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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빈 Dec 20. 2020

완벽주의 육아가 아이를 힘들게 만든다.

1회기 상담때부터 종결까지 꾸준히 과제로 받아왔던 것이 있다. 바로 감정일기.

부정적 감정이 느껴질때마다 그때의 상황과 감정변화에 대해 기록하는 것이었는데 내 감정에 동요되지 않고 한걸음 물러나 나라는 개체가 이러한 감정을 느끼고 있음을 인지하는데 큰 역할을 한 방법이었다.

일주일동안 부정적 감정이 들때마다 모든 것을 기록하고 다음 상담회기가 있기 전 날 상담사에게 문자로 일기를 전송했다. 상담사는 상담 전 미한주간 부정적감정을 하나하나 검토했고 그 상황에서 이러한 감정을 느끼는 것이 합리적인 것인지, 내가 느낀 감정을 내가 제대로 캐치한게 맞는지, 감정의 끝엔 무엇이 있었는지, 그 감정을 왜 느끼게 됐는지 깊숙히 파고 들어가는 작업을 거쳤고 감정에 대한 대처 또한 어떻게 했으면 더 올바른 대처였을지에 대해 세세하게 피드백을 주었다. 그리고 상담사가 나의 감정을 다루는 작업을 지켜보며 감정이라는 것을 인지적으로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건지 모델링이 되었고 일상에서 조금씩 상담사의 방법을 적용해가며 나 역시 감정에서 한걸음 물러나 바라보는 것이 가능해지기 시작했다.


2회기에는 한주간 느꼈던 부정적 감정 중, 항상 반복적으로 같은 상황에서 화가 났던 부분을 다루었다. 바로 아이의 양치시간. 상담사와 양치시간에 대해 다루며 계속해서 파고 들다 보니 결국은 양치에서 오는 화가 아니라 식사시간 화를 억누르고 있다가 식사 후 양치시간에 터져 버린다는 것이었다. 늘 양치가 힘들고 화가 나는 줄 알았는데 나도 모르던 반전이었다.

우리 아이의 경우는 늘 식사를 하려는 의지가 없어 스스로 먹는 것도 불가했고 부모인 우리가 다 떠먹여 주어야 했다. 아이가 밥을 물고 있거나 천천히 씹는 경우에도, 식사량이 적은 것도 늘 불만이었고 화가 났었다.

그리고 왜 식사량이 적은 것이 불만인지를 파고 들다 보니 아이의 성장과 건강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것을 알았고 성인 여성의 평균키를 훌쩍 넘는 내가 아이 역시도 나처럼 큰 키를 가져야 한다는 압박감을 가지고 있었기에 아이가 평균에서 '조금' 큰 것이 늘 이해가 안가고 불안한 요소로 작용했었다.

상담사와는 객관적으로 아이가 밥을 안먹는 것에 화가 나는 것이 합리적인 화인지, 화를 내면서까지 밥을 억지로 먹이는 것이 옳은 방법인지를 논하였고 당장에 화를 가라앉히거나 화를 표현하라는 것이 아닌, 근본적인 문제의 본질에 대해, 기저의 비합리적인 사고에 초점맞춰 인지적인 작업을 하였다.


우리 아이는 영유아검진에서 평균범주 안에 드는 아이였고, 오히려 평균보다 조금 더 큰 편이었다. 사실 그 정도면 잘 자라주고 있는 것이며 굳이 관계를 악화시키면서까지 억지로 먹여 더 키우는 것이 의미가 있는가 의문을 가졌다. 아이의 신체발달은 음식이나 유전적인 요소가 영향을 미치기도 하지만 심리적인 부분에서도 영향이 크다는 연구결과도 최근들어 많이 발표되고 있다고 했다. 과연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으며 억지로 헛구역질까지 하며 꾸역꾸역 삼켜 먹는 음식이 성장발달에 옳은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살펴보고 엄마의 기준치를 다시 한번 설정해 보는게 어떨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상담사는 정확한 연구결과를 보여주며 신뢰감을 더해주었고 본인의 의견이 무조건 옳다가 아닌, 이러한 경우도 있습니다만 선택은 엄마의 몫입니다 와 같이 주도권은 내담자에게, 늘 잠정적인 결론을 내리며 유연하게 대처하였다.


나는 평소 완벽주의적 육아를 하고 있었고 식사에 있어서도 완벽주의 적인 기준을 정해놓고 삼시세끼 5대영양소를 골고루 갖춘 음식을 꼭 먹여야만 했다. 주 3회 이상 소고기, 주 1회의 생선, 적정량의 밥을 꼭 지켜 먹이려고 노력해왔고 식단을 보면 주변 사람들이 푸드코트냐고 할 정도로 완벽하게 차려내었었다. 내 딴엔 아이를 위해 한 일이라 생각했지만 아이의 의견은 전혀 반영되지 않은, 내가 정한 좋은 엄마의 기준을 아이에게 무조건적으로 맞추라 강요하고 있던 것이었다.

상담사와 해답을 찾아가며 뒷통수를 맞은 듯한 느낌이었다. 늘 민주적이고 자율적인 육아를 지향하고 있다 생각했는데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나는 통제적이고 완벽주의적인 양육을 하고 있었다.

식사에서 깨달음을 얻고 보니 일상의 많은 부분에서 나는 '좋은 엄마' 코스프레를 하며 완벽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었고 아이의 의견은 전혀 무시하고 아이보다는 나를 우선시 하고 있었다.

완벽한 엄마와 좋은 엄마는 비례하지 않는다. 엄마의 완벽주의가 아이를 힘들게 만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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