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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빈 Dec 26. 2020

부모님을 용서하겠습니다.

상담 중기즈음 들어서는 친정에 대한 주제를 많이 다루었다.당시 엄마에게는 안쓰러움과 엄마의 희생에 대한 답답함, 속상함의 감정을 느끼고 있었고 아빠에게는 미움과 혐오, 경멸의 감정이 주를 이뤘다.
상담사는 내가 아빠를 이미지화한 그 개념이 어디서부터 온것인가를 함께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고 어쩌면 내가 아빠를 스스로 개념화 했다기 보다는 엄마를 통한 왜곡된 개념화가 있었던 것 같다는 추측에 다다랐다.
아빠와 엄마는 늘 사이가 안좋았고 부부싸움이 끊이질 않았다. 아빠의 무책임함과 무능력함으로 가정의 실질적 가장을 엄마가 맡아 왔고 그러다보니 엄마는 늘 아빠를 무시하고 하대했다.
다른 가정과 달리 우리 집에서는 엄마의 서열이 가장 높았고 아빠의 서열이 가장 낮았다. 나와 동생은 동경의 대상이었던 엄마의 말과 행동들에 영향을 받아 아빠라는 사람은 엄마가 말하는 그런 한심하고 무책임, 무능력한 사람이라는 정의를 내렸고 나의 판단이 아닌, 엄마의 시선대로 아빠를 이미지화 시켜 버렸다. 그렇게 엄마를 힘들게 만들고 가정에 무책임한, 본인의 취미생활이 우선인 아빠에게 아빠자격도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왔다. (사실 더 심한 표현이 있었지만 순화해서 적어본다.)

상담사는 아빠의 행동이 옳은 행동은 물론 아니었지만 그 시대의 남성상, 그 시대의 아빠들과 비교했을때 가정에 소홀하고 육아에 참여하지 않는 모습은 보편화된 삶이었다고 했다. 당시 엄마가 속상하고 힘들 수는 있었겠지만 "니네 아빠는 무책임한 사람이야." 보다는 "다른 아빠들도 그렇잖아." 식의 표현을 해줬다면 아빠를 향한 나의 개념과 감정이 이렇게까지 격해지지는 않았을 거라고 했다.

심리학 공부를 시작하고서 가정의 불화가 있을때 삼각관계를 쉽게 형성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한 가족 구성원을 배제시키거나 공격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나머지 다른 가족구성원들이 뭉쳐 삼각관계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엄마 역시 아빠와의 갈등 사이에서 나와 동생을 삼각관계로 끌어들여 아빠에게 적대감을 갖게 하였고 공격과 심리적 단절을 형성하게 만들지 않았나 싶다. 엄마는 은연 중 아빠에 대한 적대적인 감정을 계속해서 비추었으며 언어적, 비언어적 메세지를 통해 아빠를 공격했다. 나와 동생 역시 엄마의 행동에 영향을 받아 함께 아빠를 무시했고 엄마의 심리에 따라 아빠를 적대시하게 되었다.
엄마 역시도 그러한 삼각관계의 과정을 알고서 일부러 형성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니, 본인이 삼각관계를 형성한다는 사실 조차도 모르고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아이를 출산하고 남편과 불화가 있을때마다 나도 모르게 아이를 관계에 끌어 들인 적이 있었다. 스스로는 전혀 자각하고 있지 못했지만 남편의 몇번의 지적을 통해 나의 행동을 자각하게 되었고 아차 싶었다. 그렇기에 엄마 역시도 무의식 중에 본인도 모르게 한 행동이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한 원가족 삼각관계는 나에게 왜곡된 남성상을 형성하게 만들었다. 남자란 나보다 하등한 존재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왔고 그저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은연 중 무시를 했다. 지금껏 지나 온 연애스타일만 봐도 남자들 위에서 군림하고 지배하며 제 멋대로 구는 재수없는 여자친구였다.
부모의 관계에서 보고 배워온 것들이 그러한 것들이니 문제의식을 가지지도 않았고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며 살았다. 결혼을 하고서 가족을 이루고 나니 그것이 잘못 된 방법임을, 어쩌면 결혼생활을 파국으로 치닫게 만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뒤늦은 문제의식을 가졌다. 그 후로 아이앞에서 최대한 신랑을 무시하거나 지시하는 말투, 행동을 자제하려 했지만 왜곡된 남성상을 가진 내가 수정하기는 좀처럼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상담사는 어린 시절 아빠에게 받은 상처들을, 아빠에게 진지하게 이야기하고 사과를 받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며 혹여 아빠가 사과를 하지 않는다 해도 이야기를 꺼내어 보는 것이 좋겠다고 했지만 아직은 그럴 용기가 없어 조금 더 지켜보기로 했다.

