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파시 -자작시-
아직 꽃을 보지 못한 행복나무가 이층에 있다.
2019년. 11.11. 에 만난 행복이.
행복이는 행복나무의 이름이다.
이층에 있는 나의 벗.
종처럼 예쁜 꽃이 달린다고 들어서 검색해서 찾아본 적이 있었다.
행복나무가 꽃은 피우지 못했지만, 계속해서 잎사귀를 연신 피워내는 행복이가 기특했다.
행복이는 내 조카의 태명이기도 했다.
행복한 일만 생기라고 이름이 없던 조카에게 어머니가 지어준 이름이었다.
그리고 작년 4월 3일에 태어났다.
제주에서.
어머니는 세 번째 암 수술을 잘 마치셨다.
그리고 손수 상을 차려 주고 싶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와 신랑, 그리고 아들까지 모두 발 벗고 나섰다.
나 또한 공부방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싶기에 행복나무를 행복이라고 불렀다.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것은 몇 해 전 여름이었다. 잎사귀가 끈적해지면서 병충해에 걸렸다.
그래서 에어컨이 있는 공부방에 두기 시작하자, 환기가 되지 않으니, 곧 죽을 것만 같았다.
식물을 오래 키우다 보면, 심폐소생술이 불가할 것 같은 느낌적인 직감이 더러 오기도 했다.
원래 창가 자리로 다시 두었다.
병충해 든 잎을 싹둑 과감히 다 잘랐다.
겨울이 온 것처럼 앙상한 나뭇가지만 남은 행복이었다.
닦아도 잘 살려지지 않는 여름이 올 때마다 일단 잎사귀를 잘라버렸다.
상처받은 마음이 많아 문을 닫기로 한 식물들에게는 노크를 하고, 기다려야 했다.
잊혀 있었는데, 다시 살아나는 생명력을 보니, 간사한 내 마음에 반성했다.
그렇게 다시 살아나기를 몇 년째 반복했다.
인생이 순환인 것처럼.
창가 앞에 있어도 받는 빛은 각기 다 다르다.
행복이를 데려온 날은 11월 11일이었다.
이 날과 얽힌 일들이 있다.
광수생각 책을 어쩌다 꺼내어 든 나의 신랑.
다시 들여놓으려고 보다 보니, 나는 책을 읽고 있었다.
메모가 쓰여 있었다. 날짜를 확인하였다.
2012년 11월 11일.
[나를 사랑하자]라는 메모였다.
친구한테 상처받은 마음을 적은 글이었다.
생채기난 마음을 끄적인 것이다.
당신이 마침표를 찍은 날은 11월 11일이었다.
우연의 일치인 듯 들어맞는 게 너무나 신기했다. 그리고, 그것이 주는 메시지를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자신을 사랑해라.]
정원을 가꾸며; 나에게 쓰는 시
-안세아-
긴 침묵으로 보낸 어둠의 터널 속이여
맨 손으로 덮어준 이불로 움트기 시작한다
이제 담벼락 너머 저 푸른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어 보는구나
담벼락 아래 피어난 음표
벌과 나비가 찾아든다
가지마다 터져 나오는 성장통
한 땀 한 땀 품어 보리
폭신한 이불과 그대의 자장가
쓰담쓰담 덮어준다
그대의 노래가 시작되면
풀벌레 친구들이 합주한다
어둠 속 달밤 담벼락 너머,
피어나는 꽃망울들의 하모니.
봄이면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잠시 머 물정도로 예쁜 꽃나무가 담벼락 너머 보였다.
매해 봐오던 밥풀떼기 나무이다.
13년간 봐 오며, 정이 들었다.
이 나무를 매일매일 들여다보며 살았다.
거울 보듯이.
긴 겨울을 지내고 나서 이 나무에 꽃이 피기를 늘 기다리게 되었다.
그보다 매일매일 본다는 말이 맞겠다.
밥풀떼기 나무, 박태기 나무라고도 한다.
꽃말은 우정.
지금 이 순간의 축제를 즐기기 위해 팝, 팝 터진다.
3월 말부터 한 달간 폈다가 질 때는 자신들의 자취를 남김없이 가져간다.
[내 친구가 되어줘서 고마워.
꽃봉오리가 달리던 날에도, 꽃잎을 마중하던 그날에도 나는 네 덕분에 가슴이 뛰었어.
봄, 여름, 가을, 겨울.
순환되는 삶의 아름다움을 따스하게 바라보는 친구가 되어줘서 고마워
이제 곧 가지마다 다시 아물 영광과 생채기 속에서 피어날 희망과
지금에 감사하며,
사랑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