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덕심기
“언제 배우셨어요?”
어머니는 말씀하신다.
눈으로 보고 배우멍 알았다고.
“언제 쉬세요?”
밭이 놀이터라고 하신다.
더덕을 심으며 나는 배웠다.
거리를 두고 심어야
각자의 뿌리가 단단해진다는 것을.
관계도 그렇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서운함은 어쩌면
내 좁은 그릇에서 비롯된 것일지 모른다.
2019년,
교습소 2층을 증축하던 해.
학원 강사로 십 년을 훌쩍 넘겨, 아이들 곁에 서 있었을 무렵, 드디어 내 공부방을 갖겠다는 꿈이 손에 잡혔다.
10평 남짓한 조립식 건물.
비가 오면 빗소리가.
바람이 불면 휘잉 하고 들려왔다.
제주의 눈이 오는 소리는 때때로 빗소리처럼 들렸다.
따사로운 햇살, 때때로 아이들이 오기 전, 낮시간에는 간이 텐트를 쳐서 책을 읽으며, 쉬어가기도 했다.
나는 교습소를
삼면 창으로 만들고 싶었다.
바람이 통하는 구조.
극구 반대 속에서 겨우 만들어낸 공부방 삼면 창들.
문을 열어두면 바람이 돌았다.
바람 한 스푼이 나를 조금씩 살게 했다.
교습소에 새들은 노을이 지면 날아왔다.
수업을 할 때면 새들이
이층 교습소를 반기는 듯했다.
새가 오는 일은 내게 기쁨이었다.
점차 시간이 흐를수록
어머니와의 시간이 생겼다.
시 쓸 여유가 생겼다.
주말이 생겼다.
아이와의 시간이 생겼다.
혼자 있는 시간이 생겼다.
집을 정리하는 시간이 늘었다.
이제는 ‘쉬기 위해’라는 말을 쓰고 싶지 않다.
나는 점차 구조를 바꾸기 시작했다.
[학원은 교육서비스업이라 한다.
사교육은 지식 전달만이 아니라 인격수양을 포함하는 일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그러나 강사를 위한 보호제도는 없었다.
수양을 쌓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속도전으로 치중된 사교육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만, 과정에 충실하며, 존엄을 함께 지키는 일의 의미를 함께하지만, 그것은 부정적인 평가를 받기 일쑤였다. 시대가 다시 거꾸로 가는 듯 함에 내 마음에 전쟁이 일어난 듯 언제부턴가 불편함이 자꾸 일어나기도 했다.
매년 교육을 받을 때마다 드는 기분은 나는 누구인가 하는 메시지를 전해받는 느낌을 주고 가는 무책임한 연설을 들을 때, 차라리 시낭송을 해주시지. 하는 순간들이 올라왔다.
누군가는 말한다. 일일 뿐이라고.
학원 관계자 모임에 가면, 나는 어디에 있는지, 내가 누군지, 여기가 어딘지 나는 종종 길을 잃은 느낌이었다.
그런데도 그만두지 않는 이유가 있었다.
나는 영어를 좋아한다.
아이들을 좋아한다.
공교육에서 버티지 못하는 학생들이 사교육으로 오곤 했다.
나처럼 사춘기시절을 부적응하며, 겪고 있을 학생들.
내겐 그냥 일이 아니었다.
사교육도 보호할 수 있는 제도가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렇다면 성과보다 과정에 더 의의를 두는 선생님들이 용기있게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지난겨울, 씨러닝(친절) 교육을 받으며, 한 학교 선생님을 만났다. 심리상담교사였다.
나와 대화를 나눈 후,
나의 심리를 너무 꿰뚫어 보신 듯 공감해 주셨다.
"선생님. 저 사교육 좋아합니다."
편견 없는 이 말 한마디가 위로가 되었다.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것에 자긍심을 갖고 살 것이다.
무분별한 사교육으로 차별화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공존하는 사교육의 필요성을 이야기해 본다.
그리고 그 사교육의 바탕에는 존엄이 있다. 존엄은 선을 지키는 일이다.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더덕을 심을 때처럼 간격을 두어야 한다.
아기 이불 덮듯 흙을 덮어주고,
삼 년은 기다려야 비로소 꽃이 핀다.
비와 바람은 자연의 몫이다.
잘 자라는 순도 있고 아닌 순도 있다.
연연하지 말라.]
그건 내가 조절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