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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빈 Mar 21. 2023

비행청소년

나는 청소년기 비행을 했다.

요즘 청소년들이 말하는 비행에 비하면

미약하고 유치한 수준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당시 나와 친구들은 우리 선에서 할 수 있는 비행은 다 했던 것 같다.


내게 있어 아동기는 어땠니 라고 묻는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불.행 두글자였다.

불행하고 불안한 아동기를 거치며

아무것도 내 힘으로 해결될 것은 없다는 무기력을 느꼈다.


그렇게 청소년이 되었고

나는 변했다.

부모에게 반항하고 저항하고

권위자에게 불복종하고 맞섰다.

학교 선생님들은 소위 나쁜 학생

이라는 타이틀을 씌워

돈 좀 있고 표면적으로는 모범생이던

친구들의 엄마에게 전화를 돌려

나와 놀지 못하게 하라는 얘기도 했다.


그때의 나는 무서울 것 없었다.

경찰서도 들락 거려보고,

심지어 검찰청도 넘어가보고,

아빠가 와서 고개 숙여 비는 것도 직접 보고,

엄마가 학교에 와서 고개를 조아리던 모습도 봤다.


아동기를 불행이었다 말하는 내게

언제 가장 행복했니

라고 묻는다면 나는 단언코 중학생 시절을 얘기하곤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부모가 가장 아팠을 그 시기가 나에겐 가장 행복한 시기였다.


엄마에게 억압되고 짓눌렸던 내가

아빠를 향한 미움과 경멸이

그 시기 나는 마구 분출되고 있었다.


물론 비행의 명확한 명분은 없었다.

그 때엔 알지 못했다.

그렇지만 사회적으로나 가정에서나

나를 억압하고 속박하던 것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움을 느꼈고

실은 무섭기도 했지만 무서울 것 없는

마의 중학생이었다.


초등시절 엄마는 공부 안하는 날 쥐잡듯 잡곤 했다.

구구단을 외울 때면 회초리로 맞아가며 배웠다.


초등학교 저학년,

물리적인 내 머리가 그걸 받아들이고 이해하지 못하는데도

엄마는 그냥 머릿 속에 집어넣으라고

왜 그걸 안 외우냐고(못 외우는거였는데)

틀릴 때마다 가차없이 나를 때리곤 했다.


아직도 트라우마처럼 기억에 남아있다.

왜 외워야 하는지 이유도 모른채,

원리도 제대로 설명해 주지 않은채,

그냥 무작정 달달 외워 읊으라던 엄마.


매맞는게 너무 무서워 엉엉 울면서

눈물 콧물 쏟으며 구구단을 내뱉던 나.

매가 너무 무서워

할 수 있는 것조차도 막혀 버리기 일쑤였고

그럴 때면 엄마는 내게 비난과 수치와

가차없는 매를 선사했다.

그런 엄마에게 사랑의 감정이라곤 느끼지 못했다.

그냥 내게 있어 엄마는 무섭고 시한폭탄 같던 사람이었다.


그러던 내가 중학생이 되어서는

반항하기 시작했다.

공부를 하지 않겠다 선언하고

내 몸에 손만 대보라고 집을 나가겠다며

화가난 아빠에게 대들고

그대로 집을 박차고 나오기도 했다.


부모 가슴에 대못을 박았지만

부모가 내게 준 상처를

마구 표출하며 나를 지켜낸 시기였다.


그래서 나는 그 시절

비행행동이 나를 살렸다 말한다.

속에 억압해 두거나

나 자신을 향해 비난하지 않았다.


억울하고 원망스럽고 원통했던 마음을

모두 바깥으로 털어놓은 시기였다.


비행청소년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음을 잘 알고 있다.

학교의 학부모들도, 친구의 부모들도, 선생님들도

모두가 우리를 벌레보듯한 시선으로 보곤 했다.


비행을 하기 전까지 다녔던 입시학원에서

내가 그만 둔 후에도 계속 다니고 있던 내 동생을 통해 들었던 말이 있다.


당시 학원 선생이 동생의 반 친구들에게

너네 공부 안하면 ㅇㅇ이 누나처럼 되는거야.

