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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빈 Jan 31. 2023

자기 권리 주장


상담공부를 하며 나는 잠시 인자함병에 걸린 적이 있다.

상담사라고 하니 뭐든 다 수용하고 이해하고 받아줘야 할 것만 같은 착각이 들어 자기주장을 하고, 불편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무언가 잘못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었다.


마치 내가 신이라도 된 양,

나는 모든 이들을 품으려 했다.


몇달 전, 붕어빵을 사러 갔었다.

순서대로면 내가 가장 먼저 였지만 주문 갯수가 많으니 뒤에 온 적게 주문한 사람부터 주겠다는 아저씨.

팥은 다 되었지만, 슈크림이 덜 만들어져서 슈크림이 다 될 동안만 뒷 사람 먼저 주겠다고 시간의 차이가 없다는 말에 덜컥 양보를 했다.


그런데 아저씨 말은 개뻥이었고, 슈크림이 다 완성되고서도 아까 먼저 온 손님들에게 줘버린 팥때문에 나는 10분이나 더 기다려 받을 수 있었다.


당시 빡이 쳤지만 인자함 병에 걸려 있던 시절이라 표현하지 않고 꾹꾹 눌러 참으며 돌아왔고, 속에서 한참을 부글부글 끓었다.


이후 한참을 기분이 나빠 그 붕어빵집을 안가다 팔땡이가 오늘 급 먹고 싶다기에 어쩔 수 없이 다시 그 붕어빵을 사러 갔다.


늘 붕어빵 갯수를 많이 사는 나는 또 아저씨에게 양보 제안을 받았고 지난 번 일이 생각나 단칼에 거절을 했다.

아니요 제가 먼저 왔으니 제꺼 먼저 주세요.


아저씨는 약간 당황하며 주절주절 설명을 하려 했고, 나는 지난 번에도 아저씨가 그렇게 말씀하셔서 기다렸는데 너무 오래 기다렸어요. 그러니까 그냥 제 순서대로 받을게요. 제꺼 먼저 주고 다른 사람들 주세요. 라고 말했다.


아저씨와 주변 사람들은 당황해 했지만 결국 내껄 먼저 만들어주셨고, 나는 붕어빵을 들고 홀가분한 맘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옆에서 보고 있던 팔땡이에게 넌 저 상황이었으면 어떻게 했을거냐고 물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양보하기 싫지만 양보했을 거라고. 아저씨 말대로 했을 것 같다고 한다.


그리고 양보하기 싫은데 양보하고나면 어떤 맘이 드냐고 물었더니 마음이 엄청 불편하다고 한다.


양보를 하고서도 불편한 맘이 드니까

차라리 불편한 얘기를 하고서 맘 편해지는게 낫지 않냐며, 양보하기 싫을땐 당당히 자신의 권리를 주장해도 괜찮다고 알려주었다.


잠시 상담사병에 걸려 무조건적으로 인자한척 양보하고 배려하고 수용하는 병에 걸렸었는데

나의 것을 손해보면서까지 하는 수용과 배려는 앞으로 버리려고 한다.


평소 양보만 하는 팔땡이에게 엄마의 당당한 권리 행사와 건강한 자기주장을 보여주면 아이 역시 학습할 수 있지 않을까.


며칠 전, 카레집에서 돈가스를 주문했는데 아줌마가 돈가스카레를 내왔고 오더가 잘못 들어갔음에도 내 잘못이라며 날더러 돈가스카레를 먹으라 했다.

카레집 와서 돈가스라고 하면 당연히 돈가스 카레를 생각한다며.


그럼 메뉴에 왜 돈가스랑 돈가스카레가 나눠져 있는 거냐고 나는 메뉴 그대로 읽었다고 환불을 요구했지만 아줌마는 계속해서 내 탓을 했다.


그때도 나는

아뇨 환불요.

아니요 환불요.

됐고요 환불요.

를 일관하여 결국 환불을 이끌어 냈다.


이런걸 말하기가 불편해서 회피하고 손해보고 원치 않는 양보를 하여 맘 속 불편함이 남을 바에야 불편한 감정 시원하게 싸지르고 홀가분하게 털어내는게 낫지 않나 싶다.


물론,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내가 잘못한 일에 우기는건 안되지 암..

상대가 상식 밖의 사람이라면 적당히 물러날 줄도 알아야 하기도 하고.


나 역시 자발적으로 양보와 배려를 하고 싶은 순간도 많이 있다.

그런 경우에는 충분히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양보를 시전하지만,

붕어빵 아저씨의 낚시질에 손해를 감수하고 양보할 호구는 되고 싶지 않았다.


상담사라는 어떠한 프레임을 씌워

나는 나를 거기에 가두어 버리진 않았나 생각해 본다.


분명 상담사로서 갖춰야할 어느정도의 인격은 존재한다.

그 인격을 내담자가 아닌 모든 대상에게 손해보는 양보로, 배려로 표현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깨달아가는 요즘.


상담사로서 요구되는 모습과

나의 본래 모습 사이에서 매우 혼란했던 지난 수년의 세월을 지나

이제야 균형점을 찾아가고 있는 과정인 것 같다.


나는 본래 나의 당당함과 또 한편으로는 유순하고 부드러운 상담사로서의 모습 둘 다를 가진 나만의 색깔을 가진 상담사가 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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