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중

연결

by 안세아


26년 3월 2일


어제는 모처럼 어머니와 데이트를 했다.
이번 주에 심을 씨앗도 함께 골랐다.
나는 시금치, 콩, 초당옥수수, 접시꽃을 샀다.

어머니는 케일, 상추, 열무김치, 콩을 샀다.

그리고, 참외, 수박, 해바라기 씨앗을 덤으로 챙겨 받았다. 받아보니, 내가 고민하던 씨앗을 챙겨주신 것에 감사했다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접시꽃은 무사?"

"여름에 피면 예뻐서요."


나의 봄은 늘 이렇게 시장 안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함께 오지 못한 아이의 간식은 어머니가 갖다 주라며 사주셨다.


일하고 있는 신랑은 아무것도 필요 없다 했지만,
그래도 봄맞이 달래는 사야지 않겠는가.
밖에 나와서 혼자 애써 돈 버는 사람을 생각하면 늘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한사코 점심값 계산을 말리는 어머니께 내가 사드린다고 했다.
어머니는 내게 통이 크다며 칭찬을 하신다.

순대국밥을 사주는 데도 칭찬을 꼭 해 주신다.


음식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함께라서 뜨끈한 온기가 가득 전해졌다.
무엇인들 맛있지 않겠는가.

달래가 나왔다.
밥도둑 달래장을 만들겠다며
3천 원어치를 고르니, 뿌듯했다.

어머니는 또 내 소화를 걱정하신다.
마흔이 훌쩍 넘은 딸을
여전히 어린 시절 아이처럼 염려하신다.
좋은 쌀을 먹어야 한다며
쌀까지 사주시는 마음 앞에서
나는 또 촉촉해진다.



가고 오는 길 모두 용담 해안도로를 내 차로 담소를 나누며 왔다.

어머니는 내가 성인이 되어서야 운전을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이 자주 가는 길 외에는 차를 집 앞에 세워두셨다.

용기를 내서 운전을 시작한 이후, 내가 망설일 당시 용기를 주셨다.


그리고 해안도로의 또 다른 기억 하나는 나의 고등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해안도로로 어쩌다 한 번씩 택시를 타고서 바람을 쐬자며 갈 때가 있었다.

그 당시만 해도 해안도로에서 집으로 가는 버스가 하루에 몇 대 없었고, 한 시간에 한대 있는 버스를 놓치면, 거의 두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는 것이 스쳐지나간다.


둘만의 데이트를 하러 가던 곳도 생각이 났다. 어머니는 말은 잘 안 해도 행동으로 사랑을 표현하고 계셨었다.



26년 3월 4일


귤밭 창고를 만드는 일로 리사무소에 가야 된다고 태우러 와달라 하신다.


전화 오신 날은 다행히 20분 거리 내에 있었다. 사우나로 가려던 운전대를 돌려서 숲길을 간 것은 운명이었다.


어머니는 얘기하신다.

어릴 적 어머니는 외할머니와 열매 따러 가던 이야기를 하신다.

열매를 따서 바구니에 넣고 팔아야 하는데, 따다 보면 어느새 다 먹어버렸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하실 적마다 어린 시절 소녀가 된 듯한 표정에 생글생글하시다.


그 산동열매라고 했던가.

들리는 대로 받아쓰기해서 맞는지 검색해 봤다.


코에 열매가 묻어 까맣게 되도록

맛있었던 그 열매 이름은 무엇이었을까?

수십 번 그 이야기를 더 듣고 싶다.

솥뚜껑에 볶으면 그리도 맛있었던 열매.

외할머니 때부터 시장에 내다 판 약초라고도 했다.

진짜 있었다. 오디(뽕나무).


당신의 이야기가 내 어릴 적 전래동화가 되었다.

당신과 내가 바다를 잠시 스쳐 지나가던 날이었다.


두은씨와 왔던 아주 오래전 지난 여름날처럼 오늘도 함덕 바다가 예쁘다며 그렇게 이야기하셨다.

물론 와랑와랑 사투리로 말씀하셨지만 말이다.



사랑해요. 아름다운 김 여사님.


오늘 나는 고백했다.

어머니는 시인이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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