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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빈 Jan 25. 2021

부부싸움이 칼로 물베기라 누가 그랬던가.

남편과 나는 연애시절, 심지어 결혼준비를 하면서도 단 한번도 싸우거나 다투어본 적이 없을 정도로 사이가 좋았다. 

하지만 임신을 하고서 '임신성당뇨 주제에 라면을 먹겠다.'는 나의 주장에 시댁에서 처음으로 크게 한번 싸웠고, 시어머님앞에서 눈물까지 흘렸더랬다. 

"니가 뭔데 라면을 못먹게 하니, 라면 그까짓거 때문에 내가 이래야 하니, 내가 먹겠다는데 니가 왜!" 라며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도 머릿속으로는 '누가보면 남편이 외도라도 한 줄 알겠다. 라면때문에 시댁에서 울고불고 싸울 일인가.' 했더랬다. 당시엔 정말 심각한 상황이었으나 타인이 보면 시트콤을 보는 것 같았으리라.


임신중이라 호로몬의 영향도 한몫했을 것이다. 

호로몬은 잘 울지 않는 나도 폭풍눈물을 쏟게 만들었고, 원래도 감정적인 나였지만 임신기간 동안은 정신병이 있는 사람마냥 슬펐다, 우울했다, 속상했다, 화가났다 부정적 감정이 휘몰아 치기 시작했다.

라면을 못먹게 한 남편을 혼내고 내 편을 들어줄 줄 알았던 시어머니는 둘 다 똑같다며 우리보다 더 속상해 하셨고 괜히 팔은 안으로 굽는게 아니라느니 파국화된 사고를 하며 시어머니에게까지 서운함을 느꼈다.


그래도 임신기간엔 거의 싸우지 않았다. 하지만 본격적인 싸움은 출산 이후부터 시작되었다.

원래부터 완벽주의가 있어 모든 것에 기준이 높게 설정되어 있던 나였고, 자신에게 뿐아니라 가까운 타인에게까지 나의 높은 기준을 적용하며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면 비난을 쏟아내기도 했다.

반대로 남편은 거의 모든 욕구가 높은 편이고, 게중에서도 자유욕이 굉장히 높았던지라 (심리상담센터에서 개인 욕구에 관한 검사를 나뿐 아니라 남편까지 과제로 진행했었다.) 내가 자신을 통제하려는, 지나친 간섭에 지칠대로 지쳐가고 있던 상황이었다. 

어떤 때는 어디서 나랑 똑같은 놈 만나 결혼했다싶을 만큼 닮은 구석이 있다가도, 이러한 부분에서는 극과 극의 두 사람이 만나 파국화를 경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맞지 않기도 했다.


하루종일, 밤새 신생아를 케어하느라 심신이 지친 내가 남편에게 퇴근 후 2~3시간만이라도 아이를 맡길라치면 아이를 제대로 케어하지 못하는 남편에게 화가 났다. "지금껏 편안히 회사에 앉아서 컴퓨터나 뚜드리고 왔으면서 이것도 제대로 못하니? 나는 하루종일 막노동보다 더 한 육아노동에 시달리고 있다고!!!"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고 본인의 업무를 '편안한, 쉬운, 힘들 것 하나 없는' 일로 치부해버리는 내게 남편은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화를 내기 시작했다. 

물론 남편의 화는 폭발적인 화가 아니었다. 하지만 소극적 형태의 사람을 무시하거나 경멸의 표정을 짓는 등의 비언어적인 화였고, 나의 화는 말로서, 행동으로서 쏟아내는 비난형의 화였다.

그렇게 둘의 팽팽한 접전은 날이 갈 수록 심해졌고, 심지어 남편의 밥먹는 '꼬라지' 조차도 보고 싶지 않았다. 


난 이렇게 망가져가고, 죽을만큼 힘들어 하고 있는데 총각때나 별반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 괜시리 남편에게 화가 나고 미웠다.

모든 것은 남편의 잘못이라 생각했다.

연애할때 그렇게 스윗했던 남자가, 갑을병정의 을도 아닌, 정의 위치에서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것 같던 남자가 이렇게 변할 줄이야. 사기결혼을 당했니, 소위말해 낚여서 결혼했니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그렇게 육아에 치여 치열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다 문득 뒤돌아 봤을때 남편과 나는 남보다도 못한 '적대적'인 사이가 되어 있었다. 상대의 아무런 의미없는,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도 날이 서서 공격해댔고, 무시하기도, 비난하기도, 투사하기도 하며, 고백컨데 결혼에 대한 후회를 한 적도 있었다.



내가 심리상담센터를 찾았던 이유는 '육아'였지만 감정일기를 매일 쓰며 잦은 남편과의 트러블을 자연스레 상담사와 다루게 되었다. 

사실 남편과의 트러블이 내 인생에 큰 문제는 아니었다. 당시의 나에겐 오직 아이 뿐이었기에 남편이라는 존재 자체가 내게 큰 의미가 없었다. 그저 아이를 키우는데 협력하는 사람 정도의 의미였던 것 같다.


