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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빈 Jan 31. 2023

교묘하고 비겁한 타인 조종


늘 그렇듯 우리 가족은 시댁과 거의 매일 영상통화를 한다.

아이를 낳고 매일 영통을 하길 바라시는 시댁에 처음에는 통제받는 느낌과 며느리에게 효도를 바라는 느낌에 기분이 썩 좋지 않았으나 매일 하다보니 나 역시 습관이 되어 통화하지 않을 때면 어쩔땐 허전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오늘 남편이 백신주사를 맞아 회사를 쉬고 집에 있었다.

남편은 내일 컨디션을 봐서 백신 맞은 바로 다음 날임에도 회사 동료와 술약속 잡겠다 한다. 솔직히 아이 방학때는 집에서 2주간 독박육아하는 날 좀 도와야 하지 않나 라는 생각에 괘씸한 맘이 들기도 했고, 남편도 친구들이랑 술 한잔하며 휴가를 즐기고 싶겠지 라는 맘이 동시에 들었고 나는 나의 욕구를 내려놓고 남편의 욕구를 인정해주었다.

쿨하게 다녀오라 했지만 독박으로 힘들 나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서운한 맘에 내 마음 한켠엔 불편함이 남았다.

(내게 있어 사랑의 표현은 봉사다.)


그리고 시댁과의 통화에서 나는 어머님께 냉큼 남편의 술약속을 일러바쳤다.

어머님은 매우 노여워하셨고 정신이 나갔냐며 버럭버럭 화를 내셨다.

그리고 화내는 어머니에게 잔소리듣는 남편을 보며 통쾌함도 느끼고, 꼬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어머님의 화가 남편이 아니라 내게도 향해 있음을 느꼈다.

고자질을 해서 어머님 속을 뒤집어 놓은 것, 남편이 술을 마시러 가든 말든 신경 안쓰고 두는 것에 대해 내게 불편감을 느끼시리라 생각이 들었다.


어머님이 강하게 화를 내실때 처음 든 감정은 매우 통쾌였지만 화가 계속해서 이어지자 나 역시 불편감이 올라왔다.

화의 화살이 남편을 향해 가는 것 같았지만 내게도 불똥이 튀고 있음에, 남편도 속으론 짜증이 난 것 같음에.


그리고 무어라 대답해얄지 모르겠어서 애꿎은 아이만 찾아댔다.

그리고 싸해진 분위기에 급히 전화를 끊었다.


이것이 사실은 시댁과 나의 반복되는 행동 패턴이다.

남편의 잘못을 나는 늘 시댁께 고한다.

시댁은 화가 나서 잔소리를 하고, 노여워 하시다 전화를 마무리하신다.

남편은 짜증이 나고, 나는 통쾌함과 불편함이 든다.



시댁에게 말하지 않아야 함은 알고 있지만

시댁과 통화를 할 때면 나도 모르게 튀어 나온다.


이전엔 나의 행동 패턴이 왜 자꾸 반복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남편에게 드는 부정적 감정을 남편에게 100% 쏟아내지 않고 억압하기 때문이다.

이유는 아이 앞에서 싸우는 것이 싫은 것이 가장 크고, 두번째는 남편의 욕구 역시 이해가 되기 때문에 강하게 무어라 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의 섭섭한 감정과 합리적으로 이해한 이성의 대립에서 이성이 승리를 거머쥐고 감정을 억압해 버린다.


그렇게 억압돼 있던 불편감은 시댁과의 통화에서 강하게 튕겨져 나와 고자질을 해버린다.

그리고 시댁에서 남편에게 잔소리를 할 때면 내가 하고픈 말을 대신 해주는 시댁에게 시원함을 느끼면서도, 또 한편으론 내게 부정적 감정이 향하는 시댁에 매우 불편해지기도 한다.


이렇게 억압된 감정은 엉뚱한 데로 튀어 가서 더 큰 화를 불러왔다.

남편에게 직접적으로 이야기했다면 오히려 덜 문제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더 문제가 되더라도 억압하지 않으니 적어도 내게 있어 문제가 되진 않았을지 모르겠다.


아이 앞에서 서로 얼굴 붉히지 않으려 억압하고,

남편이 술 문제에 굉장히 예민하다는 것을 알기에 억압하고

그러다보니 나의 억압된 감정은 엉뚱한 시댁에 가서 튀어나오고, 매우 비겁하고 교묘한 방법으로 남편을 응징했다.


타인인 시댁을 교묘하게 조종하여, 남편을 멕이는  매우매우매우 비겁한 방법이자 어쩌면 회피적인 방법이었다.



다른 날도 아니고 아이 방학 때 날 돕지 않고 술자리에 가겠다는 남편에게 나는 나의 노고를 인정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육아를 하는 내 노고를 인정하지 않으니, 저렇게 쉽게 생각하고 육아를 내게 다 떠넘기고 나간다는 말이 나온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대로 나는 남편이 학교땜에 아이 육아를 할때도 학교에서도 내내 맘이 불편해 집에 칼같이 달려오려고 한다. 남편의 육아 노고를 너무나 인정하고 덜어주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 남편에게 괘씸함이 들었다.


