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정 애착은 불치병이 아니다.
엄마들이여, 애착이론에서 벗어나라.
많은 부모들이 육아를 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바로 애착이 아닐까 싶다.
정신의학자 볼비의 애착이론에서는 부모와의 초기 애착관계를 통해 자신과 타인, 세상에 대한 신뢰감을 형성하고 그것은 살아가며 모든 대인관계의 기초가 된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부모들이 애착이론에 목매며 혹여나 나의 사소한 언행 하나하나에 불안정애착을 형성하는건 아닐까 걱정하고 조심하는 것이다.
안정애착? 물론 할 수 있으면 좋다. 거기엔 이견이 없다.
하지만 안정애착이라고해서 그것이 결정적이고 고정적인 것일까?
세상엔 많은 불안정애착 유형의 사람들이 있다.
안정애착이 60~65%, 그리고 불안정애착이 35~40%라고 한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불안정애착을 형성하고 살고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세상은 멀쩡히 잘만 돌아가고 있다.
유아교육 분야에서 선구자의 위치에 있는 독일.
많은 사람들이 독일의 유아교육을 배우기 위해, 아이를 교육하기 위해 유학과 이민을 선택하고 있다.
그렇다면 독일은 안정애착이 많을까? 꼭 그렇지만도 않다.
문화적 특성상 독일은 독립성 강조로 인한 회피형 불안정 애착이 많다고 한다. 그럼에도 독일은 여전히 선진국이며, 안정적인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고 멀쩡히 잘 돌아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불안정애착이 꼭 큰 질병이나 된 양, 심지어 불치병이나 된 것 처럼 과도하게 왜곡된 시선을 가지고 있다. 불안정애착에 '걸리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조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왜곡된 시선으로부터 우리는 강박적인 육아가 시작되고 조금이라도 안정애착에 부합하지 못한 행동을 취했을때 극심한 좌절이 시작된다.
우리는 불안정애착에 있어 조금은 힘을 빼고 있는 그대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나의 경우는 부모님과 명백히 불안정애착, 그 중에서도 회피형 애착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다.
나 역시 불안정애착으로 인해 인생에서 다양한 문제를 겪어 왔기에 힘듦이 없었다고 말할 순 없다. 늘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부정적이었으며 타인을 신뢰할 수 없었고 스스로를 스트레스 상황으로 몰아넣은 적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경험들이 내게 부정적인 영향만을 가지고 왔다고 할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그러한 힘든 경험을 거쳤지만 나는 결국 세상과 타인에 대한 신뢰를 가지게 되었고 나 자신에 대한 진심어린 애정을 형성했다. 안정애착인채로, 세상과 만난 그 순간부터 긍정적 시선으로 세상을 향한 신뢰를 가질 수 있었다면 참 좋았겠지만 어찌됐든 나도 안정애착과 마찬가지로 세상을 향한 신뢰와 긍정을 형성하게 되지 않았는가.
물론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지만 그러한 과정을 통해 알게 된 긍정과 신뢰는, 안정애착을 통해 편안히 얻어진 그것과는 그 깊이에서 또 다를 것이다.
불안정애착을 통해 세상을 향한 부정을 먼저 겪어봤기에 긍정의 의미가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지 알 수 있었고 부정과 긍정, 모두를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수용하고 아우를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세상을 향한 불신, 타인에 대한 부정, 나 자신에 대한 회의감,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결코 알 수 없는 그 깊은 수준의 부정성을 몸소 겪어봤고, 그렇기에 그 반대에 있는 긍정성의 가치에 대해 더욱 감사함을 느끼고 향유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렇듯 불안정애착은 절대 고정적인 것이 아니며 충분히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그것을 발판삼아 건설적인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될 수도 있다.
불안정애착을 형성하는 것은 부모의 책임이 분명히 있겠지만 그것에서부터 벗어나는 것은 스스로의 선택이다.
인간은 결코 부모에 의한, 환경에 의한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다. 환경을 선택하고, 변화시키고, 개선할 수 있는 능동적인 존재라 믿고 있다.
언제까지 부모의 탓만하며 '내 인생은 애초에 망했어' 라는 생각만으로 살아 갈텐가.
애착은 결코 고정적이지도, 결정적이지도 않다.
불안정애착을 상쇄시킬 수 있는 방법은 성장과정에서 다른 사람과의 안정적인 관계라고 한다. 심리학자 스콜닉의 연구에 따르면 초기 양육자와의 애착보다 청소년기 또래관계가 대인관계 형성에 더욱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타인과의 관계가 아닌, 나와의 관계를 통해 개선할 수 있었다.
모든 인간관계의 기본은 나 자신과의 관계이다.
내가 나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수용해주며, 다른 사람이 다 손가락질해도 나는 나를 사랑하고 존중해줘야 한다.
결국은 초기 부모와의 애착관계보다 중요한 것은 나 자신과의 애착이며, 애착의 궁극적 목표도 나 자신과 세상에 대한 신뢰와 긍정성이지 않은가.
애착이라는 것이 불안정애착 아니면 안정애착이라고 이분법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일까.
세상은 결코 이분법적인 곳이 아니며 모든 것은 차원적이고 연속적인 것으로 평가해야 한다. 애착을 범주화해서 불안정애착이라는 낙인을 찍을 것이 아니라 불안정애착과 안정애착 사이에서 어느 쪽으로 조금 더 치우쳐져 있는지가 맞는 표현이 아닐까.
그렇기에 불안정애착도 이분법적으로 '무조건 부정적이고 나쁜것이다' 라는 생각도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세상 모든 것에는 장단점이 함께 존재한다.
불안정애착이 예술성이 더 뛰어나다는 연구결과도 있고, 실제 훌륭한 업적을 남긴 역사적 인물들 중에도 불안정한 가정환경을 가진 인물들도 굉장히 많다.
나는 불안정애착 유형의 사람들도 사회를 향한 비판, 완벽주의, 정의구현과 같이 또 다른 부분에서 세상을 나아가게 하는 힘을 가지고 이끌고 있다 생각한다.
안정애착만 있는 이상화된 사회? 그게 과연 좋은걸까.
자, 이제부터 내 아이가 불안정애착이라면 그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이미 형성된 것이니 쿨하게 인정하고 애착이론에서 벗어나야 한다. 왜곡되고 과장된 애착이론으로인해 우리는 육아에 너무 힘을 싣게 되고 부담과 압박에 시달리게 된다.
불안정애착도 사회에서 충분히 그 역량을 발휘하며 잘 살아 나갈 수 있다. 그리고 내 아이는 충분히 그것을 극복할 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