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 품기

돌담 틈에서 농경일기-자작시-

by 안세아

[제주 함덕]

밭에는 지난주에는 보이지 않던 옥수수 새싹이 기특하게 내밀고 있었다.
감탄이 절로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지난 금요일, 큰 오빠가 와서 돌작업도 마무리하고, 미리 물을 줬다고 올 필요가 없다고 했다.

다음 주 비 예보도 있어서 오지 말라 했지만, 밭에 한 번씩 가는 건 나와의 약속이었다.

마치 공부방에 보는 사람이 없어도 두 시간 일찍 출근하기처럼 말이다. 파릇파릇 새싹이 목마른 대지 위를 뚫고 돋아났구나.

[옥수수]

어린 새싹 사진들을 보니, 이름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들도 있었다.
사람도 마찬가지 아닐까? 피어나기 전까지는 모르는 일이다.

오름으로 둘러싸여 저 멀리 한라산이 보인다. 그곳에는 여기가 보이겠지 말이다.


한 폭의 파스텔톤 수채화처럼.

제주토박이로 살아온 나만의 사진에세이시집을 만든다면 나는 그렇게 칠하고 싶었다. 파스텔 빛으로 아름다운 세상을.

그렇게 선하게 살지 말라던 누군가에게
따스한 편지를 전하고 싶었다.

돌담트멍트멍 빛이 스며든다.



3월 29일,

나는 오전의 여유 서랍을 잠시 꺼내어 밭으로 향했다.
오후에 해야 할 닫힌 서랍들이 있었다.
해바라기는 떡잎을 펼쳐 마치 두 손을 내밀 듯 나를 반기고 있었다.


[해바라기]

[시금치]


올해도 해바라기 씨앗은
긴 터널을 지나 더 단단한 모습으로 올라와 있었다.
그것이 내게 시를 쓰게 했었고,
그 시는 다시 나를 다양한 배움의 길로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시 세상으로 이끌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태양 앞에 마주한 순간에 찬란히 빛나고 있는 것처럼 살아가야지.
그렇게 내게 말하고 있었다.
'너 자신을 사랑하라.'
여러 도전들 속에서 한 곳만 바라보던 시선이
이제는 자연을 향하고,

사람을 향하고, 나 자신을 향한다.
나는 나의 서랍장에 담긴 끌림을 믿는다.

밭에 오면서 지나칠 수 없던 풍경 앞에서
차를 잠시 세웠다.
돌담 사이사이로
유채꽃이 얼굴을 내밀고 있었고,

따스한 봄 햇살 속, 바람에 춤을 추고 있었다.
멈추지 않았다면
보지 못했을 풍경들 아니었을까?

해바라기의 서랍장

-안세아-


서랍을 잠시 꺼내어
밭으로 향한다
굳게 닫힌 서랍들 속
해바라기 떡잎을 열어 놓는다

긴 터널을 지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지를 뚫고 올라왔구나

태양 앞에 마주한 그대

찬란히 빛나리


벌과 나비들이 찾아오면,

고개를 그저 떨군 채
서랍마다 씨앗을 담아보리.


The Sunflower’s Drawers


-An Sea-

I open a drawer
and walk toward the field.
From tightly closed drawers,
The first leaves
of a sunflower have appeared.


Through a long tunnel
and still,
you have risen
through the earth.
Facing the sun,
you will shine.


When bees and butterflies come,
you simply bow your head.
And I
will place seeds
into each of my drawers.

작가의 이전글이상 품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