그 꼴 나고 싶니?

라고 이야기했다는 것이었다.


그걸 함께 들은 엄마는 기가 차 했지만

별다른 대응행동을 하지 않았다.

그런 엄마를 보며 엄마는 나를 보호하지 않는 사람임을 다시 한번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었던 나 역시

그 말에 너무 화가 나 누군지도 모르겠는 그 선생을 찾아가 한바탕 엎어버리고 위협하고 싶은 맘이 들었었다.

물론 행동으로 옮기진 않았으나

그렇게 사회가 나를 보는 시선은

사회적 낙오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 내가 서른여섯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그리고 종종 놀이터를 지날 때면

공터를 지날 때면

담배를 입에 물고 가래를 뱉어대며

도끼 눈을 뜨고서

사회와 그리고 어른인 날 향해

경계어린, 위협의 눈초리를 보내는

비행청소년들을 마주하곤 한다.


그럴 때면 나는 그들이 안타깝다.

무언가 맘 속 가득 불편한 것들이 응축되어 있는데

그것을 어떻게 쏟아내질 못해

스스로 이유도 모른채

비행행동을 일삼고 있을 텐데

그들이 내게 무얼 말하고 있는 것일까

사회로부터 어떠한 것을 이야기하고 있을까

무얼 도와달라고 하는 것일까

골몰하게 된다.


그때에 내겐 그런 나를 알아주는 어른이

단 한명도 없었다.

담임은 아빠와 운동을 함께 하던 체육 선생이었는데

이유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은 채

냅다 불러내어 모두가 보는 앞에서

쇠파이프로 때렸다.


다음 학년이 되었더니 또 다른 담임은

그냥 내 수업 안들어도 되니

조용히 잠이나 자고 있으라 말했다.


어른들이 날 대하는 태도는 그러했다.

벌레보듯 무시하거나

강압적이고 폭력적이게 눌러 버리려 했다.


내 부모 역시 그러한 반응이었다.

내 맘을 들어주고 읽어주려는 노력은 커녕

너 때문에 내가 얼마나 힘들고 죽고 싶은지,

너같은 년은 필요가 없다느니

본인의 바라는 바만 계속해서 내게 얘기하고

본인이 얼마나 힘든지만 내가 이해하길 바랐다.

내 감정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아무도 날 들여다 봐주려는 어른이 없었다.



그래서 난 종종 마주하는

방황하는 청소년들을 볼때면

그들이 어떠한 메세지를 전하고 싶을까

그 속에 얼마나 썩어 문드러진 맘이

감추어져 있을까

그리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을 그 마음이

궁금해지곤 한다.


비행 청소년의 부모들이 종종 내 블로그에 와서

하소연을 하곤 한다.

아이가 이러한 상황인데 죽고 싶다고, 어떻게 해야 하냐고.


본인의 감정에 집중되어 있다.

아이가 왜 비행을 하려는지,

그 이면에 어떤 상처를 안고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지

궁금해 하기 보단

자신이 부모로서 죽고 싶고 힘들다는 얘기를 늘어 놓는다.


그 부모들 조차도 비행이 나쁜 것이라 여겨 아이를 나쁜 아이라 단정 지어 버린다.


하지만 아이의 비행이

아이의 목숨을 살리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 비행으로 숨통을 틔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이는 분명 살고 싶다.

살아내기 위해 숨 쉴 구멍을

필사적으로 찾아낸 것이다.


아이의 비행이 부모에게 끊임없이 던지는

메세지이고 신호일 수 있다.


그러한 맥락에서 나는 분노 내담자들의

분노도 너무나 반갑다.

그들의 분노가 그들을 살리고 있으니.


분명 비행도, 분노도

사회적으로 강도를 조절해야 할 필요는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상처받은 그 마음을 헤아리지 않는다면

결코 비행도 분노도 멈출 수 없다.


그들은 상처받은 마음을 내면에 억압하지 않고

표현해 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런 그들의 비행과 분노가 반갑다.

어떻게든 살아나가려는 발버둥일테니.

죽지 않고 살아내려는 원동력일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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