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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빈 Oct 14. 2022

무식의 근원

상담사에게, 그리고 블로그에 여러번 이야기 한 적이 있다.
'저는 무식한 사람인데 어떻게 상담사가 될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 무식이 내포하는 의미를 나는 이제야 찾았다.
그것은 보편적으로 말하는 인지적 무식이 아니었다.
내가 말하는 무식의 기저에는 바로 정서지능이 자리하고 있었다.

20년 지기 친구는 늘 내게 이야기 했다.
내가 아는 너는 나쁜 애가 아니야.
내가 아는 너는 남들을 도울 줄 아는 선한 아이야.

그리고 그 말은 나를 늘 의아하게 만들었다.
남을 도울 줄은 알았지만 그것이 친구가 의미하는 그런 종류의 인류애라거나 이타심을 품고 있진 않았다.
내가 남을 돕는 이유는 그저 그것이 옳은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타인을 잘 도왔다.
자원봉사를 많이 다녔고,
따돌림을 당하는 친구는 그냥 두고 보지 못했다.
길 바닥에 쓰레기 하나 못 버리는 아이였다.

하지만 그러한 행동만으로 나를 선하다, 착하다 라고 정의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20년 지기 친구는 중학교때 같이 어울리던 친구들 무리로부터 따돌림을 당해 전학까지 가버린 친구였다.
그 친구에게 학창시절은 끔찍한 기억으로 남아있고, 과거의 몇몇 친구에게는 여전히 거부감을 느끼고 있었으나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와의 연결은 끊지 않고 유지하고 있다.
나는 당시 따돌림에 유일하게 가담하지 않은 친구였고,
그 친구와 놀지 말라는 다른 친구들의 회유에도 전혀 개의치 않고 그 친구와 함께 했다.
친구와 무리가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인 중학생때 였다.
20년 지기 친구는 그러한 기억을 안고 날 여전히 친구라는 이름으로, 고마움을 간직한채 연결되어 있었다.

친구는 그러한 나의 선함을 종종 내게 전했고,
지나치게 솔직한 나는 그저 가만히 듣고 있지 못하고 나의 행동의 근원이 무엇인지 콕 집어 돌려주었다.

너였기에 그러한 행동을 한 것이 아니다.
어떤 친구였어도 나는 그렇게 했을 테니까.
내겐 그것이 옳은 행동이었으니까.

나는 원리원칙이 중요한 사람이다 보니
원칙에 어긋나는 행동은 하지 못했다.

내게 있어 선한 행동은 그저 나만의 옳고 그름의 기준에 의한 행동일 뿐이었다.
누군가를 위한 이타심, 누군가의 감정을 신경쓴 행동이 아니었다.

이런 나의 의무적이고 딱딱한 선행은 나 스스로에게 무식하다는 느낌을 주곤 했던 것 같다.
결국 정서지능의 결여였다.

나의 도덕성은 콜버그의 도덕발달 이론에서 인습적 수준인 '4단계 법과 질서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그저 법이나 질서가 '옳은 것'이라고 하니 무조건 행해야 하는 것이었다.
도덕이론에서 조금 더 높은 수준인 5단계의 어떤 가치, 권리, 원칙이 법전을 초월할 수 있으며, 세상의 다양한 의견과 가치가 있음을 인정하고 그러한 다양함은 기본적 인간의 가치를 지키는 이상 존중되어야 한다는  수준까지 미치지 못한 사고였다.

그렇기에 나는 도덕발달 4단계 수준에 머물며
누군가의 가치나 권리와는 상관없이 그저 나의 옳고 그름의 잣대 안에서
선행을 베풀고, 의리를 지켰던 것 같다.
그런 옳고 그름의 기준에 의한 선행을 베풀고서 남들이 선하다는 칭찬을 할 때에면
나는 '선'의 의미를 다시금 떠올리곤 했다.
과연 이것이 진정한 선이 맞는 것일까.

그렇게 콜버그 도덕발달 4단계에 머물러 있던 나는
늘 내가 무식하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

의도없는 선행이 잘못되었다 말하는건 결코 아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지만, 스스로 방향을 찾아 나아가는 것이 아니었기에 선행을 하고서도 가슴속에 밀려드는 공허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물론 당시엔 무엇때문에 내가 무식하다는 느낌을 받는지 명확히 알지 못했다.
한자 그대로 지식이 없음 '무식'이라고 하니 그저 못 배워서, 공부를 안해서, 학습의 결여와 같은 인지적인 부분과 결부시켜 이해하려 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며칠 전, 친구와 내가 향하고 있는 '선'에 대해 대화를 나누던 중
그제야 내가 느끼는 무식의 참 의미를 알았다.

나는 나의 선함이 진정한 선이라 느끼지 못했다.
선행을 행하는 그 의도나 동기가 전혀 선이라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행동은 선했지만, 마음은 선하지 못했다.
정서가 쏙 빠져버린 선행이었다.

나의 선행이 제대로된 의도를 품고, 올바른 동기를 가지고서 나아가니
그제야 나의 무식의 근원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의 무식은 정서지능의 결여였다.

이제야 당신이 아프지 않았으면,
당신이 속상하지 않았으면,
당신이 힘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선행을 베풀기 시작한다.
친구를 진실로 배려하기 시작한다.
타인을 생각하기 시작한다.

의무적 선행이
의도적 선행으로 돌아섰다.

네가 아프지 않길 바라며
네가 잘되길 바라며
나는 타인을 진심으로 빌어줄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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