상담을 진행하며 전반적인 정서가 안정되기 시작했지만 상담중기에 이르니 사춘기때 형성하지 못한 자아정체성의 혼란이 다시 한번 찾아 왔다. 처음엔 문제에 대한 생각으로 시작이 되었는데 생각의 확장에 확장을 더해 '나는 누구인가, 내 삶은 어떤 것인가, 그 답은 어디에 있을까' 와 같은 사춘기때조차 하지 않던 자아정체성의 혼란을 맞이하게 되었다. 32년을 살면서 처음 드는 나 자신과 삶의 본질에 대한 의문에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생각에 지배를 당했다 할 정도로 괴로운 시간이었고 3일간 계속해서 떠오르는 정체감에 대한 생각에 깨질듯한 두통에 시달렸고 고통스럽고 힘든, 우울하기까지 한 시간이었다.
아무런 답도 찾지 못하고 힘겨운 3일차를 보내던 중 더이상 견딜 수가 없어 남편에게 아이를 맡겨놓고 무작정 노트 와 펜 하나를 집어들고 커피숍으로 향했다.
느즈막한 저녁, 손님 하나 없던 조용한 커피숍에 앉아 무작정 글을 써내려가기 시작했고 글의 끝에 다다라서는 나도 모르게 친정 엄마에게 편지를 쓰고 있었다. 엄마가 상처 받을까봐 하지 못했던 말, 충격받을까봐 꺼내지 못한 비밀들, 내가 얼마나 힘들었고 얼마나 비참한 삶을 살아왔는지, 왜 엄마는 아빠에게서 우리를 지키지 못했는지에 대한 원망 등을 쏟아내며 편지에 옮겼다. 그렇게 장문의 편지를 통해 나의 모든 것을 쏟아 붓고 나니 마지막에 가서는 계획에도 없던 엄마를 향한 진심어린 '용서'를 적어 나가고 있었다.
살면서 절대 나의 부모를 이해하지도, 용서하지도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들을 진심으로 사랑하지만 나에게 용서는 또 다른 의미의 것이었다. 하지만 편지를 통해 심리적 정화를 거쳐, 묵은 감정들을 모두 쏟아내고 나니 부모님께 직접적으로 감정을 표현하지 않았음에도 용서는 자연스레 행해지고 있었다.
특히 엄마를 향한 용서는 스스로가 납득할 수 있었지만 이 편지를 통해 며칠 후 아빠에 대한 혐오와 경멸까지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용서를 베풀게 되었다. 아직도 이해할 수가 없다. 어떠한 작용에 의해 그토록 꽁꽁 숨겨진 나의 내면아이가 너그러이 자비를 베풀게 되었는지.

당시에는 상담사가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마지막 종결일에 가서 나에게 말했다.
상담 7~8회기즈음 다루려고 했던 원가족과의 문제들을 나의 경우는 4~5회기에 개인적으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서 가지고 온 케이스였다고,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심각하게 바라보고 해결해 나가려는 의지가 굉장히 강했다고 말이다.

그때 쓴 편지는 엄마에게 전달하지 못했다. 처음엔 전달을 목적으로 썼었지만 편지의 내용이 엄마에게 큰 상처가 될 법한 것들이었기에 고심하다 엄마의 심신을 위해 모두 처분해 버리기로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 엄마를 사랑해. 모든 것을 용서할게...."
라는 글을 끝으로, 내면의 묵은 감정과 함께 그렇게 편지는 흔적도 없이 찢어져 흩어졌다.
그렇게 32년 묵은, 나의 부모를 향한 미움은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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