또한 나는 타인의 사랑을 느끼는 포인트가 봉사였다.

날 위해 헌신을 할 때면, 봉사를 할 때면 나는 사랑을 느끼곤 했다.

어떠한 선물이나 물질적 공세, 스킨쉽, 애정 표현이 아니라 다른게 다 없어도 그저 날 위해 봉사하는 것을 보면 그렇게 사랑을 느끼곤 했다.

마치 엄마가 날 위해 많은 희생을 하고 봉사(엄마입장에서 양육이 봉사는 아니지만)를 하는 것을 나에 대한 사랑이라 느꼈던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나 역시 타인에 대한 사랑과 존중을 그에 대한 희생과 책임과 봉사로서 표현하곤 했다.

학교를 다니면서도 꼭 내 손으로 저녁을 지어놓고 나오고, 남편이 쉴 수 있도록 자주 독박 육아를 선택하기도 하고, 아이를 혼자 데리고서 시댁에 무리해서 다녀오기도 하는 것과 같이.

그리고 나와 같은 표현을 하지 않는 타인에게 내 사랑을 인정받지 못함, 내 사랑과 같은 사랑이 돌아오지 않음에 대한 분노를 느꼈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이러한 감정을 제대로 느끼지도 못하고, 느낀다더라도 억압하거나 혹은 교묘하게 비겁한 방식으로 남편에게 빅엿을 맥이곤 했다.


그리고 이런 행동 패턴을 알게 되자 남편에게 참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시댁에게 나의 불편감을 전가한 것에 대해서도 미안했고,

가장 미안한건 나의 아이에게 였다.


분명 아이는 이러한 나의 행동 패턴을 계속해서 알게 모르게 관찰했을 것이고, 또 관찰학습된 것은 아이의 행동 패턴을 형성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나의 이런 교묘하고도 비겁하고 또 회피적인 방식이 아이의 행동이 될 것이라 생각하니 굉장히  깨림칙하고 싫었다.


나 또한 엄마의 행동 패턴을 답습하지 않았던가.

엄마는 아빠에게 늘 불만이 많았다. 물론 가장 역할을 제대로 못해내던 아빠 였기에 합리적인 불만이긴 했지만 그것을 교묘하게 나와 동생에게 각인시켜 (물론 엄마는 일부로 그런 행동을 한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을 계산에 두지 않았다. 그저 분풀이 할 곳이 없었고 털어놓을 곳이 없었을 뿐이다. 그 심정은 너무나 이해하지만) 자식들이  아빠에 대해 부정적 감정을 가지고 아빠를 공격하게끔 만들었었다.


그리고 나는 그러한 엄마의 방법을 답습하여 타인에게 부정적 감정을 전가하고 조종하여 타인이 나의 역할을 대신 하게끔 만들었다.

그 타인은 시댁이기도 했고, 때론 아이이기도 했다.



엄마의 방법을 답습한 나는

엄마의 방식대로 나의 욕구를 풀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이 방식은 내 아이가 관찰하고 학습하여 본인의 방법으로 만들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남편에게 불만이 있으면 직접적으로 말을 하자.

싸우지 않고, 직설적이지 않게,

아이 방학때 내가 힘들 것을 알면서도 술 약속을 잡는 것이 나를 생각해 주지 않는 느낌이 들어서 섭섭하긴 하네.

하지만 당신도 휴가를 재미있게 즐기고 싶을 거고, 친구랑 술자리도 그리울 테니 다녀와.

하지만 내가 결코 편한 마음으로 다녀오라 한건 아니야.

당신이 섭섭한 내 맘도 알아줬음 좋겠어.

하고 솔직히 말해볼 수도 있는 것이다.



이렇게 나의 의사소통 패턴을 알고나니

더이상 비겁하게, 교묘하게, 조종적으로 의사소통하는 것을 고쳐야 겠다는 생각이 아주 강하게 든다.


시댁도, 남편도, 나도, 가장 중요한 아이도

우리 모두가 불행해지는 길이었다.


미성숙한 의사소통을 했던 내가 다시금 반성이 된다.

계속해서 자기 분석을 받고, 상담을 하고 있음에도 나는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은 상담사구나 싶다.


그럼에도 이젠 스스로 나의 문제를 자각할 수 있게 되었고, 또 행동을 변화시키려는 시도로 이어진다는 것이 참 대견하기도 하다.


한 아이의 엄마로서, 상담사로서, 그리고 나 스스로에게 더 당당하고 떳떳해질 수 있도록 늘 겸손하게 나를 돌아보고 점검해 나가야지.


나는 나를 믿는다.

몰랐으니까,

나도 모르게 학습되었었으니까,

대물림 받았었으니까,

생존 전략이었으니까

지금껏 모르고서 사용해온

부정적인 방법들을

이젠 건설적이고 또 긍정적인 방법으로

고쳐나갈 수 있는 힘이

내겐 분명 존재한다.


잘 해낼 수 있을 거야 수빈아.

난 결국엔 늘 옳은 것을 향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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