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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빈 Sep 23. 2022

명문대 상담사


며칠전, 그러한 말을 한 적이 있다.

사실 명문대 나온 상담사한테 상담받을래, 그것보다 하위 대학을 나온 상담사한테 상담받을래 묻는다면 아무런 정보도 없는 상태에서 나는 명문대 상담사를 선택하겠어.

그리고 오늘 학교 수업시간에 나는 프레임에 갇히지 않겠다는 발표를 했고, 그것을 들은 동기는 내게 의아함을 내비쳤다.

프레임에 갇히지 않겠다 했는데,
명문대 상담사라는 것도 결국은 프레임이 아니냐.


사실 나도 그 이야기를 하고서 집으로 돌아와 생각이 많아졌었다.
명문대 상담사에게 받겠다는 것은 결국 나는 아직 상담사로서 미숙한 것일까,
아니면 인간이라면 당연한 것일까.

그리고 그것의 참 의미를 들여다 보니
나의 전제는 '아무런 정보가 없는, 처음 접하는 상담사' 였다.
그렇다면 내가 상담사에게 파악할 수 있는 것은 극히 일부이다.
어느 곳에서 공부를 했고, 어떤 자격이 있는지.

그리고 내가 생각한 것은 만약 명문대에서 공부를 한 상담사라면, 당연히 그 하위 대학의 상담사보다 나을 것이다. 라는 프레임이 아니었다.

그 사람을 판단할 수 있는 정보는 너무나 부족하고, 그 상황에서 명문대를 나왔다는 것은 지금껏 그 사람이 그 대학에 가기 위해 얼마나 치열한 노력을 했을지를 보여줄 수 있는 준거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한 노력을 인정한다는 의미였다.

내가 말한 프레임에 갇힌다는 것은
명문대 상담사 아무개라는 정보에 한정되어 그를 그저 명문대 상담사로 보는 것이었다.

반대로 내가 말한 프레임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명문대 상담사 아무개를 참고했을 지언정, 명문대라는 타이틀에 갇히지 않고
나의 사고를 오픈해둔채 다른 정보들을 계속해서  받아들여 명문대라는 하나의 정보에 휩쓸리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이것은 아무 정보가 없다는 것이 전제가 되었을 때 였다.
아무런 것으로도 판단할 수 없는 사람에게
회기당 10만원씩 턱턱 내고
10회기씩 결제를 할 수 있을까.
무얼 믿고.
무슨 근거로.
무슨 신뢰로?

그렇기에 우리가 판단할 수 있는 최소의 방법이 어디에서 공부를 했고, 어떤 자격을 취득했느냐라고 생각했다.


물론 다양한 정보가 있을때
공부한 기관은 우선순위가 저 아래로 떨어진다.
상담사 뿐 아니라 어떤 직업에서건
가장 중요한건 인격이라 생각하기에.

아무 정보가 없을때 명문대 상담사로 시작했어도,
상담을 진행하며 인격적 성숙, 그 사람의 가치관, 전문적 지식 등 다양한 부분의 정보들이 유입되기 시작하면 당연히 명문대라는 타이틀은 많은 힘을 잃게 될 수 있다.

물론 나는 무를 지향하기로 했다지만
멍청하게 나의 돈과 시간이 달린 일에
무프레임을 고집하다
아무런 판단없이
검증되지 않은 상담사에게 돈을 턱턱 내고
실패에 대한 리스크를 껴안지 않을 거다.
그건 프레임에 갇히지 않은게 아니라
오히려 프레임에 갇히지 않으려는 프레임에 갇혀 어리석은 짓을 하는건 아닐까 싶다.


세상은 참 어렵다.
프레임의 기준이 제각각 다르고
선과 악의 기준도 제각각이 다르다.

결국 답은 없다.
절대 선, 절대 악이 없듯
절대 무프레임이란 존재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혹은 무프레임이 결국은 프레임과 같은 맥락에서 일맥상통할지도 모르겠다.

뭐, 내가 추구하는 것이 완전한 무결점의  무프레임이 아니니.
무를 향해 나아갈 뿐,
완전한 무가 될 수 없음을 알고 있다.

어떤 것이든 삶에서 중용과 균형을 찾아야 함을
잘 알고 있다.


정답없는 세상에서,
나는 점점 철학자가 되어 간다.
마치 꼰대가 되어 가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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