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내가 나를 사랑하기 시작하면 세상도 나를 사랑하기 시작합니다.

by 해질녘

내가 나를 사랑하기 시작하면 세상도 나를 사랑하기 시작합니다. 여러분을 항상 응원합니다. - 혜민


난 나를 사랑하고 싶었지만 세상은 나를 강하게 키우기 위해 쓰디쓴 인간관계에서 오는 불편함과 자본주의 계급 사회에서 나약한 서민으로서 평범하게 살아가도록 월급봉투를 더 사랑하게 만들었다.


잠깐 멈추고 나를 사랑할 시간이라도 있을까. 난 세상에 통달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성현들처럼 모든 것을 용서하고 희생하고 싶은 생각도 없고 더 이상 타인을 배려하고 싶지 않다. 언제까지 나는 없고 타인만 있었는지 나는 모르고 있었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한시라도 지금의 나에게서 벗어나야 한다.


하지만 난 여전히 현재의 위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부족한 나의 모습 속에서 자존감보다는 열등감과 자괴감에 빠져 책만 보는 바보가 되어 가고 있었다. 책을 통해 언젠가 그 쓰디쓴 권위나 계급에 의한 자본에 의한 불평등한 인간관계 속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십 년이 지나도 이십 년이 지나도 난 여전히 자본주의 사회라는 틀에 갇혀 남들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일을 하고 있었다. 그것이 최선이었고 그것을 뛰어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스님의 책 속에 그런 나의 유토피아를 경계하는 좋은 글들을 많이 남겨 주셨지만 내 흔적들을 보면 이 책도 지나고 나면 잊히는 좋은 글일 뿐이다.


깨달음은 그때뿐이고 중생은 여전히 중생일 뿐이다. 중생이 없다면 부처도 없을 테니 너무 나 자신을 질책하고 싶지 않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신적으로 나를 아무리 갈고닦는다고 해서 세상이 나를 사랑해주지 않는다. 나를 사랑하기 위해 부처가 되기 위한 수행이 아니라 세상을 향한 강한 질투가 나를 강하게 다스리려 한다. 하지만 사람들의 이목과 평판보다는 나의 핸디캡 때문에 나를 죽이며 살아왔던 내 인생의 바보 같은 성격이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


난 내 마음이 편안할 수 있도록 지금의 성격을 어떻게든 바꿔보고 싶었지만 그것도 쉽지 않았다. 내가 내 성격을 버린다고 버려지는 것도 아닐뿐더러 며칠만 지나면 제 자리에 돌아온 나의 성격을 보면 난 내 성격을 죽을 때까지 안고 가야 할 수밖에 없는 숙명에 갇혀 글쓰기라도 하지 않으면 미쳐 버릴지도 모르겠다. 저 밑에서 욱하는 기운들이 나의 목을 비집고 나오려고 하지만 내면의 난 그것을 억누르고 참고 있다. 참으면 독이 될 텐데 난 여전히 꾹 참고 있다. 그 스트레스와 독에서 벗어나려고 해도 내가 잠깐 멈추고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보려고 해도 부정적인 생각만 가득할 뿐이다.


지금의 난 도를 닦고 싶은 생각도 없다. 실수, 상처, 스트레스 투성이인 나 자신을 잘 알고 싶지도 않다. 꾹 참고만 살고 싶지도 않다. 화를 다스리고 싶지 않다. 화가 나면 정당하게 나도 화를 내고 싶고 울 때 울고 싶다. 답답하면 소리도 쳐보고 싶고 다른 사람들에게 명령도 내려 보고 싶고 싫은 소리도 하고 싶고 타인을 미워하고 싶고 나도 누군가에게 미워하는 사람이 되어 보고 싶다. 내 성격이 나를 자꾸만 움츠러들게 한다. 미움을 당하는 게 싫으니까.


월급쟁이 인생에게 잠깐 멈추고 휴직이라도 마음 편히 할 수 있을까. 휴직은 퇴직 혹은 왕따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내가 쉬면 정말 세상도 쉴까?'라는 의문만 되새기며 이 책을 계속 읽고 있다. 쉬고 싶지만 돈이 없다. 휴직자에겐 급여가 없다. 휴가를 통해 나를 리프레쉬할 수 있도록 다른 방법을 선택해야 하겠지만 잠시 나만 생각하며 나를 세상의 틈바구니에서 잠시라도 해방시켜 주고 싶다.


