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아이처럼
할머니들 없이 아이를 키우는 것은
육아는 상당한 기쁨과 스트레스를 가져오는 것 같다. 일반인들도 육아에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데 육아에 문외한 사람들조차도 육아와 가사는 우울증과 같은 심각한 정신적 질환을 일으킬 정도로 힘들고 괴로운 일이다.
왜 그렇게 된 걸까. 왜 다른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셋 이상의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도 더 행복해하고 그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보다 현명하게 세상을 살아가고 있을까. 그것이 궁금하기도 하고 다른 나라 아이들은 어떻게 키우기에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라는 프로그램조차 없는 것일까. 내가 모르는 것일까?
나 역시 육아에 대한 지식을 배울 데도 없었고 가르쳐주는 데도 없었기에 모든 것이 낯설고 온통 힘들고 괴로운 일들만 잔뜩 쌓여 있는 기분이었다. 아기를 낳고 키우는 것이 처음이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는 부모들이 상당히 많다는 것을 지식 검색하면서 많이 느꼈다. 요즘의 부모들은 책보다는 인터넷 지식인 검색을 통해 육아에 대해 총체적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부분적으로 배우고 익히다 보니 제대로 된 육아가 이루어질 수 없다.
실제 경험하는 것과 책이 가르쳐 주는 부분은 너무 협소하다 보니 일일이 그때마다 책을 펼치고 육아의 궁금증을 해소하기엔 너무나 역부족이다. 나 역시 이 책 저 책 읽어보지만 육아는 반드시 멘토가 필요하다는 것을 많이 느낀다.
육아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은 예비 부모에게 꼭 필요한 과정이라는 것을 사회가 알아주었으면 한다. 단순히 고등학교, 대학교 교육과정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평생 학습의 개념으로 예비 부모에게 육아에 대해 쉽게 배울 수 있는 교육 장소와 교육 프로그램이나 책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젊고 어린 부모들에게는 꼭 필요한 육아 상식들을 가르쳐 주는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 당연히 그들의 부모님들이 설명을 해주시겠지만 모든 부모들이 그렇게 똑같이 가르쳐 줄 수 없다.
난 아이를 키워야 하는 여자들에게는 보모나 가사 도우미는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돈이 들더라도 육아나 가사에 대한 업무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도우미는 사회적으로 장려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자들의 능력은 남성을 능가하는데 경제적 주도권을 쥘 수 있는 사회생활을 남성의 전유물로 생각하는 낡은 사고방식을 집어던지고 여자들이 집안에서 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 많은 남성들이 직접 체험해 보면 여자들에게 육아와 가사에 대한 노임은 억대 연봉자의 급여 수준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해도 해도 끝이 없고 정해진 매뉴얼도 없는 것을 능동적으로 계획하고 추진하는 일은 남자들에게도 쉽지 않다. 하지만 그런 일들을 여자들은 척척 잘해놓는다.
내가 하기 싫은 일을 누군가가 대신해 줄 수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다. 갑과 을의 관계를 떠나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관계 속에서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며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었으면 좋을 것이다.
아이는 시도 때도 울고 보채는데 부모는 그때마다 응해야 한다. 아기의 특성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응한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하루하루가 똑같은 일상에 미쳐버릴 것 같고 아이가 내 인생의 짐짝처럼 느껴져 갔다 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다.
개인이 인내해야 할 일이지만 정신적으로 피폐한 우리 엄마들의 고민을 속 시원하게 해결해 줄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한 건 너무 안타까운 사실이다.
예전엔 미처 몰랐던 식당에 있는 아이들의 놀이터가 왜 필요했었는지 마트나 고속도로 휴게소에 있는 수유실이 왜 필요했는지 놀이터의 바닥은 부드러워야 하는지 문틈에 아이들의 손이 끼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왜 하는지 아이를 키워보면 쉽게 알게 된다.
제대로 된 육아를 배우며 자란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아이를 대하는 태도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많이 보고 배운다. 아이는 스스로 크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이끌어주는 대로 크는 것이다. 육아의 불편한 진실은 책을 쓰거나 읽는 사람의 대상은 화이트 컬러라는 것이다. 블루 컬러에게 육아는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가만히 놔두면 알아서 크는 그런 아이들에게 끌려가는 건 블루 컬러고 이끌어 가는 것은 화이트 컬러라는 것을 아는 만큼 육아는 쉽고 편할 수 있는데 모르기 때문에 육아에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는 시대적 상황이 좀 억울하다.
