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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빈 Aug 14. 2022

모찌

나는 모찌를 좋아했다.
강아지를 좋아했다.

모찌와 함께 있으면 유일하게 내 감정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모찌를 상당히 존중했다.
상담사는 내게 말했다.
모찌 이야기가 나오면 나는 강아지를 향한 존중어린 말투를 보인다고.
노인에게 어르신이라 존중어린 명칭을 부여하듯, 늙은 모찌에게 노견이라는 다소 존중어린 표현이 인상적이라고.

나는 모찌가 좋았다.
너무나 소중했다.

모찌와 함께 하며 살면서 처음으로
무조건적인 존중과 수용을 경험했다.
인간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무조건적 존중이었다.

나 역시 모찌를 무조건적으로 존중하고 수용하고 공감했고,
모찌 역시 내게 무조건적인 사랑과 충성을 내비추었다.

그리고 돌아보니 모찌가 좋았던 이유를 알 것 같다.
모찌는 내게 안전한 장소이자 대상이었다.

감정을 꺼내어 보이는 것을
굉장히 위협적이고 불안하게 느끼는 내가,
모찌에게 내비출때만큼은
그것이 불안하지 않았다.
무조건적으로 나를 사랑하고 신뢰하는 그 아이에게
나는 무한한 사랑을 느꼈다.

내 사랑을 표현할때면,
내 슬픔을 표현할때면,
묵묵히 함께 하고 있는 그 아이에게서
안전함을 느꼈다.

그러다보니 모찌와 함께 하는 동안은
살아 있는 느낌이 들었다.

차갑게 얼어붙어 있던 감정이
모찌와 있을때만큼은 눈녹듯 녹아
바알간 선홍의 고운 색을 드러내고는
팔딱팔딱 뛰었다.

그것이 긍정적인 기분이든, 부정적인 기분이든.
그냥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여전히 왜 그렇게 모찌를 애지중지하는지
이제야 알겠다.
유일하게 내가 안전하게 느끼는 대상이자 장소였다.
내 감정을 내비쳐도 위협받지 않고, 불안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어도 좋을 아이였다.

내가 모찌를 키운다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모찌를 통해 얻은 것이 훨씬 많았다.


그리고 모찌를 통해서 느꼈다.
상담사가, 그리고 엄마가 해야 하는 일은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것이 아님을.
그저 묵묵히 그들과 함께 있어 주는 것임을.
그들의 감정이 안전한 나의 품에서 살아 숨쉴 수 있도록.
온전히 느끼고 경험하고 돌아볼 수 있도록.

내가 해야 하는 단 하나의 일이라면
모찌와 같은 안전하고 또 신뢰로운 존재로서 든든하게 버티고 있을 품을 내어주는 것이구나 하고.


감정을 느끼기가 힘든 내가,
언제 감정을 오롯이 느껴봤는지를
생각해보니 모찌가 떠올라 두서없이 적게 되었다.

모찌는 내게 반려동물 그 이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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