사람들이 나를 가만 놔두지 않는다. 솔직히 내가 나를 가만 놔두지 않는 것 같다.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사람이 보수적인 환경에서 직장 생활하는 것은 쉽지 않다. 모든 일들이 학연, 지연과 같은 연줄로 인간관계가 복잡하게 얽히고 얽혀 풀려고 해도 쉽게 풀리지 않는 것이 인간관계이다. 남자는 맨 정신으로 인간관계를 원활하게 풀어나갈 수 없다. 마음속에 담긴 이야기는 술로 풀리고 담배 한 개비로 대화가 이어간다. 난 거기도 끼지 못하고 어중이떠중이 맴돌고 있다. 내 안에 갇힌 불쌍한 중생의 허튼소리가 새어 나가는 것을 경계하지 말고 편안하게 내 맘의 응어리를 쏟아내자. 그게 내 맘을 치유하는 유일한 방법이니까


p65. 우리의 가장 큰 스승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얻는 배움이에요. 깨달았다고 해도, 관계 속에 불편함이 남아 있다면 아직 그 깨달음은 완전한 것이 아닙니다.

p71. 지식이 넘쳐 인품을 망치는 것은 어찌 모르십니까?, 고개를 숙이면 부딪치는 법이 없습니다.

p73. 오늘 하루, 당신을 힘들 게 한 사람도 당신의 스승이고, 당신을 기쁘게 한 사람도 당신의 스승입니다.

p116. 지혜가 없는 지도자일수록 모든 일을 자신이 다 나서서 간섭하고 조정하려 합니다. 결국 아랫사람들은 시키는 일만 하게 됩니다. 일을 시켰으면, 일을 맡은 사람이 책임지고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믿고 기다려주는 것도 지도자의 중요한 능력입니다.

p134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켜요. 잘생긴 나무는 먼저 베여 목재로 쓰입니다. 진짜 고수는 뛰어난 체하지 않습니다.

p136. 지식은 말하려 하지만 지혜는 들으려 합니다.

p157. 사람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은 옳은 말보다는 그 사람을 향한 사랑과 관심입니다.

p192. 우리가 매일매일 쏟아내는 말들 중에 얼마만큼 이 진짜 내 말이고 얼마만큼 이 다른 사람이 한 말을 짜깁기해서 내 말로 둔갑한 말인가요? 나는 진짜로 나만의 말을, 얼마나 하나요? 진짜 내 말이라는 것이 있기는 한가요?

p208. 마음을 다쳤을 때 보복심을 일으키면 내 고통만 보입니다. 그 대신 스스로를 진정시키고 내면의 자비빛을 일깨워 상대를 이해하려 노력하면 나에게 고통을 준 상대도 결국은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볼 수 있게 됩니다.

p217. 내 마음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사람은 나를 칭찬하고 잘해주는 사람이 아니에요. 나의 마음공부는 나에게 모욕을 주고 화를 내고 나를 실망시키고 어렵게 만드는 그런 사람들로 인해 시작하게 돼요. 그들이야말로 보살의 화신입니다.

p219. 도인이 달리 도인이 아닙니다. 알지만 말하지 않고 참을 수 있는 힘, 변화시킬 수 있지만 그 사람이 스스로 배울 수 있도록 가만히 놔둘 수 있는 힘이 있어야 도인입니다. 남들에게 보여주는 도는 아직 설익은 도일뿐입니다.

p223. 내가 옳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같이 행복한 것이 더 중요합니다

p244. 스님, 존버 정신은 존나게 버티는 정신입니다.

p274. 중생은 내가 원하는 식으로 일이 되길 바라고, 부처는 본인 앞에 있는 사람이 원하는 식으로 일이 되길 소망합니다. 그래서 부처는 날마다 좋은 날이지만, 중생은 어쩌다 좋은 날이에요. 중생은 좋은 일을 하면 그 흔적을 꼭 남기려 하고, 성인은 아무런 자취를 남기지 않고 좋은 일을 합니다.

p281. ,


2013.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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