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도 알고 있다.
불행했던 아동기를 거쳤다고는 하지만 그 시절 그러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 적지 않았다는 것을.
행복과 불행이라는 것은 결국 주관적인 해석일 뿐이다. 그렇기에 같은 환경에서도 불행하다 받아들이는 나같은 네거티브가 있는가 하면, 크게 담아놓지 않는 쿨한 파지티브도 있을 것이다.
혹자는 네거티브 역시 불안정애착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냐고 하겠지만 애착이라는 것은 그리 간단하게 정의할 수 있는 단순한 것이 아니다. 불안정애착이 원인이었을지, 비판적 기질을 타고났을런지, 아니면 모든 것의 상호작용이었을지 명확하게 정의할 수는 없다.
내 삶이 시궁창인게, 내 아이를 불행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 '불안정애착'이 원인일 것이라고 단언하며 살았고, 모든 것은 부모탓을 하며 투사했었다.
상담사는 불안정애착이 원인일 수는 있지만, 성인이 된 현재까지도 부모 탓을 하는 것은 굉장히 미성숙한 방법이니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당시엔 상담사의 말이 크게 와닿지 않았지만 상담사의 부드럽지만 날카로운 지적으로, 스스로 인지하게 됨으로서 서서히 부모의 탓에서 벗어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심리학자 아들러는 프로이트의 원인론을 반대하며 목적론을 강조한다. 인간은 원인인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목적을 가지고 삶을 바꿔나갈 수 있는 능동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어떠한 아동기를 겪었던지 그것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갈지, 환경을 원망하며 머물어 있을지는 결국 스스로의 선택이라는 것이다.
결코 동의할 수 없었던 이론이었지만 심리치료를 통해 어릴 적 고통에서 벗어나는 경험을 점진적으로 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받아들여지게 되었고 추후 가치관으로까지 자리잡게 되지 않았나 싶다.
지금은 이해한다. 내 부모도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것을.
부모님의 어린시절 역시 평탄하지 못했다.
아빠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무책임하고 무능력한 할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아빠 역시 절대 그 길을 밟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자랐다고 했지만 결국 무시무시한 대물림이라는 것은 피할 수가 없었다.
엄마는 잘 사는 집의 딸이었지만 가정 폭력을 일삼는 할아버지 밑에서 불안한 아동기를 보냈다. 그렇기에 엄마 역시 왜곡된 남성상을 형성하게 되었고 그것은 엄마에게, 그리고 나에게까지 대물림되었다.
심리치료가 이론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보편적으로 나 자신 뿐 아니라 나의 원가족, 3대까지의 가정환경을 탐색하고 관계도를 그린다. 내가 아는 선에서 부모님의 어린 시절 정보를 제공하게 되었고 그러한 과정에서 대물림의 무서움을 더욱 절실하게 느꼈다.
부모님도 어쩔 수 없었음을, 그들도 결국은 피해자였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먹고 살기 바빴던 그 시절,
아빠는 가정에 도움이 되고자, 잘 해보겠다고 시작했던 사업이었고 투자였다. 멀쩡히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사업을 하겠다고 했을때 다들 이해할 수 없었다. 패배로 이어진 결과를 보고 모두 비난을 쏟아냈지만 아빠 역시 좀 더 잘 살아 보겠다고 가족을 위해 열심히 발로 뛰었던 것이다.
엄마는 그런 아빠의 빈자리를 채우고자, 엄마와 아빠 모두의 역할을 담당하며 과부하가 왔을 것이다. 나는 한 아이의 엄마 역할만으로도 벅차고 힘든데 엄마는 오죽했을지, 얼마나 힘들었을지 지금은 이해한다. 몸이 고되니 늘 짜증과 화가 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아빠의 뒷수습을 20년간 하면서도 가정을 배신하지 않았고 끝까지 책임을 다 했다. 그것만으로도 참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원망하던 내 부모를 이해하고 용서하기까지 참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이제는 그들을 온 마음으로 이해한다.
교수님께서 심리학 관련된 주제로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다. 늘 이해할 수 없었던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한 자식이 성장해서는 부모님께 더욱 효도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한 기억이 난다.
나는 그렇게 불행하게 느꼈던 어린 시절을 겪어 왔음에도 성장해서는 주변에서 효녀가 따로 없다고 할 정도로 부모에게 지극 정성이었다. 일해서 겨우 모은 돈 이천만원을 아빠 치과치료를 위해 주기도 하고, 건강검진도 직접 모시고 다녔다. 해외여행을 보내 드리기도 하며 늘 살갑게 부모를 챙겼다. 결혼 후에도 자주 찾으며 우렁각시처럼 빈집에 집안일을 해주고 오기도 하는 등 심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헌신적이었다. (물론 엄마는 경제적 도움은 일절 거부했었다.)
하지만 늘 아빠에게 잔소리와 무시하는 말투는 숨길 수 없었고 틱틱대면서도 부모에게 최선을 다 하는, 말 그대로 언행불일치였다.
육아에서 실패했다고 느끼는 날이면 한번씩 폭발해 부모님께 어린 시절의 설움을 마구 쏟아 붓기도 했고, 아이에게 왜 화를 내냐는 엄마에게 내가 엄마에게 보고 배운게 그것 뿐인데 어떻게 뭘 더 잘하냐며 가슴에 비수를 꽂기도 했다.
이렇듯 가슴에 쌓인 것은 그렇게 많았지만 계속해서 부모에게 신경을 쓰고 결혼 후에도 원가족에서 벗어나지 못한채 효녀 코스프레를 하고 있었다.
사랑을 충분히 받아 보지 못한 사람은 애정결핍처럼 부모에게 더욱 집착하며 심리적독립을 이루지 못한다고 한다.
부모에게 잘하면 좋은 건 줄 알았다. 한편으로는 부모에게 헌신적인 내 자신이 싫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스스로 대견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서른두살이나 먹고도 내 부모에게서 심리적 독립을 형성하지 못한 상태였던 것이다.
심리적독립과 자아정체감은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고 한다. 추후 나는 심리학공부를 하며 자아정체감을 형성하기 시작했고 부모와의 심리적독립을 경험하게 된다. 매일 같이 전화해서 일상을 공유하던 것이 줄어들고, 모든 결정을 엄마와 함께 했었고 힘든 일이 있으면 엄마를 호출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엄마에게 의지하던 것이 사라졌다.
심리적 독립을 경험하고나니 원가족의 경제상황이나 부모님의 노후를 걱정하던 것이 확연히 줄어 들었고 부모님의 인생은 부모님이, 내 인생은 내가 책임지는 것이라는 생각에 지금껏 짊어지고 있던 부담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자연스럽게 내 아이의 인생은 내 아이의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해주었고, 아이와 지나치게 밀착되어 있었던 관계를 벗어나 유연한 경계를 설정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