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이란 우리 사회의 고정관념이나 특정한 언어에 대한 가치에 대해 잘못된 것이 있으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글로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사실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나이가 되면 그것을 글로 적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공유해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가치가 잘못된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잘못된 가치에 빠져 평생을 헤어 나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린 타인의 글에서 알 수 있다.
움베르토 에코의 글은 찾아서 읽기에는 너무나 먼 고전의 한 귀퉁이에서 몇 줄 읽다 덮어버릴 그런 책들 중에 하나였다. 장미의 이름보다 푸코의 진자를 더 열심히 읽었지만 눈으로 읽었지 아직도 제대로 읽지 못했다는 생각에 책장을 펼치는 것이 쉽지 않다.
내가 창조주라고 생각하고 인간을 만들었다면 인간의 위대함에 대해 말하지 않아도 세상은 인간만 존재하는 세상이 아니기에 우린 신의 섬세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의 여러 기능들을 우린 당연하게 받아들이지만 그 원리와 이론은 쉽게 캐낼 수 없는 다이아몬드와 같다. 과학의 진화는 인간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신의 디테일함에 인간 스스로가 놀라지 않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읽고 싶지도 않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난해한 책들을 읽고 이해하고 글을 쓴다는 것은 인간의 게으름을 거스르는 일이라 그런 글들은 쉽게 쓰여지지 않는다. 류비셰프의 시간이 내게도 있다면 좀 더 나은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난 늘 시간과 핑계를 탓하며 내 인생의 헛다리를 열심히 짚고 살고 있다.
개인의 생각은 집단에 쉽게 묻히게 된다. 개인의 생각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것을 활자화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글은 쓰지 않으면 쉽게 쓰여지지 않고 생각하지 않으면 이해하려고 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우리가 어렵게 생각하는 것을 어렵다고 멀리하게 되면 무슨 지식이 특권층의 사유 재산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기게 된다. 인류는 지식을 공유하고 더불어 잘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우리 사회는 오히려 역행하고 있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된다.
지식은 특권층의 혜택이 아니다. 누구나 다 읽고 그 지식의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글 쓰는 사람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기호나 수학은 인간의 인지 능력을 향상하기 위한 도구가 되어야지 엘리트라는 사고에 길들여지면 자신이 힘들게 쌓아온 지식들은 휴지 조각이 되어 쓰레기통 속에서 폐지로 재활용될 것이다.
요즘 네이버 블로그나 교보문고처럼 거대 출판사의 인터넷 서평을 읽어봐도 책을 읽고 나서 쓸 글이 없는 것처럼 저자의 글만 있지 개인의 글은 찾기 어려웠다. 개개인의 특성이 개성적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개인만 잔뜩 있는 우리 사회의 모습은 붕어빵만 열심히 찍은 교육의 아픈 한 면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책에 등장하는 여러 사람들의 다양한 관점을 우리 사회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었다.
p7. 저자가 의도하지 않은 어떤 주제에 대해 글을 쓴다는 것은 저자의 관심을 촉발시키고, 그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무언가를 고찰하게 만든다.
적을 만들다.
이 책에는 우주. 인간. 종교. 항해. 오감. 생각. 마녀. 중세교회. 교황. 전쟁. 신화 등등 다양한 인용과 생각들로 천재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 글들이라는 것은 사실이지만 기존 현실의 가치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체로 적을 논한다는 것은 인류에게 적을 만드는 짓이다.
‘진리라고 선언하는 모든 것 뒤에 존재하는 의심의 악마적인 그림자 말입니다 ‘ p60. the PARIS REVIEW_interview1 작가란 무엇인가
인간에게 적은 마음에 있지 인간에겐 적이 없다. 적을 함부로 언급하고 적대시한다는 것은 인간에겐 정말 끔찍한 현실을 만들어 줄 뿐이다. 전쟁과 기아에 허덕일 수밖에 없는 인간의 치명적 단점 중 하나는 인간이 인간에게 적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굴레는 인간이 씌우고 인간이 괴로워한다.
절대와 상대
인간의 언어로 인간의 사고로 절대성을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절대적인 것은 신만이 알 수 있겠지만 신에게도 배꼽이 있다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p51. 어떤 것이 사실이라는 믿음은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이다.
p65. 사실이란 없고 해석만 있다는 이론은 프리드리히 니체가 주장한 것으로, 그의 소논문 ‘비도덕적 의미에서의 진라와 거짓에 관하여 ‘ (1873)에서 아주 명료하게 설명되었다.
