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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빈 Dec 20. 2020

완벽주의 엄마가 아이를 망친다.

육아를 시작하기 전부터 나에게는 완벽주의가 있었다. 완벽주의도 완벽을 추구하는 부분이 다 다르기에 본인 스스로 완벽주의인걸 알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완벽을 추구하는 부분 외에는 별 신경을 쓰지 않기에 타인의 눈에도 완벽주의자로 비춰지지 않기도 한다.

나의 경우도 육아나 시간에 대한 강박과 완벽 추구가 있었고 그 외의 집안일 따위는 소홀했기에 스스로 완벽주의라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었다.

돌이켜보면 임신도 전부터 육아서적을 쌓아놓고 공부하며 아이를 계획하고, 완벽한 엄마가 되기 위해 준비를 해온 것도 완벽을 가하려는 시도였다.


태어난 아이는 까다로운 기질이었다. 첫 아이다보니 그것이 까다로운 것인지, 일반적으로 모든 아이들이 그러한 것인지 비교할 곳이 없으니 알 길이 없었고 그냥 모든 아이들이 그러한지 알고 키웠다.

까다로운 아이의 경우 수면과 식사, 그리고 일상생활이 불규칙하고 예민하다고 하는데 우리 아이도 모든 것이 불규칙했고 완벽을 추구하는 내게는 불규칙이 너무나 큰 불안 요소였다.

내가 정한 시간에 꼭 아이를 재우고 먹여야만 했고, 내가 정한 시간만큼 자고 내가 정한 양만큼 먹어야 했지만 까다로운 아이인지라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엄마의 기질과 아이의 기질이 너무나 상이했고 그것의 상호작용으로 엄마와 아이 모두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우울증의 형태로 나타났다. (아동기 우울증은 어른과 달리 성마름이나 무감정 형태로 나타난다.)


우리 아이는 늘 또래연령에 비해 수면시간이 1~2시간씩 적었으며, 낮잠은 17개월부터 사라졌다. 등센서도 심해 17개월까지 아기띠에서 늘 잠들었으며 바닥에 내려놓기만해도 곧바로 눈을 번쩍 뜨고 집이 떠내려가라 울어댔다. 게다가 한번 시작한 울음은 쉬이 그치지 않았고 아이의 울음이 시작될까 늘 초조하고 두려웠다.

1818 욕나온 다는 18개월에 가까워 오자 이유도 없는 짜증을 부려댔고 2~3시간씩 바닥을 구르며 악을 쓰고 우는 일이 매일매일 반복됐다. 도와주는 이 하나 없는 육아였던지라 그 시간이 정말 지옥이었다. 왜 우는지 알 수도 없었고 그치게 하는 방법도 없었다. 내 힘으로 통제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으니 그 무력감을 견딜 수 없었고 스스로가 한심했다.


그런 까다로운 아이에게 완벽주의 엄마란 최악의 콤비였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아이에게 화가 들끓었으며 엄마로서 완벽하려면 화를 내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 요소라 생각했기에 화가 나는 자신에게 또 다시 화가 나는 이차적 분노가 반복되었다. 결국 참다 터진 화는 겉잡을 수가 없었고 매일을 엄마의 완벽과 아이의 까다로움이 서로 줄다리기하듯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육아는 막다른 길로 치닫고 있었다.


아이의 개월수가 많아질 수록 아이는 얌전해졌고 점잖아졌다. 흔히 말하는 '모범적인 착한 아이'였고 주변에서는 '이런 아이면 열명도 더 키우겠다, 엄마가 정말 편하겠다, 어쩜 이렇게 바르게 키울 수 있냐'는 칭찬을 쏟아냈지만 엄마의 감으로 알 수 있었다. 그것은 결코 착한 것이, 바른 것이, 모범적인 것이 아니라 엄마를 향한 포기였음을.

남들이 칭찬할때마다 나의 불안은 더 해갔다. 나로 인해 아이가 망가진 것 같았다.

어쩌면 그것마저도 '평균적으로 생각하는 아이로서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으니 완벽을 추구하는 내 눈엔 불안요소가 되었을 지도 모르겠다.

아이는 울지도, 고집도 없었고, 타인을 향한 공격도, 폭력성도 없었다. 그렇게 까다롭던 나의 아기는 어느 순간 순종적이고 수동적인 아이가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완벽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더욱 완벽을 가하고 있었다.


애착이론에 근거한 36개월까지의 가정보육, 늘 유기농에 5대 영양소 고루 갖춘 매끼니 새로 지은 밥, n개월에 맞는 적정 수면량, 인지를 위해 매일 읽어주던 책, 피부는 제 2의 뇌라는 말에 매일 해주던 촉감놀이들, 기관에 가지 않으니 사회성도 신경써주어야 해서 또래와의 만남도 미루지 않았고, 성교육도 잊지 않고 매일 너의 몸은 소중해 블라블라 설교를 해댔다, 양치도 강박적으로 정확한 방법을 따랐고 치과에서는 치아상태를 보고 "양치 누가 시켰나요? 이런 아이들만 있으면 치과는 망하겠어요." 라고 할 정도였고, 45개월까지 영상물도 본 적이 없어 아이는 우리집 티비가 어떤 물건인지도 모르고 컸다. 부모와의 상호작용이 중요하다기에 신생아때부터 끊임없이 말을 걸고 놀이에 최선을 다했고, 이러한 노력덕에 아이는 베일리검사에서 인지, 언어, 시공간능력, 소근육의 능력이 또래보다 월등히, 1년반 이상을 앞선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17개월에 긴 문장을 말하기 시작했고 늘 또래보다 빨랐다.

센터에서는 아직은 어려 영재검사가 불가하고 조금 더 커서 검사를 받아볼 것을 권장하기까지 하셨지만 마음 한켠엔 잘못된 양육법에 아이가 망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커져만 갔다.

다른 부분에서 다 빨랐지만 늘 사회성, 정서 부분에서 평균에 미치지 못했고, 불안정애착이 예상된다는 결과를 받았다. 발달이 매우 불균형했으며 그 어떤 것보다 정서가 우선순위였던 엄마였던지라 불안정애착이라는 결과는 다른 모든 뛰어난 결과를 상쇄시킬만큼 두려웠다.


완벽한 엄마가 좋은 엄마고, 완벽한 육아가 좋은 아이를 만든다고 착각했었다. 늘 원리원칙이 우선이었고 감정보다는 이론을 앞세우던 엄마는 육아의 가장 기본인 아이를 향한 애정이 결핍됐음은 전혀 모르고 원칙안에서, 논리 안에서 답을 찾으려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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