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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빈 Oct 03. 2022

공감


나는 내가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이라는걸 상담 이전까진 알지 못했다.
내 나름의 타인을 신경쓰고 챙기고 있었기에 타인과 '잘' 공존하고 있다 생각했다.

난 외향적이고 사람들과 어울리는것을 좋아했다.
늘 사람을 모으고 주도하고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좋아했다.
그리고 그러한 분위기에서 소외되어 있는 사람들이 너무 신경쓰였다.

저들은 얼마나 소외감을 느낄까.
내가 저들을 이끌어주어야지.
내가 저들을 보살피고 챙겨주어야지.
여기서 누락되지 않게,
소속되어있을 수 있게 끌어주어야지.

그리고 나는 모임에서
구석에 조용히 있는 사람에게 다가가
늘 말을 걸고,
사람들의 대화 속으로 끌고 와
소속감을 느낄 수 있도록,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도록
챙기고 보살폈다.

이런 나의 행동이 타인을 충분히 신경쓰고 고려하고 있는 행동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에야 생각해보니
나는 내 방식대로 그들을 판단하고
자기중심적으로 그들을 생각했던것 같다.

그들은 정작 조용히 빠져있고 싶었을지도,
그렇게 본인의 적정 에너지를 유지하고 있었을지도,
혹은 들어주는 입장이 더 편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그러한 사람이 아니다보니
그러한 면을 아예 생각하지 않았다.

모든 이들은 소속감이 중요하고,
소외감을 싫어하고,
모임에서 빠져있길 원하지 않는다 생각했다.

나의 에너지 수준만큼
타인 역시 에너지수준이 같을 것이라 생각했고,
내가 타인을 통해 에너지를 채우고,
타인들과 함께 하는 것을 원하는 것처럼
모든 이들이 타인을 통해 에너지를 채우고
함께함을 원한다 생각했다.

너무나 편협하고 협소한 시야로
내가 그러하니 너도 그러할 것이다
라는 결론이었던것 같다.

늘 상담사에게 난 무식한 사람입니다.
라고 했던 말이 이거였던것 같다.

난 나의 작은 세상안에서
모든 이들 역시 그러할 것이라
좁은 시야로 그들을 바라봤다.

상담사가 말한 소통의 무지라함은
결국은 정서지능이 낮음을 의미했던 것 아닐까.

상담을 받아오고,
상담공부를 해온지 4년차.
4년동안 나름의 노력을 해왔지만
나의 편협한 생각안에서
쉽사리 확장이 일어나지 않았다.

상담사가 되는 과정에서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당장의 내 아이에게 너무나 독이 되는
자기중심성과 정서의 결여였다.

그리고 계속해서 자기분석을 받아온 나는
이제야 상담사들이 했던 말들이 이해가기 시작했다.

경험으로 체득하지 못하니
넌 자기중심적이야.
넌 타인을 고려하지 않아.
넌 감정을 생각하지 않아.
라는 말들을
머리로만 알아들었지
정확히 어떤 느낌인지 알지 못했다.

내 딴엔 모임에서 빠져 있는 사람을
중심으로 끌고 와주는 것이 타인을 고려함이었고, 타인의 감정을 신경쓰는 행동이었으니
자꾸만 날더러 정서가 결여되어 있다 말하는 것이 머리로는 아 그렇구나 했지만
마음으로 이해하지 못했다.

내향적인 아이가 답답했다.
같이 놀자 다가온 친구에게도 그들을 거절하는 아이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친구들과 놀기보다 엄마와 함께 있길 바라는 아이가 이해가지 않았다.
어떨땐 놀지 않고 집에 들어가겠다는 아이가 이해가지 않았다.

나 였다면 그러하지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아이는 자신과 취향이 맞지 않는 친구에게 정확히 말할 순 없지만 어떤 불편함을 느꼈고, 스스로를 그것으로부터 보호한 것이었다.
친구와 노는 것보다 엄마가 편안했던 것은 안전함을 보장받고 싶었을지 모른다.
놀지 않고 집에 들어가겠다는 것은 자신의 에너지 수준을 스스로가 알고 조절하려는 시도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땐 너무나 협소한 시각으로
내가 느끼고 생각하고 경험한 것 밖엔 알지 못했으니
나와 다른 아이의 반응이 너무나 이해가지 않았다.

타인에게도, 아이에게도
나와 같은 방법으로만 끌고 가기 바빴다.

자기분석 4년차.
이제야 나는 진실로 이해가기 시작했다.

나는 이러하지만,
너는 그러할 수 있구나.

나와 너는 다를 수 있구나.

내가 느끼는 것이 다가 아니구나.

내가 생각한 것이 다가 아니구나.

내가 경험한 것이 다가 아니구나.

내가 모르고, 못보고, 못해본 많은 것들이 존재하는구나.

아 나는 이러한데, 너는 그러한 사람이구나.
아 나는 이렇게 생각했는데, 너는 그렇게 생각했구나.
아 나는 이렇게 느끼는데, 너는 그렇게 느낄 수 있겠구나.


이제야 나 외의 많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타인의 다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타인의 감정을 내가 중심이 아닌, 온전히 너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됐다.

나의 입장에서 널 공감하는 것이 아닌,
내가 오롯이 네가 되어
너라면 어떠할지, 어떻게 느끼고 어떻게 생각할지 어떠한 충고, 조언, 평가, 판단없이 온전히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I'm Ok, You're not OK.
도 아니고
You're OK, I'm not OK.
도 아닌
우리 모두가 OK 될 수 있는 방법으로
나는 타인과 공생하는 법을 알아간다.

결국은 나도 옳고, 너도 옳다.
우리 모두는 옳다.

경험으로 체득하고
마음으로 받아들이니
너무나 벅차다.

내가 몰랐던 세상이 있었구나.
내가 너무나 미숙했구나.

나는 여전히 과정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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