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질녘 Oct 29. 2023

체르노빌의 목소리

나의 글은 그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고통받고 있는 이들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분들이 있어 우리가 앞으로 그런 불행이 발생하지 않도록 고통받지 않은 사람들은 그 책을 읽음으로써 심적으로나마 고통 분담을 해야 할 것이다.


읽지 않으면 알 수 없었던 그 목소리를 옮겨 적었던 펜대가 울지 않을 수 없고 그 책을 읽는 중간에도 우리 주위엔 여전히 그 꿈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죽어가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정말 미칠 것만 같다.


그 고통을 세상은 너무 몰라준다. 하지만 인간은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존재하였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극복함으로써 우리 세상이 좀 더 밝고 따뜻한 곳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바란다. 어린 난민들과 아직도 차가운 바다에서 길 잃은 어린 학생들에게 이 글을 바친다.


내 그 슬픔을 끝까지 같이 안고 갈 것이다. 죽음으로 그것을 회피하지 않고 당당히 맞설 것이다. 내 귓가에 아직도 그들의 흐느낌이 맴돌아 내 마음도 슬퍼 죽을 것만 같다. 이런 책을 전 세계 수많은 아이들이 읽고 이 슬픔을 공감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어른으로 자라나기를 바란다. 아이들은 읽은 대로 자라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슬픔은 체르노빌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잔혹한 전쟁과 테러, 환경오염, 자연재해로 인한 사건과 사고는 인간을 하나의 소모품처럼 취급하게 만들었고 그런 것을 겪어보지 못한 세대 그것이 그들에게 얼마나 극심한 삶의 고통을 가져다주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것은 남의 나라 일일 뿐이라고 말하지만 언젠가 내가 그 대상이 될 수도 있고 우리의 아이들이 그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겐 정말 낯선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상황들을 겪은 이들의 목소리를 텍스트로 접했을 때 내가 그들과 같은 상황에 처해 있을 때 난 어떻게 할 것인가. 그것은 너무 슬프고 힘들고 괴로울 것이다. 비록 우리 시대가 우리에게 들려주지 않았던 내가 관심 가지지 않았던 우리 역사의 슬픈 목소리를 내가 너무 무관심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일제강점기의 치욕스러운 지배하에 수모를 당했던 우리 선조들과 아직도 씻기지 않은 위안부의 슬픔을 글로 전 세계에 알릴 수도 있었을 텐데 일본보다 아직 국력이 약한 우리 사회는 사회적 약자의 피해에 대해 너무 쉽게 생각해 버렸다.


그들의 목소리보다 바쁜 인간의 삶 속에 너무나 보잘것없는 개인의 인생에 관심을 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가 보다. 죽어버리면 그만이고 곧 잊힐 텐데. 우린 그런 수많은 슬픔들을 잊고 살고 있는데 정말 잊어버린 슬픔을 뒤로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의 존재는 그래서 더 슬프다.


너는 나와의 관계 속에서만 그 의미가 있을 뿐이니.

살면서 정말 '나만 아니면 돼'라는 생각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의료사고, 총기사고, 교통사고, 전쟁, 테러, 기아, 난민, 마약, 패륜, 독재, 비리 등등 우리 주위에는 인간이 만들어 놓은 덫에 안 걸릴 거라고 생각하지만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언젠가 누군가의 가족 역시 그 덫에 걸려 고통스러워할 것이다.


모두가 처음 살아가는 존재이고 자기가 살고 있는 시대에서 만큼은 자기 맘대로 살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성이 아닐까. 현재를 살아가는 기득권의 집단이 현재의 상태를 거부하는 일이 있지 않고서는 우린 이 악순환의 고리를 영원히 끊지 못하고 우리 사회가 만든 잘못된 프레임에 고착될 수 있다.


어떻게 하면 우리 사회가 좀 더 나은 사회로 발전할 수 있을까. 체르노빌의 목소리처럼 좀 더 목청 높여 소리 지르는 수밖에 그래도 들리지 않는다면 이렇게 누군가가 읽어주길 바라며 나의 글은 그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2016. 2. 15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