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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빈 Oct 14. 2022

나는 인간이기에 나약하고도 악한 존재입니다.

블로그에 기록해둔 많은 글들을 볼때면 나는 얼굴이 화끈 거릴 때가 있다.
지난 기록들을 들추어보며 나의 발자취를 따라 가다보면 그래서 지금 내가 성자라고 주장하는 건가 싶을 정도로 깨달음을 얻었니, 방향을 찾았니 마치 진리라도 찾은 사람마냥 나를 포장하고 있다.

그 누구도 내게 무어라 하지 않았지만 스스로 양심에 찔려 고백컨데 나는 절대 성자와 같은 모습을 갖고 있지 않다.
물론 성자의 모습이 내게 단 1%도 없다면 거짓이겠지.
모든 인간에게 나는 이러한 성자와 같은 부분이 분명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어떠한 사람일지라도, 설령 살인을 저지른 살인자일지라도
나는 그 사람 안에 성자와 같은 모습이 분명 존재함을 믿는다.
다만 방향을 잘 못 잡아 부적응적 모습으로 발현되었을 뿐.

나의 내면에 자리한 성자가 분명 존재하겠지만
나를 구성하고 있는 100% 중 성자와 같은 지혜와 덕과 이치를 추구하는 부분이 얼마나 될까하고 되묻는다면
블로그에 작성한 나의 기록들은 한없이 작아진다.
거짓이 되어 버리고 만다.

사실 나는 굉장히 나약하고 또 악한 존재이기도 하다.
내 안의 나약함과 악함 덕에 나는 계속해서 후회하고 반성하고 깨닫는다.
그러한 깨달음을 놓치고 싶지 않아 블로그에 기록하는 순간,
나는 그저 성자의 모습만을 담은 사람이 되어 버리고 만다.

사람들은 이런 날 보고 어떠한 기대치를 갖는다.
깨달음을 얻고 어떠한 경지에 올랐다 생각하거나 인격적 성숙이나 전문적 자질에 기대를 품는다.

하지만 진실로 고백하자면
나의 나약함과 악을 나는 계속해서 무의식적으로, 때론 의식적으로 반복하고
또 그러한 과정 속에서 깨닫는 사람이다.
그 또한 잘못되었다 생각지 않는다.
인간이기에 당연한 것이고,
인간이기에 누릴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남긴 글들은 그러한 깨달음으로 인해
꼭 내가 내뱉은 삶을 그대로 살아낼 것 같은 느낌을 자아내진 않았나
돌아보게 된다.

어쩌면 깨달음의 글이 많은 이유는
누구보다 나약하고 악하기 때문일 수 있는데.
그만큼 반대의 것을 많이, 깊이 체험해 봤기에
할 수 있는 깨달음이라 생각한다.

며칠 전까지 꽂혀 있던 없을 무만 생각해보아도 그러하다.
나는 프레임에 갇혀 나와 당신을 판단하고 싶지 않아 없을 무를 지향한다 했다.
하지만 그것을 지향하는 기저의 근원은 결국
나란 사람은 프레임에 갇혀 있기에 할 수 있는 깨달음이자 말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깨달음은 그저 자기 고백에 지나지 않는다.
누구보다 틀에 박힌 사고를 하기 때문에
틀에 박히지 않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없을 무를 들은 사람들은
틀에 박힌 언행을 종종 내뱉는 날 보며
마치 요놈 잘 걸렸다 하며 덤벼든다.
"너 프레임에 갇히지 않겠다더니?"

내가 부족하기에 그것을 지향한다는 것이지,
실로 그러한 사람이라는 말이 아님에도
없을 무를 내뱉은 순간
타인으로 인해 나는 없을 무의 프레임에 갇혀 버린다.
실재하지 않는 것을 좇는 날,
실재하는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상담에서 나는 무조건적인 수용과 공감을 몸소 실천한 로저스를 지향한다고 말한다.
심리학에서 너무나 높은 경지에 이른 대가이기에
감히 로저스를 지향한다 언급하는 자체가
내게 부끄러움을 선사하기도 하지만
우물쭈물하면서도 나는 감히 로저스를 지향한다 말한다.

진실로 무조건적 수용과 공감을 행한 자는 오직 로저스 뿐이다.
라는 말이 있듯,
나는 그것을 100% 수행할 수 있다 생각지 않는다.
그저 그것을 향해 나아갈 뿐.
100%가 되지 못해 애초에 그것을 포기하기보단
완벽하지 못하더라도 그 길을 계속해서 지향하고 추구한다면
나는 로저스는 아닐지라도 조금은 그를 닮아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내면에 나약함과 미숙함과 또 악함을 가득 품은 내가
반성하고 돌아보고 깨달아 가는 과정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한번의 깨달음이 평생을 책임지지 못한다.
인간이기에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유사한 잘못을 범한다.

그렇게 다시 한번 나의 그림자를 바라보고
더욱 확장된 깨달음을 다시금 정립해 나간다.

고백한다.
나는 결코 깨달음만으로 옳은 삶을 살아가는 성자가 아님을.
내 안에 성자는 극히 일부분일 뿐,
사실 나의 이면에는 못나고 부족하고 나약하고 미숙한, 더 나아가 악 또한 존재함을.

이런 나를 나는 인정하기로 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기로 했다.
성자와 같은 모습으로만 비추어 지길 원치 않는다.
나는 인간이기에 나약하고 악하면서도 또한 선을 추구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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