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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빈 Dec 20. 2020

밥 안먹는 아이, 스스로 먹기까지

상담 2회기에서 완벽주의 육아로 인해 아이에게 내가 정한 기준의 양과 영양소를 꼭 갖춰 먹이려는 강박과 밥 안먹는 아이를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지에 대해 상담사와 논의해보고 방법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상담사가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상담의 모든 부분은 상담사가 약간의 힌트 정도만 던지고 그것을 시작으로 내가 스스로 개척해 나가도록 만드는 작업이었기에 사실상 상담사는 기저의 핵심사고를 바꾸는 작업을 한 것이다. 그 사고가 변화하기 시작하니 나의 전반적인 사고의 방향이 틀어지기 시작했고 행동에도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의 경우는 드물지만 상담 1회기부터 변화가 나타난 케이스였다. 상담사를 신뢰했고 개방적인 자세로 상담을 수용하려 노력했다.


상담 후 전체적인 식사시간의 변화가 있었다.

처음엔 아이에게 왜 밥을 스스로 먹어야 하는지 설명을 해주고 이제부터 엄마, 아빠는 도와주지 않으니 스스로 떠먹어야 한다고 이것은 다 함께 지켜야 할 '규칙'이라고 설명해주었다. 식사에 대한 의지가 없는 아이라 그냥 두면 세월아 네월아 입에 물고만 있을 것이기 때문에 30분짜리 모래시계를 준비하여 아이에게 정해진 시간 내에 식사를 끝내지 않으면 식사를 치워야만 한다고 설명했다. 당시 33개월즈음이었기에 아이에게 시간개념이란 너무나 추상적인 것이었다. 아이가 시간을 이해하는것에 무리가 있어 시각적으로 직접 확인이 가능하게끔 모래시계를 이용하여 시간개념을 구체화시켜줬다.

작은 성취감, 자기효능감을 맛보게 하기 위해 처음엔 식사량을 어른 숟가락으로 한숟가락정도의 양만 제공했다. 밥 먹는 것이 별 거 아닌 것이며 다 먹었을때의 뿌듯함, 그 성취감을 느껴보게 하려고 아주 소량의 식사에서 아이가 눈치채지 못하게끔 조금씩 조금씩 밥량을 늘려 나갔다. 추후에는 아이 스스로 밥과 반찬을 뜨게 해서 양을 정하게 하기도 했 당연히 다 먹지 못하는 날도 있었다. 다 먹지 못한 날에는 간식은 절대 금지였으나 식사를 다 마치려는 노력이 보인 날은 (가령 2/3공기 이상 먹었다거나) "다 먹지 못했지만 네가 밥을 열심히 먹으려고 노력한 모습이 느껴졌기 때문에 간식을 주는 거야." 하며 강압적이지 않게, 유연하게 대처하려고 노력했다.

종종 다 못먹겠다, 먹기 싫다는 이야기를 할때면 "그럼 몇 숟가락 더 먹고 그만 먹을까?" 라고 '너에게 안먹겠다는 선택지는 없어.' 라는 의미가 담긴 질문을 통해 아이에게 선택권을 주었고, 아이는 3숟가락, 5숟가락이라며 스스로 그 양을 정하였다. 그리고 스스로 정한 양이기에 아이도 자기가 뱉은 말에 대해서는 꼭 지켰다.

식사시간엔 아이에게 밥과 관련된 말이나 부정적인 말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예컨데 밥 입에 물고 있지 마라, 빨리 먹어라, 편식하지 말고 골고루 먹어라 와 같은 말은 한두번 정도는 할 수 있겠지만 아이에게 밥시간=스트레스 라는 생각이 들지 않게 하려고 최대한 긍정적인, 일상적인 대화를 하려고 노력했다.

스스로 먹거나 밥을 싹 비웠을때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다 먹지 못했을때에도 노력한 과정에 대해서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처음엔 나도 저 많은 것들을 한꺼번에 지키지 못했다. 가장 시급한 문제(내 눈에 가장 거슬리는 문제)부터 하나둘씩 시작했고 아이에게도 적응기간이 필요하지만 엄마인 나도 변화에 따른 적응기간이 필요했다. 한번에 모든 것을 바꾸고 지키려고 하면 압박감과 부담감이 생기고, 모든 것을 제대로 따라오지 못하는 아이에게 끊임없이 잔소리를 하고 실망을 하게 될 수 있기에 하나의 미션을 클리어할때마다 조금씩 조금씩 미션을 추가하는 방향으로 설정했다.

물론 완벽하게 모든것이 술술 풀리지는 않았다. 나의 감정조절도 아직 미흡했으며 완벽주의를 내려놓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기에 어떤 날은 나도 모르게 강압적인 태도가 나타난 날도 있었고 어떤 날은 너무나 기분 좋은 식사로 이어진 날도 있었다.

그런 과정에서 아이가 한숨틱처럼 1분에 한번씩 한숨을 몰아쉬거나 손톱을 물어뜯는 증상이 나타나기도 했고 그럴땐 잠시 식사시간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고 한템포 쉬었다가 증상이 완화되면 서서히 다시 시작하기도 했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악화와 완화를 반복하다보니 아이의 식사습관이 완벽하게 갖추어 졌고 언제부턴가 아이는 스스로 밥을 퍼먹기 시작했으며 입에 물고 있지 않고 30분 이내에 밥을 다 먹고는 다 먹은 그릇을 싱크대에 치우는 것까지 스스로 하게 되었다.

물론 여전히 식사량이 많지는 않고 먹기 싫은 식재료 편식하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은 신체의 항상성이 있어 균형있는 식사를 하지 않아도 신체의 균형을 유지하려는 힘이 있다고 하기에 골고루 먹이려는 강박이나 정해진 식사량을 꼭 맞추려는 시도보다는 아이의 입맛과 상황에 맞춰 아이의 선택에 따르도록 하고 있다.


안 먹는 아이의 경우 식사습관보다 쫓아다니며 떠먹이더라도 정해진 만큼 꼭 먹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모들이 많다. 나 역시 건강을 위해서는 그것이 최선이라 생각했으나 발달상 평균안에 드는 아이라면 억지로 먹이려는 시도보다는 식사습관을 잡아주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기의 과업을 스스로 해내는 힘을 '자조능력'이라고 부르는데 이 자조능력을 통해 아이들은 성취감, 효능감, 통제감을 느끼고 나아가 사회성, 정서, 자존감, 인지 모든 부분과 연결이 되어 있다. 아이의 정서를 위해서라도 자조능력을 키울 수 있게 부모는 한걸음 떨어져 아이를 믿고 시행착오를 견디며 기다려주어야 한다.


식사를 스스로 하게 되고, 관섭의 말을 입에 담지 않게 되면서 부모인 우리의 식사시간도 편해졌으며 스트레스가 사라지게 되었다. 아이와 식사시간에 편안한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어 식사시간의 분위기도 좋아졌기에 아이를 위해서도, 부모를 위해서도 올바른 식사습관을 형성하는 것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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