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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빈 May 02. 2022

그래서? 이제 가난으로부터 자유로워졌냐고?

이전의 나는 종종 부의 기준으로 사람을 나누곤 했다.
가난했으면서.
내가 바로 그 하위층 집단에 속하는 서민이었으면서.
내가 바로 공장의 가장 하위계층에 있는 현장직이었으면서.
내 엄마가 바로 공장의 가장 하위계층에 있는 현장직이면서.
그러면서도 여전히 나는 사람을 부와 빈으로 구분하고,
직업을 귀와 천으로 구분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것이 나의 기저의 열등감을 그대로 보여주는 생각이었던것 같다.


남편과 연애시절 남편의 그런 마인드가 너무 좋았다.
내가 공장 현장직에서 일했다는 사실에도 아무렇지 않았다.
내가 어디 지잡대를 졸업했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아무렇지 않아했다.
정작 본인은 인서울에 석사졸업까지하고, 대기업 연구원으로 있으면서도 말이다.
사람을 깔보지 않았다.
사람의 급을 나누지 않았다.

오히려 한번씩 현장직 사람들은 정년까지 보장되기에
그들이 부럽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대부분 연구원의 수명은 정년까지 보장되지 않는다.)

남편의 동생이 형이 '잘'된 것에 대해 뿌듯해 할때면
본인이 만족하는 삶을 사는 것과, 잘된 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며
본인의 삶에 만족하고는 있지만, 결코 본인이 잘나지 않았음을.
세상엔 본인보다 훨씬 잘난 사람들이 많음을 이야기하며
겸손 또 겸손하곤 했다.

남편에게 한번은 내가 결혼전 어떤 일을 했든 상관이 없냐,
나이트에서 무대에서 춤추던 여자였다고 해도 괜찮냐
라는 질문을 던졌는데
직업에 귀천이 어디있냐는 현자와 같은 말을 하며
우문현답을 하기도 했다.


나는 상담공부를 하며 나 역시 사람에 대해 성급한 판단을 내려놓겠다,
특히 부와 빈으로 사람의 급을 나누지 않겠다 다짐을 했다.

그리고 얼마전 남편과 함께 TV를 보며 나는 또 한번 나의 어리석음에 부딪혔다.
데이트 프로그램이었는데, 거기 출연한 남자 한분이 환경미화원이셨다.
그리고 나는 남편에게 웃으며
"다른 사람들 다 스펙좋은데 저 사람 혼자 환경미화원이다."
라는 무시하는 발언을 은연중에 나도 모르게 던졌다.

남편은 무심하게
"환경미화원이 어때서? 얼마나 안정적인 직업인데."
라는 대답을 했고,
순간 또 한번 나는 부와 빈의 열등감에서 벗어나지 못했구나.
여전히 어리석은 생각을 하고, 사람을 판단하는 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상담공부를 할때면 늘 강조 또 강조되는 것이 있다.
결코 내담자에게 나의 잣대로, 나의 기준으로 판단하지 말고
내담자에 대한 어떠한 편견도, 선입견도 갖지 않아야 한다.
내담자의 경제적 지위, 외적인 모습, 학벌, 문화, 성적 지향, 과거 등
모든것에 있어서 상담사는 결코 그 사람에 대해 어떠한 선입견도 가져서는 안되며
판단없이 개방적으로 이해하고 수용해야 한다.

정말 기본 중에 기본이며
상담사로서 꼭 지켜져야 하는 부분이지만
여전히 나는 나의 기저에 가득한 열등감때문에
사람을 볼때 경제적 지위, 사회적 위치, 재산을 보고서
사람의 급을 나누는, 무의식 중에 그러한 선입견이 깔려 있었다.

처음 보는 낯선 이를 만날때, 사람들은 예측되지 않는 낯선 이에 대해 불안이 자연스레 올라온다.
그리고 그 불안을 낮추기 위한, 그리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로서
빠르게 나의 과거 경험에 빚대어 그 사람을 판단하여 바라보게 된다.

가난했던 아동기 시절의 설움때문일까,
내 부모의 사회적 지위가 낮았던 것에 대한 한일까,
그리고 부모의 사회적 위치가 나의 위치가 되어버리는 것을
어렸을때부터 경험해 왔던 탓일까.
나는 사람을 마주할때면 그 사람에 대한 경제적 지위, 사회적 위치를
빠르게 파악하고 급을 나누어 버리곤 했다.

나조차도 빈곤했으면서 말이다.
참 아이러니하다.