불꽃의 아름다움
불은 뜨겁기도 하지만 밝기도 하다. 밝다는 것은 그 밝음으로 인해 그 주위의 사물을 볼 수 있게 해 준다. 빛이 없다면 모든 사물에겐 색이 없다. 하지만 우리 눈은 사물을 볼 수 있게 그 색을 인지하게 해 준다. 하지만 인간이 볼 수 없는 색들도 많이 있다. 세상은 우리가 볼 수 있는 색들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데도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색이 주는 아름다움을 인지하는 인간의 눈은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판단하게 되어 있다. 관념은 편견을 낳고 편견은 오류를 낳고 그 오류는 인간의 관념을 지배하게 된다.
보물찾기
그렇게 믿고 싶은 인간 욕망의 흔적들이 세계 곳곳에 뿌려져 있다. 그것을 찾는 것도 알아가는 것도 존재하는 인간들에겐 현재의 중요한 가치를 부여하게 만든다.
들끓는 기쁨
익숙한 것보다 익숙하지 않은 이름 그리고 피에로 캄포레지의 저서들에 들끓는 기쁨을 느끼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무엇인가를 잘못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천국 밖의 배아들
정자는 구조를 가진다. 난소는 그 구조를 키운다. 그것이 살아 움직인다는 것은 특정 메커니즘의 작용이 아니라 뇌의 작용을 받는다는 것이다. 뇌는 육체를 움직이기도 하지만 영혼과 감각을 느끼게 해주기도 한다.
오, 빅토르 위고! 과잉의 시학
p144. 위고의 문학을 지배하는 특징은 세상의 사건을 과도하게 기술하는 방식과 신의 관점에서 그것을 보려는 불굴의 의지다.
p164. 역사는 목적을 구현해야 하는 인물들 위에서 그 자신의 목표를 향해 행진한다. 는 인식에는 언제나 헤겔 철학의 어조가 있다.
p181. 우리가 이 소설의 살아 있는 정신 안으로 들어간다면 아마 눈물까지는 아니겠지만, 마음은 심란한 채로 나올 것이다. Helas!
검열과 침묵
p185. 소음은 은폐와 같다. 소음을 통한 검열의 이데올로기는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에서 침묵해야 할 것이 있으면 더 많이 떠들어라는 말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p185. 소음의 미학은 말해야 하는 사건이 무색해질 정도로 더 큰 소리를 내서 본질을 흐리는 것이다.
상상 천문학
p193. 그들은 현혹된 사람들이 아니라 현혹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지구가 둥글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아래로 계속 내려가게 되면 어딘가로 떨어질 것만 같고 지구의 반대편엔 땅과 하늘이 반대로 되어 있을 것 같은데 세상은 우리가 직관적으로 상상하는 것과 다르게 이루어져 있다. 우리가 상상하는 것을 글로 표현하고 그림으로 그려보면 우리의 생각들이 옳지 않았다는 것을 많이 느끼게 된다.
우린 지동설이나 만유인력에 대해 배워서 알았지만 이젠 지동설이나 만유인력에 대해 탐구하고 스스로 깨우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하는 게 우리의 의무가 아닐까. 이젠 떨어지는 사과에 대한 의심이 필요하지만 하늘을 보며 생각할 시간이 없다. 스마트폰, TV, 라디오, 책들은 우리가 많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진정으로 읽어야 할 책들을 읽어야 할 여유를 찾을 수 없게 만든다.
속담 따라 살기
p237. ‘아는 자는 직접 하고, 모르는 자는 남을 가르친다.’ 그런데 학생들은 선생님들의 허점을 알아채지 못했다.
나머지 칼럼에 대한 인용은 무의미할 것 같아서 생략.
이 책에 등장하는 책에 10%만이라도 번역되어 한국에 출간되었다면 한국의 지식수준은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을지도 모르겠다. 세계화 속에 세계화해야 할 일은 물건을 만들어 파는 것도 반도체와 배나 자동차를 잘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브레인의 가치를 파는 것이 더 중요하다. 요즘처럼 세계 속의 다양한 인물들의 활약상을 쉽게 보고 들을 수 있는 매체가 있기에 우린 많은 것들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더군다나 타의 추종이 불가능한 소설가. 기술자, 과학자들의 활약상은 정말 우리의 사고로는 범접할 수 없는 인간의 모습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