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난 참 편안한 상태에 이르렀다.
나의 모순적인 모습과 모순적인 감정과 모순적인 상황들을 통합하지 못해 가운데서 혼란을 경험해오다 이제서야 그 모순의 중간지점에서 이것도 저것도 다 내 모습임을 편안하게 받아들이게 된 것 같다.
상담공부를 시작하면서 참 많이도 부자연스럽고 딱딱해졌었다. 상담사에게 요구되는 인격적 성숙함에서 너무나 거리가 먼듯한 내 모습에 그것이 오답인것처럼 느껴졌고,
인격적 성숙은 여러가지 형태로 나타날 수 있음에도 단일한 형태로, 그것만이 정답인것처럼 나는 해석하고 그것을 추구하고자 한 것 같다.
사람들을 대할 때 혹여나 말 실수를 하지나 않을까, 미성숙한 모습을 보이진 않을까 노심초사하게 되고 대화를 할 때 머릿속으로 수많은 걱정이 우선적으로 앞섰다.
이렇게 말해도 되는걸까? 이렇게 이야기했을때 상대방은 상처 받지 않을까?
고민하며 단어 하나에도 신중을 가하다보니 대화는 굉장히 부자연스럽고 또 버퍼링에 걸린듯 버벅대기도 했다.
꼭 성숙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나의 충동적인 면, 지나치게 활발하고 적극적인 면, 때론 촐랑대고, 또 피상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면
모든 것들이 오답이라 생각했고 그것과 반대되는 행동을 하려 포커스가 맞춰지다보니 나의 기질과는 반대되는 무엇을 행하는 것이 굉장히 어색하고 또 그것을 억누르다보니 무언가 갑갑한 삶을 살아왔던것 같다.
지금에서야 나는 내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한다.
똥꼬발랄한 내 모습이 유치해보일지라도, 솔직한 내 모습이 때론 부담스러워 보일지라도, 종종 충동적인 내가 생각없어 보일지라도 그것은 모두 나 이고, 나의 기질임을 인정하고 수용하게 되었다 .
TCI 기질검사로 무언가 수용을 인정하게 된 계기가 된것 같다. 이 전엔 이 것이 나의 기질에서 오는 모습인지, 성격에서 오는 모습인지 알지 못해 성격이라면 개척해나가리라! 바꾸자! 변하자! 무식하게 댐벼들었다면 지금은 나의 기질이었구나, 기질은 변화가 쉽지 않은 법.
이라는 생각으로 그것을 받아들이게 된 것 같다.
나는 기질적으로 자극을 추구하고, 또 장난기가 많고, 충동적이기도 하고
그러한 모습들이 나타난다고 한다 .
그래서 이젠 더이상 내 모습을 부정하고
성숙한 성인군자와 같은 모습의 상담사가 되는 것은 하지 않기로 했다.
밝고 명랑한 상담사도 성숙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상담사도 청소년이나 사회 초년생 내담자에게, 혹은 그러한 성향을 바라는 내담자에게 좋은 자극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코로나로 멈추어버린 인간관계를 다시금 재가동하면서, 또 새로운 인맥을 구축해가면서 요즘 절실히 느끼고 있다.
무엇이 관계에 있어 나의 강점이 되는지.
세상 밝고 서스름없이 다가가는 친화력과 또 타인에 대한 높은 민감성으로 나는 사람들과 쉽게 융화되고 또 받아들여진다.
타인 역시 내게 쉽게 받아들여진다는 느낌을 가지고, 지나친 내향성으로 관계의 초반에 철벽인 사람들도, 다른 문화권이라 조금은 폐쇄적인 입장의 사람들에게도 금세 스며들어 관계를 구축한다.
그들 역시 개방적인 내게 경계를 빠르게 허물고 타인에게 먼저 다가가기 힘들어 할 것 같은 성향의 사람들이 먼저 번호를 물어주기도 하고, 또 먼저 커피 한잔을 제안하기도 하는 등의 호의를 보이기도 한다.
사람들은 적극적이고 밝고 높은 사회적 민감성을 가진 내게 긍정적인 인상을 받고 있는 듯 했다.
물론 겉으로만 친한 피상적인 관계를 유지하던 나였고 이것 역시 기질의 일부였음을 깨달았지만 요즘 정서를 표현하기 위해 어떠한 감정이 들었을때 입 밖으로 내뱉는 연습을 하다보니 조금은 더 관계가 단단해져감을 경험하고 있다.
만나지 못해 너무 아쉬워
함께해서 너무 좋았어
함부로 말한것 같아서 미안해
커피 넘 고마워
다음 만남도 너무 기대된다
예전이었으면 이런 감정들이 들었어도
어색함에, 불편함에 표현하지 않던 감정들을
카톡으로, sns로나마 표현하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나와 더 친해진 느낌이 든다는 피드백을 주곤 했다.
무엇이 나의 강점이고 또 무엇이 약점이 되는지를 명확히 알고 또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노력할 것은 또 노력을 하다보니 조금씩 내 모습이 자연스러워진다.
때론 상대에게 너무나 좋은 감정과 함께 또 부담스러운 감정이 들 때에도,
그 사람이 좋기도 하면서 불편한 감정이 들 때에도 그런 감정이 드는 나를, 모순적인 언행을 하기도 하는 나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게 됐다.
그럴 수 있지.
때론 미성숙한 행동들이 나올때면 실수임을 인정하고, 진심어린 사과를 전하기도 한다.
인간은 신이 아니기에 실수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므로 실수에 사로잡히지 않고 반성하고 훌훌 털어내기도 하고 나의 미성숙함 역시 받아들이게 되었다.
요즘 나는 로저스가 말한 현실적 자아와 이상적 자아의 통합이 이루어진 느낌이다.
이상적 자아는 너무나 높은데, 현실적 자아는 여전히 미성숙 했다.
그리고 높은 이상을 추구하다보니 자꾸만 부자연스러운 모습이 나타났다.
신이 아님에도 신과 같이 되기를 원했다.
실수하지 않아야 하고, 완벽해야만 하고, 순결해야만 했다.
하지만 현실적 자아는 마냥 순결하지 못했고, 실수 투성이에 완벽하지 못했다.
인간이니까.
당연한 이치였다.
그럼에도 그러하지 못한 날 탓하고 계속해서 헛된 허구의 목표를 좇았다.
그리고 이제는 알겠다.
나의 미성숙한 모습마저 받아들이는 것이
진정한 내가 되는 길임을.
요즘처럼 인간관계도, 나와의 관계도, 딸과의 관계도, 편할때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