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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빈 Dec 13. 2020

육아우울증, 그렇게 나라는 사람은 죽었다.


현대 사회에서 우울증은 정적 감기라고 불릴 정도로 흔하게, 자주 나타나는 심리적 질병이라고 한다. 그렇기에 육아우울증도 누구나 다 겪는 일이며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고 가볍게 치부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나 역시 실전 육아를 해보기 전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2016년, 나는 그렇게 바라던 딸 아이를 품에 안게 되었다. 아이와 함께 마냥 행복하기만 할 줄 알았던 나의 일상은 육아 시작과 동시에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고, 3년이란 시간동안 나라는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렇게 나라는 사람은 죽었다.


당시엔 아이로 인해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것조차 인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엄마라면 응당 아이를 사랑해야 하거늘, 내가 원해서 낳은 아이인데 아이로 인해 힘들어한다는 것은 대역죄를 저지른 것마냥 절대 그런 감정을 느껴서는 안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나의 심리적 고통을 스스로가 받아들이지 못하니 내면에서 양가적 감정이 나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아이를 출산하고 처음 집에 온 날을 잊지 못한다.

과도한 모성애때문이었을까, 완벽주의적성격때문이었을까.

아이는 세상에 오롯이 부모만을 믿고 태어나는데 그런 아이와 태어나자마자 분리된다는 생각에 남들 다 가는 조리원도 가지 않았고 병원퇴원과 동시에 오롯이 나홀로 육아는 시작되었다.

처음 집에 온 날부터 아이는 새벽 내내 안고 있지 않으면 잠들지 못하고 울어댔고, 나름 직장생활하는 남편을 배려한답시고 남편을 피해 거실에 나와 밤새 홀로 아이를 안고서 울었다. 이런게 육아였다니..

살면서 한번도 맞닥뜨려본적 없는 힘듦이었고 전혀 상상조차 못해본 고통이었다.

왜 먼저 결혼한 친구들은, 친정엄마는 이런게 육아라고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나, 왜 시댁에서는 도와주지도 못하실거면서 아이를 바라신건가, 아이는 남편과 같이 키우는 건데 왜 이 고통을 내가 훨씬 더 많이 짊어져야 하는 것인가, 그 화살은 엉뚱한 타인에게 향했고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나와 아이를 향증오가 폭발할 것만 같았다.

이렇게 매일 밤마다 잠도 못자는 건가, 이런 생활이 언제까지 지속되는 걸까

예측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불안감, 두려움, 부담감은 밤새 나를 짓눌렀고 산후회복은 커녕 '군대에 가도 잠은 재워 주는데 나는 군대보다 더한 곳에 발을 내딛었구나.' 라는 생각으로 밤새 불꺼진 거실에서 혼자 꾸역꾸역 울음을 삼켰다.


아이를 키우면서 백일까지는 정말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던것 같다.

모든 신생아가 힘들겠지만 하필이면 기질까지 까다로운 아이였다.

매일 남편을 붙잡고 뛰어내리고 싶니, 죽어버리고 싶니, 이렇게 살다간 암에 걸려서 죽어 버리겠니, 하며 울었다. 처음 이 이야기를 꺼냈을때 남편은 민감한 반응을 보여줬지만, 신세한탄이 계속될 수록 남편 역시도 지쳐가고 둔감해져 가고 있었다. 어쩔땐 이런 나에게 무심하게, 지독하게 상처를 더하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심리학자 머슬로우의 욕구위계설에서는 인간의 욕구를 5단계로 나누고 있다.

가장 하위욕구인 1단계 생존의 욕구가 해결이 되어야 2단계 안전의 욕구, 3단계 애정과 소속의 욕구, 4단계 자기존중의 욕구, 5단계 자아실현의 욕구로 점진적 단계를 밟고 올라갈 수 있다고 한다.

현대화 사회에서 인간은 먹고 자고 사랑하는 등의 기본적 욕구를 웬만해서는 다 해결하고 있고 나 역시 살면서 생존의 욕구가 위협받아본 적은 단 한번도 없었기에 육아를 하며 생존욕구가 위협받는 순간이 올 것이라고 상상조차 못했었다.

나의 모든 것은 갓 태어난 아이의 욕구에 맞춰야 했으며 제대로 자지도, 먹지도, 심지어 싸는 것도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다. 용변이라도 보러가면 에엥 울어대는 아기, 그것도 세상이 무너져 내린 것처럼 숨넘어 갈 듯 우는 아기를 두고서 배변조차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었고, 밤새도록 안아주지 않으면 울어대는 통에 잠 한숨 못자고 아이를 안아들고 밤을 꼬박 지새웠으며, 밥할 시간도 없어 라면이라도 먹을라치면 엥 우는 통에 달래고 오면 금세 다 불어터져 먹을 수 없게 되었다.

그렇게 먹지도, 자지도, 싸지도 못하는 생활을 반복하며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동안 내 몸은 서서히 망가져가고 있었고 갑상선기능항진증이라는, 평생 약을 먹으며 관리해야하는 질병까지 얻게 되었다.

그때의 나는 머슬로우의 말마따나 당장의 '생존'이 가장 시급한 문제였다.


그렇게 극심한 육아우울증으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아이가 백일즈음 상담센터를 처음으로 찾게 되었다.

살기 위해, 정말 살아남기 위해 찾아간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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