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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빈 Jan 31. 2023

적당한 경계


나는 똥꼬발랄한 사람이다.
늘 주변이 시끌벅적하고, 호들갑 스럽기도 하고, 강렬한 에너지로 가득차있다.

타인과 만남을 가질 때에 특히 나는 시끌벅적 똥꼬발랄했고, 이러한 나의 부분을 기질적 특성이라 생각했다.

나의 똥꼬발랄함은 사실 아빠를 닮아 있다.
아빠의 그러한 부분은 할머니를 닮아있고.
기질과 성격은 세대를 초월한다더니 할머니로부터 나는 이러한 부분을 이어오고 있다.

할머니가 이사가는 동네에서 할머니는 모든 이들과 친구가 된다.
할머니가 입원이라도 하면 하루만에 그 병원 대부분의 사람들과 친구가 되어 있다.
할머니는 소위 말해 핵인싸셨다.

하지만 시끌벅적한 할머니는 깊은 수준의  관계보다도 피상적 관계를 맺기 바빴다.
그리고 아빠의 대인관계 역시 그러했다.
두분 다 늘 화기애애하고 발랄했다.

웃기지 않은 얘기도 웃으며 하곤 했고,
과장된 웃음과 리액션으로
늘 주변을 시끌벅적하게 만들곤 했다.
(그렇다고 유머러스한지도 모르겠다.
그냥 자기중심적 유머와 웃음이라 치자.)

그런 부분을 나는 닮았다.
별 것 아닌 것도 과한 웃음과 리액션으로 설명하고,
주변은 시끌시끌했다.

늘 밝게 웃고 떠들지만 관계는 매우 피상적이었다.
표면의 나의 감정만 드러내고
표면의 타인의 감정만 다루고
표면적 사건만 다루었다.

감정 속 진심은 숨겨둔 것도 아니고
스스로도 잘 몰랐다.
그렇게 겉만 친한, 겉만 아는 피상적 관계를 이어갔다.

이러한 성격을 학습한 나는
타인과 관계를 맺을 때
조용한 것을 참지 못한다.
어색하다.

조용함이 어색한건지,
조용한 나의 모습이 어색한건지,
조용한 타인이 어색한건지
나는 늘 밝게 타인을 맞고 대했다.

이러한 나의 무조건적인 발랄함은
타인에게 허물없는 경계를 제공하곤 했다.
나에 대한 명확한 경계가 없이 과도하게 가까워졌다.

허물없이 그들을 대하니
그들 역시 날 허물없이 대했다.

솔직한 내게 그들도 솔직해지기도,
농담을 즐기는 내게 그들도 농담을 하기도 했다.

이러한 허물없는 경계는
서로를 불편하게 만들기 딱 좋았다.

금세 서로에게 함부로 대하기 시작하고
금세 서로를 얕잡아 보기도 했다.
나 역시 타인을 막대하고
타인 역시 날 막대했다.
허물없는 너무나 가까운 관계는
서로에게 상처를 입혔다.

심지어 이 가까움 또한 피상적이기까지 했으니
서로에게 겉으로 상처를 줌에도
그 칼날같은 공격의 참뜻을
서로가 몰랐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의 허물없는 타인과의 관계가
경계를 허물어 뜨렸고
타인이 날 막대하게끔,
혹은 떠나게끔, 불편하게끔
만드는 에너지가 내게 있음을.

타인이 날 막 대하는 것에는
타인 뿐 아니라 나의 책임도 존재함을.

며칠전 학창시절 친구들을 만났다.
친구들은 날더러 차분해졌다 한다.
늘 내 얘기하느라, 이야기를 주도해가느라 바쁜 내가 이번엔 친구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친구들 이야기 위주로 말을 하다보니
너무 내 얘기만 했네 너 얘기 못들어줘서 미안해.
라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그리고 나는 이러한 것이
건강한 경계였나보다 하고 느꼈다.

친구들에게 나는 나의 발랄함만을 보이며
피상적 관계를 유지하지도 않았고,
내 속의 차분함도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 차분함 속에서 타인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내 이야기로 주도하며 이끌지 않고
타인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존중했다.
그러한 내게 친구들은 함께 존중의 태도를 보였다.

건강한 경계가 나는 조금 어색하기도 했다.
원래의 나는 허물없이 생각없이 웃고 떠들었어야 하는데
그러하지 않았다.

나의 속에 있는 진지함을 보이기도 하고
차분히 진짜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내 생각에 그것은 틀린 것 같다며 통제를 시도하는 친구에게
내 방식이니 존중해달라는 말을 전하자
친구는 금세 태세를 전환하기도 했다.
나를 지키고 타인을 존중하는 건강한 경계였다.

이러한 건강한 경계가
사실은 타인에게도, 가까운 지인에게도,
심지어 가족에게도 필요한 것이었다.

나는 아이에게도 명확한 경계가 없다.
아이와 허물없는 관계를 유지하며
아이의 감정을 나의 감정처럼 느끼는 동일시를 보이기도,
아이의 영역에 내가 쉬이 침범하기도 했다.
그리고 엄마의 경계가 허물어져 있으니
아이 역시 내게 밀착되어 있기도 한 것 같다.

적당한 경계가 타인과 진정한 존중을 불러온다.
타인의 경계를 함부로 침범하지 않는 내게
타인 역시 내 경계를 함부로 침범하지 않는다.
서로가 상처 주지 않고
서로가 적당히 존중어린 경계를 유지하며
관계를 오래 이어갈 수 있게 된다.

엄마없으면 못살지만 엄마와 함께는 못산다.
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니다.
이것이 적당한 경계를 의미하는 이야기인 것 같다.

친구와 동업하면 안된다는 말도
사실은 경계와 관련있는 이야기인 것 같다.

타인이 날 침범하지 않는 적당한 경계를 지키며
찐마음을 드러낼 수 있는 것.
나의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기 어색하지 않은 경계.(발랄한 모습만 보이던 나는 타인에게 싫은 소리를 해야할 때면 발랄함과 다른 진지한 내 모습을 보이는 것이 어색하고 불편했다.)

적당한 경계로부터 서로의 존중이 나오는 것이 아닐까싶다.

하지만 이 적당한 경계가 나는 아직 조금은 어색하다.
나의 모호한 경계선에 펜스를 세우고,
적당한 위치를 탐색해 가는 과정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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