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땡이는 오늘 문제집 정답지를 베끼다 내게 걸렸다.
멀리서 이름을 부르니
화들짝 놀라 펄쩍 뛰었고
곧이어 경직된 표정으로 굳어서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참 순수한 영혼이라구.
남을 잘 속이지도 못하면서
'지금 나는 어떠한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라고 표정에 그렇게나 빤히 드러나는 팔땡이가 귀여워
나는 그자리에서 빵터져 깔깔대고 웃었다.
팔땡이는 횡설수설했고
정답지 베꼈니?
라고 묻자 그렇다고 말하며 눈물을 줄줄 흘렸다.
그 모습이 귀엽고 사랑스러워
나는 웃어댔고
팔땡이는 내 앞에서 차렷자세로 굳어버린채
엉엉 우는 우스운 장면이 연출되었다.
혼내지도 않는데 너는 왜 우는거야?
물었더니 모르겠다며 오히려 역정을 낸다.
나는 한참을 웃어재끼고서
아이에게 말했다.
나도 어렸을 때 정답지 베껴봐서 네 맘 다 알아!
문제집 하나하나 머리써서 풀기 귀찮고 힘들지?
나도 그랬어~ 그래서 뽀뽀할머니한테 엄청 혼났었어~
근데 정답지 베끼면서 스스로 문제를 안 풀어보면
앞으로 수학문제를 잘 풀 수 없게 돼.
학교가서 수학문제 풀 때 친구들은 다 잘 푸는데
혼자서만 수학문제 못 풀어도 괜찮겠어?
앞으로 어떻게 하고 싶어?
난 너를 믿기때문에 정답지를 그대로 계속 두려고 하는데,
네가 정답을 보고 싶은 생각이 자꾸 들어서 괴로우면 떼도 괜찮아.
네 선택이야.
그리고 속이고 거짓말하려면
머릿 속으로 그걸 할 수 있을 만큼
생각을 많이 하고 가설을 많이 세워야 하는 일이거든?
그래서 네가 날 속이려고 했다는건
그만큼 네 뇌가 많이 자랐다는 뜻이야.
뇌가 많이 성장했나보다.
근데 엄마는 널 믿고 정답지도 안 떼뒀었는데
네가 날 속였다고 생각하니
좀 실망스럽기도 해.
앞으로 엄마 안속일거지?
엄만 팔땡이 믿을게~
하고 끝이났다.
이 사실을 알고서
정답을 보고 싶은게 당연한 욕구라며 아이를 이해하고
혼내지 말고 잘 설명해주라는 (혼낸 적도 없는데)
아빠를 보고서 팔땡은 다시 한번 2차 눈물을 쏟았다.
날 속이려 들만큼 많이 자랐다는 사실에
어쭈구리 싶어 웃음만 나고
순수한 아이의 리액션이 귀엽고
아직 어려 엄마 말에 쉽게
수긍하고 안아주는 아이가 사랑스럽다.
아이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면
아이와의 관계를 돈독히 할 수 있고
아이에게 나의 신뢰와 사랑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 같다.
오늘 팔땡이의 귀여운 실수로
우리는 한뼘 더 가까워 졌다.
웃겨 정말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