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수빈 Dec 25. 2020

나는 비행청소년이었습니다.

불행했던 어린시절을 거치고서 나는 사춘기가 되었다. 어린시절 억눌려온 감정은 내면에서 곪고 곪아 사춘기가 되자 겉으로 표출되기 시작했고 이제 더이상 권위에 불복하는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편집증적 성격을 가진 사람들 중 어린 시절 학대경험이나 애착을 제대로 형성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나의 경우도 정신병리 수준의 편집증은 아니지만 신경증적인 과민함을 가진 아이로 성장했다. 가정에서, 부모에게 보호받지 못하고 오히려 날 보호했어야 하는 이들에게 거부적 반응을 겪어 오니 자연스레 내가 나를 보호하기 위한 경계적 태도를 취하게 되었고 세상에 대한 불신, 의심이 증폭되었다.
그때의 나는 반사회적이고 편집증적인 사고와 분노, 공격성으로 똘똘 뭉친 세상 무서울 것 없는 비행청소년이었다.

상담받을 당시만 해도 청소년기 비행의 일화를 이야기하며 "지난 과거가 부끄럽지 않다. 철없을 때의 행동이라 그냥 그러려니 생각한다."고 이야기했었지만 심리학공부를 통해 점차 자아의 성숙이 이루어 지고 나니 지금에 와서야 지난 날의 비행이 수치스럽기도, 후회스럽기도 한 기억이 되어 버렸다.



끼리끼리 논다고 했던가. 중학생이 되어 나는 자연스럽게 비행청소년들과 어울리게 되었다. 당시 어울렸던 친구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대부분이 아동기를 불행하고 불안하게 보낸 친구들이었고 가정에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한, 불안정한 가정의 친구들이 많았다. 그것을 일반화하기는 그렇지만 아동기의 불안정한 가정에서의 경험이 사춘기가 되자 폭발적으로 표출되기 시작했고 신기하게도 비슷한 그룹의 친구들끼리 친해지기 시작했다.

부끄러운 과거인지라 회상과 언급이 불편하여 비행의 흔적을 세세히 그리지는 않겠다. 다만 당시의 감정과 가치관에 초점맞춰 생각해보면 '세상은 나쁜 놈들이 다 해먹고 착하게만 살면 호구가 된다.' 라는 매우 적대적인 생각을 가지고 살았다. 타인을 배려하기는 커녕 전혀 고려할 줄도 몰랐고 나는 나를 보호하기 위해 나만 생각하는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되었다.

초등학생때까지만 해도 부모님의 강박적 예절교육에 초자아(정신구조 중 도덕적측면)가 강해져 지나칠 정도로 도덕적이고 양심적인 아이였기에 지갑을 주우면 근처 경비실이나 어른들께 꼭 가져다 드렸고 길가에 쓰레기 하나 버리지 못하는 아이였다. 이웃의 어른들은 "넌 어느 집 딸인데 그렇게 인사성이 밝니?" 라는 칭찬을 늘 했었고 초등시절 생활기록부를 보면 착하고 바른 아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하지만 도덕적 윤리가 내적으로 동기화 된 상태가 아닌, 엄마가 그렇게 하라니까, 그리 안하면 혼나니까, 타인의 시선과 인정을 바라서 한, 외적동기에 의한 행동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착한(척 하는) 아이였음에도 사춘기가 되면서 내면에 품고 있던 분노가 터지며 착한 호구가 되지 않기 위해 나쁜 행동들을 일삼고 다녔다.
'그냥 여자애가 나쁜 친구들이랑 조금 어울렸나 보네'라고 할 정도의 비행은 아니었다. 부모를 동행하고 검찰청을 들락 거리기도 했을 정도였기에 당시 부모님의 속은 썩어 문드러졌을 것이다.
같이 죽네 마네 통탄하던 엄마, 갑자기 변한 딸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하던 아빠, 문제아를 포기해버린 학교.

그렇게 어마어마한 중학생 시절을 보내고 나서 나는 실업계고등학교를 진학하게 되었다. 당연한 결과였다.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뚜렷한 목적이 없었고 동기가 없으니 시험에서는 늘 3번으로 찍고 숙면을 취했다. 처음엔 시험이 끝나면 교무실에 불려가 시험이 장난이니, 선생이 우습니 하는 선생님의 설교를 들어야 했지만 점차 그런 것들이 반복되면서 학교에서도 포기해버린 문제아가 되어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범법적이거나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일, 무모한 일들도 아무런 죄책감없이, 문제의식없이 행할 수 있었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는다. 당시의 내가 얼마나 미성숙하고 유치했었나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얼마나 아프고 얼마나 슬펐는지,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 안쓰럽기도 하다.
어쩌면 그러한 행동들이 도와달라고, 구해달라고, 사랑해달라고 내 부모에게 외치는 신호였던지도 모르겠다.




발달심리학자 에릭슨의 이론에 따르면 청소년기에 정체감의 혼란이 찾아오고 내가 누구이고, 어떠한 사람이 될 것이며, 사회 속에서 나의 역할이 무엇인지와 같은 개인이 추구하는 가치, 신념, 목표를 형성해 나가게 된다고 한다.
하지만 나의 불안정한 정서상태는 정체감의 혼란을 성숙하게 겪어 나가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었다.
정체감 혼미 상태의 청소년의 경우는 부모로부터 무시되고 거부되어 부모의 바람직한 특성을 내면화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나 역시 성인이 될 때 까지도 정체감의 혼미를 계속해서 해결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아이를 출산하고 양육할때까지 정체감의 혼미는 쭉 이어져 왔고 그것은 우울증, 자존감결여, 문제행동, 무력감 등의 형태로 나타났다.

매거진의 이전글 애착의 대물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