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적 인간은 왜 나쁜 사회를 만드는가

철학이 묻고 심리학이 답하는 인간 본성에 대한 진실

by 해질녘

인간 본성에 대해 생각하기 전에 인간의 존재는 인간의 특성을 생각해 보면 사회적인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연계에 살고 있는 다양한 생물체를 봐도 인간은 혼자살 수 없는 사회적인 인격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회적인 인격체가 되려면 가질 수밖에 없는 선악과 선악에 따른 인간 행동의 다양한 특성 그리고 사회가 가지고 있는 계급이나 계층 그리고 권력과 권위에 인간은 쉽게 동화되어 개인의 존재 자체가 약화되어 집단에 의해 쉽게 지배되어 버린다.

수업 시간에 잘못을 한 두 학생이 선생님의 명령에 의해 서로의 뺨을 때리고 있었다. 서로는 처음엔 살살 때렸는데 선생님의 권위에 지배되어 있는 힘껏 서로를 때리기 시작했다. 서로는 분노에 쌓여 죽일 것처럼 힘껏 때리면서 울고 있었지만 누구 하나 그 행위를 멈추기 위해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처럼 우린 쉽게 그 권위에 복종하게 된다. 이 교실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도덕적인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선생님의 권위에 불복종하게 되면 선생님께서는 그 학생을 질책할 것이며 곧바로 체벌로 이어질 것이다. 우린 그 두려움 때문에 양심선언이 어려운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교실에서의 문제가 아니라 각 사회나 조직 또는 나라가 처한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일제강점기의 잔재에 대해 누구 하나 의문을 가지거나 개선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모두 방관자이며 집단에 소속되어 기계의 부품처럼 움직여야 하는 나약한 인간이다.


[로빈후드 심리]

71세 노인은 골절상을 입고 장기 입원하는 바람에 노후 자금을 다 써버렸고 설상가상으로 아는 사람에게 사기까지 당하였다. 전기요금이 미납되어 전기회사는 전류제한기를 설치했고 결국에는 단전을 시키겠다고 노란 쪽지를 대문 앞에 붙여 놓았다. 단전이 되고 나서 며칠 후 그 전기회사 직원이 그 노인의 딱한 사정을 알고 회사 몰래 전기를 다시 연결해 주었다.

도덕적 신념을 실현하기 위해 의적 노릇을 하는 이 반항아들은 누가 와서 그 노인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어보면 “로빈후드가 왔었다”고만 말씀하세요. “절대로 제 이름을 가르쳐 주거나 인상착의를 알려주시면 안 됩니다”.라는 말을 남긴다.


회사에서 일하다 보면 이런 딜레마를 자주 겪게 된다. 회사의 직원 입장에서는 ‘도덕적 이념이 먼저냐 회사의 이익이 먼저냐 ’라고 묻는 다면 당연히 회사의 이익과 원칙에 의거하여 행동해야 하지만 인간적인 입장에서 돈이 없는 사회적 약자에게 최소한의 생활을 지원하기 위해 전기를 지원하는 것은 공기업이 당연히 베풀어야 할 사회적 책임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사회적 책임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지기보다는 사건이나 사고를 통해 사회적인 질책이 이루어져야지만 그에 대한 대책이 만들어진다.


많은 사람을 올바르게 변화시키려면 새로운 정책이나 타국에서 시행하고 있는 좋은 교육 제도에 익숙하게 만드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게 교육받은 사람도 없고 교육시킬 사람이 부족하여 아무리 좋은 교육제도도 가져올 수 없다.


도덕적인 문제를 떠나 ‘인간이 먼저냐, 돈이 먼저냐 ‘라는 난제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 책을 읽고 나면 이 난제에 대해 어느 정도 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세상의 모든 일들이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들이 많다. 당사자가 아니면 그 어떤 문제도 자기만 가지고 있고 말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사회에도 집단이 가지고 있는 권위에 많은 사람들이 복종하고 있다. 그 복종이 옳고 그른지 판단할 수 있는 방법은 그 거대한 기계 밖에서만 알 수 있다. 인간이 인간을 위한다면 사회적인 안정을 위해 언론을 통제하고 사회에 대항하는 글이나 책을 통제한다면 그 기준은 무엇일까?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사회적 기관들의 행위가 옳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 개개인에게 권위에 대한 복종은 월급봉투를 빼앗기지 않으려면 무슨 일이든 해야 하는 것이다.


대중의 입이 되어야 할 대중 매체는 통제되고 소중한 한 사람 한 사람의 의견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의견들로 수용할 수 없는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이것도 사회의 문제인데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도 없고 기구도 없이 방관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문제가 쉽게 풀 수 없는 문제들로 가득한데 같이 풀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세상의 일상적인 일정들만 소화하기도 벅찬 삶 속에서 문제를 풀다 계속 또 다른 문제에 부딪히다 보면 사람도 지치게 마련이다. 이런 문제에 답을 찾으려고 해야 하는 게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의 몫이고 후세를 위한 우리의 당연한 역할이 아닌가 생각하며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2014.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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