 상황 속에서도 과학을 포기할 것 같았지만 과학의 합리성과 객관성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노력은 정말 본인이 아니라면 알 수 없는 고통이 아닐까 생각된다.
대단히 큰 규모도 종이에 옮기면 그렇게 크지 않다는 것이다. 미시적인 것도 거시적인 것도 종이에 옮길 수 있다. 그것이 인간의 두뇌가 가진 장점이다. 물리적인 자로 측정할 수 없는 거리도 측정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인간의 두뇌는 정말 우주보다 더 넓고 나노의 세상보다 더 깊을 것 같다.
1571년이면 우리나라의 임진왜란 시기에 하늘을 보고 천문학을 연구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당대의 참이라고 하는 사실에 대해 신은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꽤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한 것 같다.
조선시대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무렵에 갈릴레오 갈릴레이, 코페르니쿠스, 케플러, 티코 브라헤, 그 시대의 멋진 인물들이 만든 천문학의 스토리는 그 시대에 아주 혁명적인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내가 그 시대에 있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스티븐 호킹이 다시 살아난 것처럼 죽은 사람이 어떻게 다시 살아날 수 있느냐고 말하는 것과 같다. 복제양 돌리가 아니라 복제인간 스티븐 호킹이 살아서 움직이는 것과 같은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된다. 스티븐 호킹은 영원히 죽지 않을 수 있다는 이야기도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죽은 사람도 살아오는 시대가 되면 인간의 생명 윤리에 대해 고찰하지 않을 수 없다. 죽은 사람이 이전의 죽은 사람과 같은 사람인지 증명할 수 있을까? 육체는 같지만 정신은 다른 사람?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태양의 질량과 태양계를 도는 행성들이 갖고 있는 질량의 합은 당연히 다르겠지만 공전하게 만드는 서로를 밀고 당기는 힘은 서로가 같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일정한 타원의 궤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려면 그 질량의 합이 같을 때만 가능한 일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 거리가 원거리더라도 태양계를 중심으로 공전하는 행성들 중 어느 하나의 행성이 폭발하거나 사라지게 되면 태양계의 공전주기가 바뀌거나 팽창하거나 수축할 수도 있고 있을 것 같다. 블랙홀처럼 우주의 암흑 속으로 태양계가 빨려 들어갈 수도 있을 것 같은 상상을 해본다.
블랙홀이 발생하게 된 원인이 아마 어떤 다른 태양계의 공전주기가 파괴되면서 질량 불일치에 따른 커다란 하수구가 생겼다고 해야 할 것 같다. 그 커다란 공간을 집어삼킬 수 있는 그 공간은 얼마나 크고 넓기에 우주에서 자신의 위력을 자랑하고 있는 것일까.
마리아 포포바의 문장을 읽으면서 얼마나 많은 책을 읽어야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라는 상상을 해본다. 얼마나 많은 것을 읽고 써야 할지 이 책의 두께만큼이나 두꺼울 것 같은 책들을 옆에 쌓아두고 진리를 발견하기 위해 글을 쓰고 있을 마리아 포포바를 생각하니 그들의 학문에 대한 열정과 태도가 너무 부러웠다.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케플러 검색 아래의 문장
자연에 대한 엄밀한 관측과 그 결과로부터 자연법칙을 도출한다는 전형적인 과학적 방법론에 대한 최상의 예라고 할 만하다
“지구는 우주의 중심점이라는 엄청난 특권을 포기해야 했다. 이제 인간은 엄청난 위기에 봉착했다. 낙원으로의 복귀, 종교적 믿음에 대한 확신, 거룩함, 죄 없는 세상, 이런 것들이 모두 일장춘몽으로 끝날 위기에 놓인 것이다. 새로운 우주관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사상 유례가 없는 사고의 자유와 감성의 위대함을 일깨워야 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