부모의 보살핌 속에 자기만 생각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혼자 사는 것이 익숙할지 모르지만 같이 산다는 것은 타인의 눈치를 봐야 하고 타인의 맘을 충분히 어르고 이해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이 다 처음이기에 실수할 수도 있고 서로 싸울 수도 있지만 상대방과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하고 판단해야 할지도 알아야 한다.
우리 사회는 이대로 가면 인구가 줄어드는 것을 걱정해야 하는 치명적인 약점을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고 개선할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모든 것이 사회의 문제고 정치인들의 문제라고 치부해 버리는 그리고 개개인에게는 잘못이 없는 것처럼 자기 일만 하고 살아간다. 그리고는 남을 욕하고 있다.
이 책을 읽게 되면서 프랑수아 돌토의 ‘자기를 찾는 아이들‘과 장 자크 루소의 에밀을 읽게 되었다는 것은 정말 행운이었다. 특히 에밀 (역자 신윤표 출판사 산수야)의 첫 페이지에 ‘독자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라는 역자의 서문 내용을 옮기지 않을 수 없었다.
루소는 <고백>제8권에서 “나는 에밀을 탄생시키기 위해 20년 동안 사색하고 3년에 걸쳐 노작을 했다.”라고 밝히고 있듯이 에밀은 단순한 교육론이 아니라 인간론이자 문명비평론이며, 소설의 형식을 지닌 교육론이다. 또한 그의 풍부한 시적 감성을 표현한 뛰어난 문학작품이기도 하다.
루소는 에밀을 통해서 그의 근본이념이자 모든 사상의 출발점인 자연인을 전면적으로 실현하는 방법을 제시하였다. 즉 자연은 선하고 문화는 악하며, 인간은 본래 평등하게 태어났으나 계급을 구분하는 사회제도가 불평등하게 만들었다고 규정하고 새로운 인간이념의 구축과 인간형성의 이론적 탐구를 통해 사상가로서 이상을 실현하고자 하였다.
자연성을 상실한 타락한 인간과 부패한 사회제도를 개선하고 혁신하는 일은 어른들의 의무라고 루소는 말했다. 그러나 이상적인 사회건설이나 정치의 실현도 그 제도의 주인인 인간 자체의 혁신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먼저 교육개혁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루소는 이 새로운 인간형성의 이론을 통해 가공의 인물인 에밀을 이상적인 인간으로 만들고자 실험하고 탐구해 나간다. 자연이 부여한 선을 문명의 악으로부터 지키고 자연의 진실과 아름다움과 유익함을 인식시켜 미래의 이상적인 사회가 필요로 하는 선한 시민의 자질을 길러주는 것이 루소의 교육이념인 것이다.
1762년에 출간된 이 책을 여태 꺼 외면한 한국사회와 에밀의 책을 지금까지 심사숙고하며 제도적으로 훌륭한 교육 체계와 사회 제도를 개선해 온 프랑스 사회는 우리가 지속적으로 본받아야 할 모습이 아닐 수 없다.
학창 시절 읽었던 에밀과 지금의 내가 읽는 에밀은 같은 에밀이었지만 정확하게 그 느낌은 확실히 다른 느낌이었다. 그래서 고전은 삼십 대 후반에게 가장 필요한 책들이 아닌가 생각된다. 아직 미혼이고 자식이 없다면 틀려지겠지만 에밀은 자식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꼭 한번 되새겨보고 침대 머리맡에 두고 자주 읽어야 할 책이라는 것을 올해가 가기 전에 깨닫게 되어 너무나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좋은 아빠 좋은 남편이 된다고 보장은 못하겠다. 그래도 난 하나뿐인 너를 위해 육아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고 익힐 것이다. 고광림 박사와 전혜성 박사의 자녀들처럼 키울 수는 없어도 그들의 정신을 이어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좋은 부모가 좋은 아이를 만든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단순히 물질적인 지원이나 좋은 교육 프로그램을 배우도록 하는 게 아니라 정신적인 가르침이 나중에 내 아이가 세상이 원하는 어른이 된다는 것을 자녀 교육에 관한 책들에서 쉽게 알 수 있다. 좋은 부모를 모든 아이가 만날 수는 없지만 좋은 책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우리 아이들이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2014.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