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중

바람이 불면-자작시-

by 안세아

바람아


-안세아-

바람은 어디에서
불어오는 것일까?

불어라 불어라
바람아

불러도 불러도
대답하지 않았죠

바람이 불지 않을 때는
걷다가 태양 앞에
잠시 앉아 있었죠

시원한 바닷바람을 기다립니다
그대는 날카로운 대답 대신
사랑으로 품어주었죠

아름다운 추억 못 잊어
내 머릿결 어루만지는

고운 바람이
불어옵니다

인연을 기다린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어느 흐린 날,
시내를 벗어나니, 돌담이 이어지고, 귤밭이 보이고, 흙냄새가 나는 곳, 삼달리.
내가 고향이라 부르는 조건이 그 안에 있었다.
삼달국민학교.

안에는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이 나타났다.
1982년. 제주 땅을 밟으셨다.

제주의 바람을 느끼고 싶다면, 김영갑 갤러리를 가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나 빼고 다들 다녀온 건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


고인이 된 그는 20년 넘는 세월동안 제주에서 사진을 찍으며 기록을 하셨다. 한 컷을 위해서 갔던 자리를 다시 찾고, 또 찾는 일. 전신주가 있기도 전의 기록을 하신 것이다. 개발이 되기도 전의 제주사람들도 모르는 그 신비로운 기록을 알리기 위해 기록하셨다.

아름답지 아니한가.

작가님의 사진 속 제주에는 대부분 바람이 있었다.
풀, 구름, 억새, 나무 등이 흔들리고 있었다.

흙마저 금방 갈아엎은 듯 살아 숨 쉬는 것 같았다. 흙내음이 나는 듯했다.


반면, 바닷가 앞에서 태어나 살던 나는 바닷가가 놀이터가 되었다가도 갑자기 돌변하는 바닷바람에 넋을 잃고 대비해야 했다.


바닷바람에 사람이 죽었다는 이야기가 어릴 적, 드물게 들려온 기억이 지금까지도 선명하기만 했다.

그리고, 비가 바람에 함께 불어나면, 돌담이 무너졌다. 곧 물이 집으로 들이닥쳤다.
건전지 라디오를 붙잡고 기상예보를 듣던 아버지.
부엌까지 차오른 물을 양동이로 퍼내던 손.
바람은 때때로 우리를 흔들었지만, 나는 그 바람을 다시 느끼고 있었는 지도 모른다.


언제부턴가 나는 바람을 느끼며, 바람을 따라가고 있었다.

사진 속 바람은 두려움이 아니라 살아 있음으로 느껴졌다.


흙은 날 것처럼 생생했고,
그는 그저 흔들림을 찍은 것이 아니라,
바람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제주의 빛을 생생하게, 이토록 아름답고, 찬란하게 찍어 위로하는 듯했다. 그의 진심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3년 전, 썼던 시이다. 블로그 따숨편지 1에 올린 시 이기도 하다. 다른 느낌으로 고친 후, 올려본다. ]


맨발 투혼



-안세아-


비바람이 몰아친다

바닷가 마을


비바람이 삼킨다

해녀의 집 앞 골목길


한 소녀의 무릎까지

물이 차올랐다


젖 먹던 힘까지

맨발투혼


부서지는 돌담

쓰러지는 전신주


젖 먹던 힘까지

당신과의 맨발 투혼


비바람이 찾아가면

반기는 것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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