상담과정에서 나는 남편뿐 아니라 필요 이상으로 타인을 통제하려는 시도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불안이 높은 사람의 특징 중 하나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 크게 불안해 한다. 그리고 그러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시도를 하는데 나 역시 그러한 사람 중 하나였다. 

아이를 통제해야 했고, 남편을 통제해야 했다. 


육아에서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었다. 술을 자주 마시는 남편에게 잔뜩 날이 서 있었고 매일같이 술때문에 싸웠다. 다른 것으로 시작되었던 싸움도 결국 기승전술로 끝났다.

평소 술을 마시는 남편이 싫은 이유가 스스로는 남편의 건강이 걱정되어서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나 상담사가 기저의 핵심사고를 파고 들었을때 나는 깨달았다. 이 사람이 술때문에 어떠한 질환을 얻게 될 것이라는 걱정이 아니었다는 것을.


나는 어린 시절 술을 많이 마시는 아빠가 싫었다. 매일 술때문에 싸우는 아빠, 엄마를 보면서 자라왔고 엄마는 그런 아빠를 한심하게 이야기하며 술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갖게 만들었다. 

그러한 가정환경은 술마시는 남자를 하등한 존재로 한심하게 생각하게 만들었고, 늘 술마시는 남자랑은 결혼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왔지만 아빠보다 더 한 남자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


연애 당시 똑똑한 남편이 좋았다. 그 똑똑함이 모든 면에서 나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남자일 것이라고 착각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인지적으로 나보다 똑똑한 사람일지는 몰라도 남편 역시 정서적으로는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수준의 사람이었다.

보통 배우자를 선택할때 자신의 분화수준이나 가정환경 수준이 비슷한 배우자를 선택하게 된다고 하는데 우리 부부 역시 그러했다.

시댁에만 다녀오면 싸웠고, 술만 마시면 싸웠다. 육아가 내 마음에 들지 않아 싸웠고, 남편이 집안일을 돕지 않아 싸워댔다. 



나는 가정환경으로 인한 잘못된 남성상을 가지고 자라왔다. 

늘 아빠보다 우위에 있는 엄마를 보며 자연스레 남자란 여자보다 하등한 존재라 생각하며 자랐다. 

남들은 페미니즘이다 뭐다, 남녀차별에 예민해하지만, 나의 경우는 항상 여자가 남자보다 우위에 있는 존재라는 생각을 가지고 자랐기에 은근한 남녀차별을 겪으며 자란 와중에도 여자로 태어난 것을 후회해본 적이 없었다.

그만큼 여자라는 것에 대한 우월감이 강했고 남자에 대한 무시를 일삼고 살아왔다.


하지만 결혼생활이 시작되고 결혼초반까지 그렇게 잘 맞춰주던 남편 역시 나의 계속된 무시와 비난에 점점 지쳐가고 있었던 것 같다. 조금씩 조금씩 자신을 향한 나의 태도를 습득하듯 나를 대하는 남편의 태도 역시 나와 비슷해져 갔다. 연애시절 숨겨왔던 본인의 본 모습인건지, 나에게서 습득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쨋든 더이상 고분고분하던 예전의 남편이 아니었다. 

남편의 거센 반발이 빗발칠 수록 '어디 감히 남자가 여자하는 말에 토를 달아! 어허!' 하듯 "이것봐라?" 하는 뭐라 형언할 수 없는 분노가 일었다. 한창 유행했던 김숙의 걸크러시 화법처럼, 하지만 농담이 아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무시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절대 해서는 안될 발언이었지만 "오냐오냐해주니까 머리끝까지 기어오르네." 라는 표현도 서슴치 않았다. 상대의 감정따윈 중요치 않았고 당장의 나의 화를 잠재울 무엇이 필요할 뿐이었다.

그러한 무시를 당하고도 참아줄 남자가 어디있겠는가. (남편이 나를 줘패지 않았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하지만 부부관계의 원인이 무조건 나였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남편의 소극적 형태의 공격, 감정적으로 거의 무감각하다 느껴질 정도의 냉랭함 역시 문제가 있었다.



상담 당시 사티어의 의사소통유형 검사를 진행한 적이 있었다.

나의 경우는 비난형의 의사소통을 하고 있었고, 남편은 명백한 초이성형의 의사소통을 구사하고 있었다.

비난형은 말 그대로 타인을 비난하듯 말하는 유형이며, 상황도, 타인도 중요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감정만을 중시하는 화법이다. 남편의 초이성형 의사소통은 타인뿐 아니라 심지어는 자신의 감정조차도 고려하지 않고 상황만을 직시하는 유형이다. 그렇기에 남편은 사회를 판단하는 기준이 지식만이 전부였으며 자신의 감정도, 타인의 감정도 무시해 왔었다.


임신성 당뇨 당시 라면으로 싸운 사건만 해도 그러했다. 

