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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빈 Jul 09. 2022

스피드가 생명


난 빠른 사람이다.
그것이 행동이든, 말이든, 판단이든, 생각이든, 결정이든, 계획이든.
무엇이 되었든 매우 빠른 사람이다.

늘 빠르다는 피드백을 많이 받곤 한다.
조금 나쁘게 말하자면 성미가 급하다는 얘기도 많이 듣곤 한다.

나도 잘 알고 있다.
너무나 빠르기에 평소 주변 지인들과 속도감의 차이로 인해 종종 답답함을 느끼곤 한다.
그들도 말은 안하지만 지나치게 빠른 내 행동들에 왜 저렇게까지.. 라는 생각이나 혹은 함께 빠르게 치고 나가야 한다는 부담감, 압박감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특히 심사숙고하는 기질인 남편이 말을 할때면 내 속은 천불이 난다.
게다가 속으로 생각하지도 않는다.
생각도 어찌나 빠른지, 뇌를 거쳐서 입으로 쏟아져 나오는게 맞긴 한건지...
복장이 터지는 순간 입으로 그러한 느낌을 곧바로 표출해내곤 한다.

"그래서 뭐? 결론이 뭔데? 빨리 얘기 좀 해봐 빨리빨리. 아 답답해."
그러면 남편은 빈정이 상해 말을 멈추곤 했다.


아이에게는 또 오죽하겠는가.
시간강박이 있어 늘 아이에게 빨리빨리라는 말을 달고 살고, 답답함을 잘 참지 못해 잔소리를 쏟아내고, 내가 대신 나서서 신속히 해결하려 하고, 아이를 재촉하고 닥달한다.

식사시간엔 모래시계를 올려두고 아이에게 시간을 계속해서 눈으로 확인하게 하고, 등원준비할땐 시간을 계속적으로 이야기한다.

평소 말버릇처럼 내게 붙은 말이 빨리빨리였다.
빨리해 빨리
빨리빨리!! 빨리!!!!!

그렇게 너무 빠르기에 놓치는 것들이 종종 있었고, 자주 놓치고 빼먹는 것들 때문에 나는 계획적이고 체계적인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빼먹는 실수를 줄이고자 메모를 철저히 하기 시작했고, 빠른 사고의 전환으로, 잠시 기억해두어야 하는 것들이라도 금세 잊고 빼먹으니, 다이어리에 꼭 기록해두는 습관이 생겼다.

학교에서 오프모임을 추진할때였다.
동기들에게 모일 수 있는 날짜를 투표하려는데 시간을 빼먹고 날짜만 올려 오전, 오후의 혼선을 만들어 버리기도 하고
학교에서 상담사가 되기 위한 수련 조건을 채워야 하는데, 그것을 동기들과 말하다보니 학회 홈페이지에 너무나 잘 설명되어 있는 내용을 제대로 읽지 않고 중요한 글만 읽으며 점프점프 하며 놓친 부분이 태반이었다.
굉장히 빠르게 읽으나, 놓치고 빼먹고 실수하는 구멍이 있었다.

mbti에서도 속도감에서 가장 빠른 estj가, tci기질 성격 검사에서도 빠름이 생명인 자극추구가 높고 위험회피가 낮은 기질이 나왔다.

늘 나의 빠름이 이해가지 않았다.
성인이 된 후 성급한 행동과, 그로 인해 놓치는 부분들, 그리고 충동적인 행동들이 꼭 adhd처럼 느껴져 정신과에 가서 adhd검사까지 진행한 적이 있었디만 결론은 adhd가 아니었다.

그리고 얼마전 해본 심리검사들을 통해 아 기질부터 나는 이미 속도감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구나 하고 알게 됐다.

어제 저녁 아이의 목욕시간이었다.
목욕을 해야하니 아이에게 옷을 벗으라 요구했고, 아이는 티셔츠를 벗고 색종이를 만지고, 바지를 벗고 리코더를 불고, 팬티를 벗고 큐브를 만진다.
물론 그 시간이 길진 않았다.
짧게 짧게 이것도 저것도 만져보았지만 옆에서 그걸 지켜보는 나는 속에서 천불이 났다.
'옷 벗는거에 집중해. 다른짓 좀 하지마. 빨리빨리 벗어. 나 기다리고 있잖아!!!' 라고 말하고 싶은걸 목구녕에서 꿀꺽 삼키며 참아냈다.

나는 무엇 하나에 꽂히면 그것을 빠르게 처리해 내야 한다. 결정장애가 있는 사람들도 많은데 나는 고민하며 딜레이 되는 시간을 견디지 못한다.
무엇이 더 좋을지 고민하는 시간에 그냥 빠르게 결정하고 그것이 상대적으로 조금 손해보는 선택지일지라도 빠르게 결정하고 빠르게 해결보는 것을 선호하는 성격이다.

