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려

흙먼지가 날리던 순간

by 안세아

26년 2월 22일


숨이 차다며 밭으로 와달라고 하신 날이었다.
어머니는 작년에 자식 같던 귤밭을 파셨다.
그리고 허무함이 밀려왔다고 하셨다.
그러니까 그 귤나무들은
나의 언니이자 동생이었다.


내가 국민학교 1학년 때 농약 줄을 잡고 오빠들과 밭에 서 있기 전부터
이미 그 자리에 서 있던 존재들.


시한부 선고를 받았던 아버지는
가시기 얼마 전까지도
“하루라도 가보고 싶다”라고
자신의 귤밭을 이야기하셨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 뜻을 말릴 수 없었다.
고령의, 착한 암 환자의 소원이라고 하셨다.
어머니는 굳이 ‘착한 암’이라 표현하셨다.
벌써 세 번째다.

그 말을 들으며
나는 며칠 전 꿈을 떠올렸다.
세상에 빛을 보지 못한,
얼굴도 알지 못하는 언니가 나와 말했다.
“엄마가 귤고장 이래.”
립스틱을 고쳐 바르면서.

그날 아침, 전화 한 통을 남기고
문자를 보낸 채 기다렸다.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괜찮다.’
수년째 해오던 명상과
10분 요가 루틴을 했다.
호흡을 고르고 나서야 하루가 시작된다.

다음 날 연락이 닿았다.
아프셔서 병원에 계셨다고 했다.
어머니는 이제 돌아보니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두은 씨와 밭에 있었던 때라고 하셨다.
두은 씨는 살아 계실 적
어머니를 참 많이도 예쁘다 하셨다.
제주도 상남자들이 많다지만
어쩌면 이 말도 편견일지도 모른다는 것.

나는 츤데레처럼 보이는 두은 씨에게
“예쁘다”는 말을 참 많이 듣고 자랐다.
아이를 낳고 살이 오른 뒤에도
아버지는 내게 예쁘다 하셨다.

그때 알았다.
아버지는 정말
나를 사랑하시는구나. 있는 그대로.

성실하지만 낭만을 즐길 줄 알던 사람.
밭에서 일하다 힘들면
구성지게 노래를 부르며 쉬던 멋쟁이 신사.

사람들의 판단대로 제주의 한량이라 불리울 수도 있지만, 내게는 아니었다.
작은 것에 만족하고
자연을 사랑하던 분.
전화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사람.
그런 분이 우리 아버지였다.

돌아가시는 날을 아셨던 걸까.
시한부 선고를 받기 한 달 전쯤,
술을 마신 채 울면서 전화해
“불쌍한 내 딸”이라고 하셨다.
나는 “아빠, 괜찮아. 괜찮아.”
아기 달래듯 토닥였다.
무언가를 직감했는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그런 두은 씨에게
엄청 튕기셨다.
맛있는 음식을 해주시면서도
“사랑해”라는 말에는 응답하지 않으셨다.
그러다 아버지가 떠나시고
매일 귀찮게 불러주던
“예쁘다, 사랑한다”는 말을
그리워하셨다.
젊은 날, 두 분이 열정적으로 다투던 모습도
나는 보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어린 나의 두려움.
결국 112에 신고했다.
정의의 불꽃이 활활 타올랐다.

요망 지고 통통 튀던 시절의 나.
그 후로는
두 분이 크게 내 앞에서 싸우는 모습을
다시는 수 없었다.
두은 씨께서는 세상에서 내가 제일 무섭다 말씀 하셨다.

항상 그렇게 나를 있는 그대로 예뻐해 주셨다.


밭에는 흙먼지가 날렸다.
어머니는 내게
글쓰기가 딱이라고 하셨다.
조용히 하라는 말 대신
글을 잘 쓴다고 말해주시는 어머니.
지혜로운 분이시다.


지금이라는 시간이
내게 주어진 하늘의 선물처럼 느껴진다.
내 일을 열심히 하다가도, 한 번이라도 더 얼굴을 보고, 시간이 허락하면 더 들여다보고,
고령이신 어머니의 손과 발이 되어 드리는 일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마음이 먼저 시키는 일을 하기로 한다.


나를 낳아주고 키워주신 은혜에 비로소 감사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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