사실 라면을 반만 먹겠다고 하기도 했고, 아무리 임당일지라도 한두번 치팅데이를 가질 수도 있었다. 그렇게 스트레스 받지 않는 선에서 유연한 조절이 필요하다 생각했다. 

하지만 남편은 나의 감정도, 자신의 감정도 중요치 않은, 임신성당뇨에 관한 정확한 '지식'에 의거하여 '절대, 결단코' 당뇨환자는 라면을 먹어서는 안된다는 경직된 사고를 하고 있었다.

거기다 더 기가 막힌 것은 본인이 먹으려고 끓인 라면까지도 내가 먹겠다고 하자 그대로 싱크대에 부어버리는 행동을 했고 나를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아주 끔찍한 행위였다.


산후우울증으로 죽니 사니 할때도 남편은 내 감정에 공감이나 위로를 전하기는 커녕 "우리에게 선택지는 A,B,C가 있고 너는 그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A는 내가 육아휴직을 쓰는 거고, 그에 따른 단점은 승진은 생각할 수 없게 된다. B의 경우는 블라블라블라~" 식의 초이성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당시 나는 어떠한 이성적인 선택지를 바란 것이 아니었다. 어차피 내가 겪어내야 할 문제였고, 나만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 생각했기에 나의 힘듦을 알아주고, 고생했다 토닥여줄 남편이 필요했지만 초이성형의 남편에게서 위로나 공감따위는 결혼생활 내내 지금까지도 단 한번도 받아본 적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렇게 의사소통 유형에 대해 알고, 나와 너를 제대로 알게 되자 남편에 대해 조금씩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초이성형의 사람 역시 그것이 자동반사적으로 나오는 방어기제의 한 종류이고(비난형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임을 알게 되자 남편의 그러한 행동에도 100% 이해는 불가했지만, 이해를 하려 노력하게 되었다.



상담사가 하루는 내게 이러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아무리 부부일지라도, 개인의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다.'

그 얘기를 듣고 뒷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남편의 자유? 단 한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것이었다. 

나 역시 육아로 인해 24시간 아이에게 묶여 자유가 없으니 너 역시 자유를 가지는 것은 불가하다. 그것은 불공평한 일이다. 라는 생각이 은연 중 있기도 했고 자유를 누릴 거면 왜 결혼을 했나하는 생각도 있었다.


모든 인간은 자유의 욕구를 가진다. 그리고 자유가 박탈될때 인간은 가장 불행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육아 역시 자유를 박탈당함에 있어 힘든 것이고, 부모의 지나친 통제로 아이의 자유를 박탈하게 되면 아이 역시 행복을 느끼기가 쉽지 않게 된다.

상담사의 직설적인 지적을 받은 이후로는 남편의 자유에 대해 골몰하게 되었다.

기저의 핵심 사고를 변화시킨 그 한마디로 인해 술을 마시는 남편을 무조건적으로 통제하지 않게 되었고, 육아에 무조건적인 참여를 강요하지 않게 되었다. 남편의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이 있어도 한두번 이야기하고 듣지 않으면 더이상 이야기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정말 필요한, 남편이자 아빠로서의 의무라고 느껴지는 것들은 직접적인 대화보다도 카톡을 통해(상담사는 카톡이 편지의 역할을 한다고 했다.) 좀 더 진솔하고, 공격적이지 않게 대화를 시도해 왔기에 상담 이후 지금까지 큰 싸움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남편에 대한 태도가 달라지자 남편에 대한 감정 역시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저 육아에 협력하는 사람으로 생각했던 남편에게 인생의 동반자, 내게 있어 정말 중요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그러한 변화는 남편을 하나의 개인으로서 존중하게 만들었다.

더이상 나는 남편에게 무시나 경멸, 비난의 언행을 일삼지 않는다. 

가끔 화가 날때도 카톡으로 진지하게 대화를 시도하고, 내 감정을 최대한 솔직하게 표현하려고 애쓰고 있다. 단순히 화를 폭발적으로 분출해내는 것이 아니라, 서운함으로 인한 화인지, 슬픔에 의한 화인지 그러한 부분까지 솔직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사실 부부상담을 통해 부부가 함께 변화할 수 있다면 참 좋을 것이다.

나의 사고가 바뀌었지만 여전히 육아 방식에 대해, 교육방향에 대해,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많이 있고, 불만이 당연히 없을 수는 없다. 남편 역시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남편을 향한 존중과 그에 따른 나의 태도변화로 인해 남편 역시 내게 대하는 태도가 바뀌어 감을 느끼고 있다.

가족상담에서는 모든 가족원을 대상으로 하는 치료도 있지만, 가족원 1명의 개인만으로도 가족원전체의 변화를 유도하기도 한다. '전체성의 원리'라는 하나의 개체가 변화함에 따라 전체가 변화한다는 말처럼 말이다.

나의 변화로 인해 남편은, 아이는, 그리고 우리 가족은 모두 변화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은 톱니바퀴처럼 연결되어 있었고 하나가 돌아가기 시작하자 모든 것이 함께 돌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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