사실 대학원도 그러했다.
가고 싶은 대학원이 있었지만 떨어졌고, 조금 더 준비해서 재지원하면 붙을것 같은 느낌이 있었지만 기다리지 않았다.
차선책의 대학원을 선택했고 (2순위로 가고 싶던 곳이었다.) 그냥 빠르게 공부하고 빠르게 졸업해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기질적으로 굉장히 빠르다보니 나는 생각도 심사숙고 하지 않고 빠르게 판단하고 빠르게 결정하여 빠르게 언어나 행동으로 표현해낸다.
물론 장점도 굉장히 많다.

무슨 일이든 효율적으로 빠르게 처리해내고,
그만큼 시간적인 여유가 생기니 같은 24시간이 주어져도 그 시간 내에 타인보다 할 수 있는 일이 상대적으로 더 많다.

빠른 결정을 요구하는 일에서는 빠르게 결정하고 빠르게 나아가니 추진력있다는 얘기를 듣기도, 주최자의 역할도 많이 맡는다.

하지만 그만큼 구멍이 존재하기도 하고 놓치는 부분도 존재한다.
그리고 그 놓치는 부분이라함은 자, 타의 감정이지 않나 싶다.

빠른 일처리를 우선으로 하는 기질이다보니 빠르게 갈 수 있는 최적의 경로만을 탐색하는 네비게이션과 같다.
가장 빠른 길을 설정해둔 네비게이션은 평탄한 길을 두고서 길이 험하든, 비용을 더 지불하든 다른 조건은 무시하고 가장 빠른 길을 탐색한다.

나 역시 빠른 길을 설정해둔것처럼 일하는 과정에서의 보람을 놓치고, 성취지향적, 결과지향적이 되기도 하고, 결과를 향해 가는 동안에 느낄 타인의 감정, 심지어는 나의 감정까지도 놓치곤 한다.

주변에서는 마치 AI같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감정이 없는 로봇처럼 가장 신속한 방법을 탐색하고, 업무에 방해가 될 것 같으면 나의 감정도, 타인의 감정도 차단한체 업무의 마감을 향해 빠르게 달려나간다.

육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유치원 등원시간을 향해 아이와 나의 감정은 배제하고 그것에만 꽂혀 빠름빠름빠름을 강조한다. 아이가 나의 빠름의 경로에서 이탈하는 것을 두고 보지 못한다.
조금이라도 내가 설정해둔 빠른 경로에서 이탈하면 경고음이 에엥 울리며 감정에 심한 동요가 일어난다.
그리고 빠른 특성상 이 역시 참지 못하고 빠르게 아이에게 경고가 날아간다.
"지금 니 우선순위가 뭐야?! 등원할땐 밥, 양치, 세수, 옷입기가 우선순위야!! 여기 집중해! 다른건 그만!!!!!"
아이는 경로가 이탈했다가도 엄마의 잔소리에 후다닥 자리로 돌아온다.

목표를 향한 스피드를 위해 나는 나도, 주변도 과도한 통제를 시전한다.
그것이 바로 시간 강박이었다.

내가 설정해둔 네비에 내 속도대로 따라가는게 나 역시도 종종 버거울때가 있는데, 타인은, 심지어 아직 어린 아이는 얼마나 숨막히고 조급할까 싶었다.


이전엔 이렇게 성급하고 충동적이고 생각없이 내뱉고 빠른 내가 이해가지 않았다.
그냥 다 내 잘못같고 다 문제인것 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각종 검사들을 통해 내 기질이 그러함을 수용하게 됐고, 빠르다는 것의 장점도 분명 존재하기에 수용하면서도, 타인이나 아이를 나의 속도에 맞추려는 것을 경계하면 빠름병이 발동할때면 마음으로 조절하고 있다.

오늘 아침, 아이는 내 눈치를 보며 다급하게 색종이와 큐브를 가방에 빠른 손놀림으로 챙겨넣고 있었다.
이전, 등원시간에 시간 남아돌땐 느긋하게 있다가 꼭 나가려 할때 그걸 챙겨넣는 아이가 내가 설정한 경로에 이탈하는 행위였고, 내가 예상한 도착 시간에 변화를 가져오는 행위였기에 용납하지 못했다.
늘 강한 경고음(잔소리:경로를 이탈하였습니다.)을 날려댔고, 그러한 경험이 누적된 아이는 내 눈치를 보며 빠르게 가방에 물건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기질을 제대로 들여다보게 된 나는 맘속으로 조급함이 또 한번 올라왔지만, 스스로 릴렉스를 외치며 "괜찮아. 천천히 준비하자. 서두르지 않아도 돼." 라며 아이에게 조금은 여유를 허용했다.

이래서 자신을 제대로 들여다 보는 것이 필요하구나 싶다.
내가 나를 알고 나를 이해하고 나니
내 행동의 강점도, 약점도, 장점도, 단점도 알게 되었고, 또 이것을 어떻게 조절해야할지 방향도 생기기 시작한다.

기질은 변화시키기 더럽게 힘들지만,
상황에 따라 그것을 조절할 줄도 알아야 하니까.
아이를 위해, 타인을 위해, 나를 위해서도 남들의 속도에도 맞추며 나아가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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