초등학교 다닐때 대형평수 아파트에 사는 아이의 엄마가
당시 그 동네에서 가장 작은 평수에 살고 있던 나와 놀지 못하게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너무 어렸기에 당시엔 그 말의 의미조차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 어린 나이에도 어렴풋이 느껴졌다.
나는 저 아이보다 '낮은' 위치에 있구나.
내 부모는 저 아이의 부모보다 '낮은' 위치에 있구나.

초등학교에서 준비물로 화분을 가지고 오라고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내 화분은 가장 뒤에 찌그러져 있었다.
그 화분과 마찬가지로 나는 반에서 제일 뒤에 찌그러져 앉아 있었다.
다른 부모는 다 촌지를 가지고 오는데
우리 부모만 촌지를 가지고 오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당시 맞벌이였던 엄마를 대신해 큰엄마가 부모참여수업에 오게 되었고
큰엄마를 통해 그 사실을 알게 된 엄마는
당장 학교에 찾아가 촌지를 전달했다.
그리고 내 화분은 가장 앞으로 나오게 되었고,
내 자리는 가장 앞자리로 당겨지게 되었다.

이런 일들을 당해오며 억울하고 속상했지만
그 어린 마음에 인간은 재산으로, 사회적 위치로, 경제적 지위로
급이 나누어지고 그것은 진리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던것 같다.


지금껏 상담공부를 하면서 깨달은게 한가지가 있다.
모든 인간은 거기서 거기다. 똑.같.다
돈 많은 놈이나, 없는 놈이나,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은 놈이나, 낮은 놈이나,
학벌 좋은 놈이나, 나쁜 놈이나
본질은 똑같다.
그리고 누구나 세상에 단 하나뿐인 존재이고
그것만으로도 그 사람은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교수님께서는 늘 그것을 마음속에 새겨주셨다.
본인 역시 그러한 삶을 실천하고 계셨고
학생들에게 어떠한 본인의 잣대를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았고
직업의 귀천이나, 경제적 지위와 상관없이,
선입견없이 모든 이들을 평등하게 대했다.
본인이 서울대에서 박사까지 졸업한 유능한 교수였음에도
교수라는 직위는 그저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고
그러한 교수님을 보며 정말 큰 감명을 받았었다.

그렇게 깨달음을 얻었으면서도
가끔씩 종종 나는 아직도 나도 모르게 자동적으로 무의식중에 사람을 판단하는
못된 버릇이 나오곤 한다.

남편과 TV를 보면서 나는 확 얼굴이 달아올랐다.
환경미화원이라고 그를 무시한 내가 너무나 부끄러웠다.
오히려 한심하고 못난 사람은 나였다.

난 그렇게 1시간의 TV 프로그램이 끝날 동안
그 분을 찬찬히 들여다 보았고
정말 성실하고, 순수하고, 맑은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나 따위가 선입견을 가지고 평가할 사람이 아니었다.


나 역시 공장을 다녔고, 지방대를 다녔고, 외국인 노동자였지만
나의 삶의 과정을 돌아본다면 그 누구도 함부로 무시하지 못할 경험이었다.
결코 결과만 봐서는 그 사람을 판단할 수 없다.
결코 겉모습만 봐서는 그 사람을 평가할 수 없다.
그리고 나는 이걸 얼마전에야 깨닫게 되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이루어 놓은 결과만을 보고
지금껏 이루어놓은것 하나 없는 한심한 사람이라
스스로도 평가해왔으니 말이다.
그리고 얼마전 깨달은 나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꽃을 피운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부끄러웠던 과거는 이제 떳떳한 과거가 되어 있었다.
힘들고 고통스러웠지만, 지금의 나를 만든 소중한 경험이었다.

분명 모든 이들이 타인이 알지 못하는 자신만의 스토리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개인의 특성이 거만함으로 표현되는 사람도,
복종적이게 표현되는 사람도,
오버스럽게 과장되거나 혹은 지나칠 정도로 소극적이게 표현되는 사람도,
모두들 자신이 겪어온 경험을 토대로,
살아남기 위해,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키워낸 특성일 것이다.

부적응적인 겉면만 보고서 그 사람을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된다.
재산과 직업만 보고서 사람을 함부로 평가해서는 안된다.
분명 내가 알지 못하는 그 사람만의 과거와 경험이 있을텐데
나는 지금껏 그저 보이는 스펙만으로 사람을 판단했다.

나는 이제서야 조금은 가난에서 자유로워진것 같다.
가난이 결코 그 사람을 대변할 수 없음을.
직업이 결코 그 사람을 대변할 수 없음을.
학벌이, 그리고 집안이, 재산이 그 사람을 대변할 수 없음을
진실로 깨달았으니까.

사람에 급을 나누는 것은 의미없는 일이다.
계급에 상관없이 모든 인간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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